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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 2

<한강 작가 몰아서 만나기 1>(25-20)

by 백승협

10월 10일?
개인적으로는
군 훈련소에 입소했던 날,
대만에서는 쌍십절,
국제적으로는 세계정신 건강의 날,
한국은 임산부의 날이다.
그리고 24년 그날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여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이다.

이후로 한강 작가의 책이 동이 나고
출판사들은 인쇄소에 초긴급으로
책을 찍어 내기 시작했고,
그녀의 책을 든 인증샷들이
SNS에 단풍 물들듯 했고,
도서관에서는 최장 3주의 대출 기간을
1주로 줄여서 운영하기도 했다.

성인 평균 독서량이
평균 4.5권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 한국 땅에 그야말로
독서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그 열기가 조금 사그라든 것 같지만
앞으로도 꺼지지 않기를 바란다.

한강 작가와는 <작별하지 않는다>로
스치듯 만난 적이 있고,
얼마 전에 <빛과 실>로 재회하면서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 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빛과 실> 중에서)
그 질문들의 결을 따라 그녀를 몰아서
만나 보려 한다.

'올여름이 지나기 전에 한강 작가의 책을 몰아서 보려 한다. 그녀가 만든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연결되어 그 생생한 감각들을 느끼면서 나를 성찰하고 싶다.'(나의 블로그, <#한강 작가 >(25.06.13) 중에서)

그 첫 시작은
<채식주의자>(2007)이다.

이 책이 나의 반려가 된 것은
필연 같은 우연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1층 엘리베이터 입구 옆에는
책장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무인으로 운영되는 책 나눔터다.
나도 가끔 정리한 책을 거기에 두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책들을 둘러보는 것이
이제는 거의 습관이 되어버렸다.

어느 날 한편에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그것도 아주 깨끗한 상태로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감사함으로 바로 반려로 맞이했던 그 책으로
이 여름의 문턱에 한강을 또 만났다.

처음에는 소설집인 줄 알았다.
세 개의 연작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두 번째에 있는
<몽고반점>을 읽으면서부터다.

꿈! 꿈!... 때문에 고기 먹기를
갑자기 멈춘 영혜,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홀로 선 그(영혜의 형부),
그 사이에 있는 영혜의 언니...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갈등의 고리를 보면서
읽기는 쉬우나
이해하기는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나마 마지막 <나무 불꽃>으로
조금은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어릴 적 당한 '가. 정. 폭. 력'이
한 인간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마침내 인간이기를 거부하기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을.
'오래전 그녀는 영혜와 함께 산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그때 아홉 살이었던 영혜는 말했다. 우리. 그냥 돌아가지 말자... 시간이 훌쩍 흐른 뒤에야 그녀는 그때의 영혜를 이해했다. 아버지의 손찌검은 유독 영혜를 향한 것이었다.'(p191)

한강은 말한다.
이 소설이 만들어 준 질문들을.
'세 번째 장편소설인 <채식주의자>를 쓰던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나는 그렇게 몇 개의 고통스러운 질문들 안에서 머물고 있었다.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 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p12-13, <빛과 실> 중에서)

완전한 답을 찾지 못했지만
이 질문들이 나에게도 읽는 내내,
아니 지금까지도 머물러 있다.

◆ 책 읽다가 그 몇을 쓰다

. 아픈 건 가슴이야. 뭔가가 명치에 걸려 있어. 그게 뭔지 몰라... 한번만, 단 한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밖으로 달려 나가고 싶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럴 수 있을까.(p60-61, 영혜)

- 1편 <채식주의자>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이야기의 흐름보다는 그녀의 일상을 멈추게 한 꿈을 몇 번이고 읽어 본다. 순간 탐정 같은 내 모습에 놀란다. 그것도 심미안을 가진 것처럼 돋보기를 들고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다. 또 까불고 있다. 다시 마음을 낮추고 경청의 모드로 전환한다. 물이 흘러가다가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고이고만 있다. 이제 그 악취로 주변이 힘들어한다. 도처에 아우성이다. 물 위의 뜬 기름처럼 더 이상 영혜는 주변과 섞이지 못한다. 유화제 같은 사람이 없다. 남편마저도. 피가 섞인 가족들도.
나는 여기에서 자유한가? 더 하면 더 했지 나은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역지사지'라는 말은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으나 결코 삶으로 살아내기는 녹록지 않다. 함께를 외치면서도 각자도생의 길을 가는 인간들을 향해 손가락질하기는 쉽다. 돌아보면 나도 그러고 있는 모순 속에서 그럭저럭 스스로에게 타협하며 살아간다. 부끄러워진다.
말하기보다 먼저 듣는 훈련이 필요하다. 퇴직 후에도 안부 전화를 일주일에 한번은 주는 소중한 지인이 몇 있다. 그중 대구에 있는 한 회사의 전무로 있는 이가 있다. 서울에서만 직장 생활하다가 주말부부가 된 지 벌써 4년이 다 되어간다. 얼마 전에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평소 전화를 주는 날이 아니어서 이상하다 싶어 빠르게 받았다. 이것저것 직장 생활에 대한 나름의 한계를 토로한다. 그때 위로한답시고 그의 형편도 제대로 모르면서 이것저것 처방하듯이 했던 말들이 걸린다. 듣기보다는 내가 더 말이 많았던 것을 반성한다. 듣기를 더해야 한다. 함부로 나대지 말라!


.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격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전의 어린 시걸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p197, 그녀-영혜의 언니)

- 2편 <몽고반점>을 다시 들여다본다. 삶의 경계에 선 영혜와 그녀의 형부가 예술과 외설의 외줄 타기 줄에서 위험하게 만나고 있다. 그 결과물을 오롯이 감당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 바로 영혜의 언니와 이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는 독자다. 급발진으로 갑자기 뛰어든 차에 그대로 그 충격을 흡수할 이들인 것이다. 이대로 끝난다고? 다행히도 한강 작가는 3편 <나무 불꽃>으로 그 이야기를 이어간다. 영혜 언니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영혜 언니가 더 안타깝게 보인다. 성실히 살아온 것 같았던 그녀도 마음이 아픈 사람이다. 두 사람처럼 표출하지 못한 채. 그저 버티며 견디고 있는 것이다. 소설이 끝 이후에도. 애잔하다.
한강은 세상에 마음이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삶은 고행이다'라는 말은 종교뿐만 아니라 철학자들도 말하는 부분이다. 세상 살이가 쉽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복을 쫓아 사는 것도 다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인(人) 자는 사람의 몸통과 다리 두 개를 단순하게 그린 모양이라고 한다. 뇌피셜로 나는 혼자서는 바로 서지 못하는 인간 둘이 서로 의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홀로 설 수 없다는 것, 결코 완전히 결백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강이 이 소설을 쓰면서 찾아낸 몇 개의 질문 중에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라는 있다. 없다는 것을 재차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 답은 읽는 독자의 처한 형편에 따라 다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하나 공통으로 보아야 할 것은 마음이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시선으로 나를, 타인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싶다.


. <채식주의자>와 <몽고반점>은 컴퓨터 대신 손으로 썼다. 손가락의 관절들이 아팠기 때문이다... 볼펜을 거꾸로 잡고 자판을 두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그렇게 2년 가까운 자포자기의 시간을 보낸 뒤였다.... <나무 불꽃>은 그렇게 썼다.(p246)

- 얼마 전에 유시민 선생이 <청춘의 독서> 개정증보판을 다시 내면서 김이나의 <별이 빛나는 밤>에 나온 적이 있다. 의외였다. 그 인터뷰 중에 유시민 선생은 작가라면 건초염을 누구나 앓을 것이다,라며 자신도 그렇고, 한강 작가도 볼펜으로 자판을 두들기며 글을 쓴 예가 있다고 했다. 그냥 스치듯 들었는데 여기에 이렇게 한강의 소리로 듣고 있다. 작가는 모두 손가락이 아프구나, 처음 알게 되었다. 나로서는 알 수가 없는 부분이다. 그렇게 써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 원고지에 글을 썼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네모난 칸에 한 글자씩 채워가다가 보면 지우개 가루가 금방 쌓여갔다. 몇 번을 지우다 보면 그 자국이 심하게 남거나 구멍이 나기도 했던 것 같다. 나름 잘 적었다고 제출했지만 한 번도 칭찬이나 상을 받아 본 적이 없다.
그렇게 글쓰기는 나와 평행선을 이루며 연이 되지 못한 채 30대 중반까지 이르렀다. 40문턱을 넘어설 즈음에 책을 읽고 나름대로 블로그에 담은 글들을 정리해서 <맛난 책 이야기>(2006)를 나의 돌 사진처럼 낸 적이 있다. 작은 아이가 군대를 제대할 무렵 휴가차 왔다가 이 책을 가져가 읽고는 하는 말이 '맞춤법이 너무 틀리다'라고 일침을 준 적도 있다. 그 이후로도 글 쓰는 것은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핑계로 책만 읽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퇴직할 무렵 하루에 몇 자라도 적어 보기 시작했고, 다시 글을 써 보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책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성찰하기 위해서, 오늘보다 좀 나아지는 것은 둘째 치고 노욕의 길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나도 꿈을 꾼다. 손가락이 아플 때까지 글을 써 보고 싶다. 서툰 글쓰기라도 꾸준히 기록하는 삶을 살고 싶다. 언제나 손 내밀면 기쁜 마음으로 나를 맞아 주는 작가들의 환대가 있어서 감사하다. 손가락이 아파도 책을 세상에 내놓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그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그들이 나의 참 반려다.

- 헤리의 반려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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