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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협 Sep 07. 2023

#성석제 선생

꾸들꾸들 물고기씨, 어딜 가시나

이사를 계획하고 있다.

이사 때마다 이삿짐 업체 견적을 받아보면
책의 비중이 만만치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마다 추리고 추렸는데도.
아직 상당수의 책들이 집 곳곳에 놓여 있다.

얼마 전부터 조금씩 추려내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그대로 두려는 유혹이 상당하다.

버리고 나면 꼭 그 책을 찾았던 기억이,
책장에 꽂힌 책을 보면 그냥 배부른 느낌이,
남들이 책을 보고 놀라는 모습이...
발목을 잡지만 사실 이런 일은 몇 번 되지도 않는데
그것을 전부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나는 욕심쟁이다.

그래서 이번 기준은 명확하다.

평생 가도 읽지 않을 책들은
과감히 필요한 사람들에게 입양하기로.

얼마 전 초면인 성석제 선생과 함께
국내외를 돌아다니며 맛집, 유적지들을 탐방하면서
간간이 그의 추억들도 듣는 기회를 가졌다.
마치 4박 5일의 럭셔리 패키지여행을 다녀온 듯했다
(쇼핑 의무 방문, 선택 옵션, 기사/가이드비 없는)

바로 선생이 50대 초반에 세상에 내놓은 일곱 번째 산문집,
<꾸들꾸들 물고기씨, 어딜 가시나> 속에서 조우한 것이다.

나의 추억을 소환해 주기고 하고,
간접 경험의 묘미가 뭔지를 알려 주기도 하는,
'사람이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사는 풍경'을
소설로 쓰고 싶었다는 그를 더 궁금하게 하는 책이다.


◆ 책 읽다가 날것 그대로 쓰다

성석제 선생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가 정말 매력적이다. 그의 일상을 보며 나의 일상을 그려보게 하니 말이다. 너무나 쉽게 표현해 내는 그의 필력. 읽을수록 점점  거기에 빠져들고 있다. 이때가 제일 기분 좋고 행복한 때다. 이 책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나도 이런 일화를 쓰고 싶다는 묘한 욕심을 가지게 한다.

'국수에 입에 대지도 않던 사람을 국수광으로 만들기까지 했다. (p75)' - 나의 추억 소환. 난 칼국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의 아내가 좋아해서 연애 시절부터 먹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맛난 칼국숫집을 찾아다닐 정도로 좋아한다. 최근 인천 부평에 위치한 칼국숫집의 '바지락칼국수'가 지금까지 먹은 것 중 제일이었다. 나는 칼국수광이 되었다.

'날씨가 조금만 더워도 짜증 나서 못 쓰고 조금만 추우면 마음이 시려서 못 쓴다... 결국 아무 때도 못 쓴다. 마감이 없으면. (p102)' - 글쓰기를 미루는 한 유명한 작가의 다양한 핑계들. 솔직한 선생의 고백에 글쓰기를 이제야 시작하는 나에게 큰 위로가 된다. '나는 성석제다.'라고 자신을 그대로 투영해서 쓴 글이기에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리라. 이게 어려운 것 같다. 누가 보면 어쩌나 하는 괜한 두려움이 글쓰기의 큰 장벽 중 하나 같다. 누가 봐 줄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선생도 마감이 글을 쓰게 한다고 했는데 나도 일주일에 한 번은 외면 일기를 쓰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지 위해 억지로라도 이렇게 노트북을 열어서 글을 쓰고 있다. 이 짧은 글을 쓰는데 3~4시간 정도 걸릴 정도로 재주가 없다. 10월 1일이면 만 2년이 된다. 너무나 부족한 걸 한다. 그래도 돌아보면 큰 위로가 되어 준 시간들이다. 낯선 시공간에 떨어져 어쩔 줄 모르는 나에게는 더욱.

계속해서 강진, 거제, 상주, 청주, 포항 구룡포, 판문점... 설악산 백담사까지 이어지는 여정. 그의 해박한 지식. 거기에 멋진 필력으로 그 광경을 마치 영상을 보는 것처럼 그려내는 그를 공붓벌레 관광 가이드라 칭하고 싶다. 작가는 공부해야 한다. 깊은 호기심으로.


- 헤리의 외면 일기


돌이켜보면 상주에서 태어나 머물렀던 시간은 15년도 되지 않지만 내가 쓴 소설의 절반 가까이가 상주를 무대로 상정한 것들이었다. 자연, 마을. 사람, 사물, 관계마다 이야기가 없는 곳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소설 쓰는 사람으로서 내 관심사의 가장 앞쪽에 있는 것이 바로 사람이 사람으로 사람답게 사는 풍경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데 거기에는 삼라만상 중에 사람이 귀하고 높고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 상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 성석제의 <꾸들꾸들 물고기씨, 어딜 가시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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