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 친구 올라의 장미 이야기

스페인, 그라나다

by 김성냥

스페인 그라나다 사크로몬테 지역 동굴집에 살고 있는 올라와 그녀의 애인 벤지를 만났다. 관광객에게 이 지역은 우범지역으로 유명하지만, 날아다니는 파리에도 놀라는 나 같은 겁쟁이도 그리 위험하다는 인상을 받지 않았다.


그라나다 언덕 위로 올라가면 동굴을 파고 들어가 사는 집시들의 동네가 있다. 실제 집시들이 정착해 동굴을 파 집을 만들고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히피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동굴 플라멩코 공연장도 있고, 언덕 꼭대기에는 교회 앞에서 무심하게 해바라기 하는 사람들도 있고. 동굴집들이 있는 좁은 길을 걷다 보면 ‘올라’하고 인사를 주고받게 되고, 나 한국에서 왔어, 그라나다 좋아! 뭐 이런 얘기하다 보면, 차 한 잔 할래? 묻는 사람의 집에 초대도 받을 수 있다. 하도 위험하다고 해서 많이 쫄았고 그래서 입구까지만 가보고 말려했는데, 가다 보니 그곳이었다. 40여 가구가 그냥 작은 시골 마을처럼 올망졸망 사는 곳이었다.


DSC_4389.JPG 올라네 동굴집 입구.

그렇게 작은 마당을 가진 올라와 벤지네 집에 발을 들여놓았고, 그 마당에서 화려하지는 않지만 따뜻한 대접을 받았다. 손님이 왔다고 옆집에 사는 친구는 기타를 가져와 연주를 시작했고, 올라는 정부의 동굴집 철거 계획 때문에 찾아온 활동가와 심각하게 대화중이었다. 얘기하다, 스페인어를 내가 못 알아들으니 그 얘기를 나한테 통역하랴, 지나가는 친구가 한 인사에 일일이 대꾸하고 포옹해주랴, 올라는 바빴다. 올라의 친구 벤지의 허락을 받아 집 구경도 하고, 아직 연습이 더 필요한 뚱땅뚱땅 수준의 기타 연주곡을 들으며 그 좋은 풍광에 푹 빠져버렸다.


KakaoTalk_20221013_212431721.jpg 올라네 집 대문과 마당. 기타 못 치는 남자, 검은 옷이 올라, 건너편이 벤지, 그리고 그의 친구.


올라와 벤지는 이 동굴 집에서 이미 3년 넘게 살고 있었다. 작은 가스통을 가스레인지에 연결해 끓인 물로 근사한 차 한 잔을 대접받았다. 이빨 깨진 찻잔이 귀여웠다. 벤지는 집 소개를 하며 자기가 수리한 샤워실과 굴뚝 자랑을 했다. 풉. 너무 좁아서 몸 돌리기도 어렵고, 나무판자를 엉성하게 대 바깥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데다, 밖에서 알몸이 보일 가능성도 있는 정말 허름한 샤워실. 굴뚝은 만화책에 나오는 것처럼 작고 앙증맞았다. 집시의 동굴집이었지만 단란하게 꾸려진 가정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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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고 월세 따위도 없는 집이었다. 밤에는 매우 춥다는데 동굴을 파서 만든 침실은 아늑해 보였다. 친구와 함께 살고 있고 도심 광장에서 아이들에게 비누거품 풍선을 만들어주거나 그림을 그려 생계를 유지한다 했는데 넉넉할 수는 없겠지. 자기 그림 실력이 형편없어 열심히 연습해야 한다고 쑥스럽게 웃는다. 올라는 누구보다 더 환하고 예쁜 얼굴로 웃을 줄 알았지만, 옷은 낡고 허름해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았고 너무 말랐고 피부도 거칠었다.


따뜻한 햇살에 몸이 노곤했던 올라와 벤지네 작은 마당은 해가 지면서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약간 어두워지면서 하늘은 또 다른 모습을 펼쳐 보이는데, 아! 이래서 여기를 허물어 리조트를 지으려고 하는 거구나, 그 상황이 절로 이해되었다. 이곳은 그라나다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늘을 볼 수 있는 장소였다. 조명까지 들어온 알함브라 궁전도 직접 그 궁전 안에서 돌아본 것보다 훨씬 근사했다. 앞은 확 틔여 햇살도 바람도 거칠 것이 없었고, 뒤로 위치한 산은 아늑하게 동굴집을 품어주고 있었다. 올라와 벤지는 여기서 3년을 넘게 지내며 집안 하나하나 자기 손으로 직접 집을 가꾸고 만들었다. 철거할 테니 이런 집에서 나가라 하면 나도 화날 거 같다.


DSC_4989.JPG 해질 무렵, 올라네 집 마당에서 보이는 알함브라 궁전.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고 더 어두워지기 전에 가야겠다고 일어서니 올라가 더 놀다 가란다. 너무 늦었다고 했더니 뭐가 늦었냔다. 음... 어두워지면 집시 생활 지역이 위험하니 다니지 말라고 한 호스텔 사장 말을 그대로 전달할 수도 없고. 그래서 그냥 ‘난 지금 맥주가 필요해. 그래서 가야 해’했더니 참 합당한 이유라며 다정한 포옹과 함께 양 볼에 키스를 해준다. 기타를 치던 친구도.


젊고 잘생긴 남자의 갑작스러운 볼 키스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 쩝. 이게 얼마만이냐. 여기에선 친한 사람들끼리 이렇게 인사한다고 그 친구는 내 어깨를 다독이며 웃는다. 나도 안다고. 갑작스러워 좀 놀란 거야, 짜샤.

터덜터덜 내려와 맥주에 따라오는 공짜 따파스를 배불리 먹고 숙소에 들어왔다. 동굴집 철거 상황에 대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으니 언덕 아래 사람들 입장은 아주 달랐다. 이미 몇 년 전에 다 돈 줘서 내보냈는데 그새 다시 들어와 또 집시들이 진을 쳤다고 그들을 비난했다.


어디 가나 철거촌을 둘러싼 논란은 비슷하구나. 자기 돈 빼긴 것도 아닐 텐데, 인간이 발 딛고 살아야 할 땅인데 어디 가나 돈돈돈... 그 특이한 동굴 지역을 아마 유네스코에서 뭘 지정하고 한다길래, 보존가치가 있으니 유네스코도 나서는 게 아냐? 라고 물었더니 그 불법점유에 대해 유네스코가 할 게 뭐 있냐며 또 비난질이다. 쩝. 그렇구나. 그 예쁜 올망졸망한 마을을 싹 밀고 리조트를 지으면 그 좋은 풍광을 리조트 갈 돈 있는 부자들만 점유하겠지. 유네스코에서 뭐라도 지정해버리면 돈 벌 거리가 날아가니 그쪽에서는 또 나름대로 안달일 거고.


땅에 금 긋고 ‘이거 내 거, 그리고 이거 얼마’라고 규정하는 불경스러운 짓을 태초에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중력으로 뭉친 지구가 대기를 품고 자전과 공전을 거듭하던 때부터 땅에는 원래 주인이 없었다. 여행하다 보니 특히 유명한 해변에서 공공 해변, 사적 해변, 뭐 이런 표지판을 자주 보게 된다. 땅도 모자라 바다에도 금 긋고 소유를 주장하기 시작했나. 사적 해변 표지판의 핵심은 배타적으로 소유된 바다이니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다. 세상에! 개인이 소유한 바다라니. 조금 있으면 하늘도 private sky라 우기겠네.


그러면서 충고질까지 더해준다. 집시들 위험하니 같이 놀면 안 된다고. 나한텐 무척 친절하던데? 라고 말했더니 그건 네가 집시처럼 보여서 그렇단다. 어이구, 이젠 인신공격까지. 난 그저 편견 없이 바라보려 노력 중이지만 집시들이 사고 많이 치긴 하나보다. 집시들에 싸잡혀 더 지적질당하기 전에 자리를 떠났다.


집시는 어떤 사람들일까. 왜 그리 사회의 골칫덩어리가 되었을까. 집시에 대해 내가 아는 거라고는 ‘카르멘’, 이름도 모르는 가수의 ‘집시, 집시, 집시~집시 여인’, 에밀 쿠스트리차 영화 ‘집시의 시간’에서 보고 들은 정도. 그리고 소매치기, 점성술, 돈 안 되는 일에 능하고, 잘 안 씻고, 유랑하며 사는 사람들이란 거 정도.


집시는 서아시아, 유럽 특히 동유럽에 나오는 인도 아리아계 유랑민족을 이르는 말이라 한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시작은 인도 북부였던 것으로 보이고. 스스로를 Romi 혹은 Rom이라 부르고 자기들만의 언어를 쓴다. 일정한 거주지 없이 이곳저곳 유랑하며 살아 그런지 인구통계도 없다 한다.


그리고 집시들의 결혼 서약, 정말 인상적이다. 집시들은 결혼할 때 서로를 구속하지 않고 둘 중 한 사람이 자유를 원할 때 기꺼이 놓아주겠다는 약속을 한다고 한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살 것을 맹세해도 모자랄 판에,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며 너를 사랑하지 않는 순간 너를 떠날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사랑했던 사람 옆에 머무는 게 서로 불행이란 걸 잘 알고 있나 보다.


그라나다를 떠나가 전 날, 사크로몬테 지구 동굴집에 사는 올라에게 다시 들렀다. 올라가 내 여행 계획을 궁금해했고 나도 그녀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비누풍선 만드는 일도 그림 그려 파는 일도 비수기로 접어들어 특별히 할 일은 없으니 장미들을 돌보며 지낼 거라 한다. 난 아마 장미를 키워서 팔 생각인가 보다 싶었고, 그 장미 정원을 보고 싶다고 장미 정원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집 마당에서 장미를 보여준다는 그녀를 따라나섰다가 멈춘 그녀에게 왜 안 가? 물었더니 여기가 그 정원이란다. 어디? 여기! 그 정원 앞에서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스머프 마을에 있는 집의 문짝 같은 올라네 문 바로 앞, 가로 세로 1미터도 안 되는 그녀의 정원엔 나뭇잎은 살아 있으나 말라비틀어진 작은 장미 줄기 두 개가 있었다. 장미가 살아있는 것 같긴 했다. 지금은 꽃이 없지만 이들을 잘 돌봐서 꽃을 피우는 것이 올라와 벤지의 당면한 가장 큰 계획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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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진지한 얼굴에 더 이상 웃을 수가 없었다. 마당으로 다시 돌아와 앉으며 이게 뭘까 싶었다. 소위 정상적으로 산다는 사람들이 집시들의 삶을 잘 이해 못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아닐까.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돈이 되지 않는 일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백수의 삶은 수치스러운 것이고, 좋은 대학 나와 좋은 직장 들어가서 돈 잘 버는 게 삶의 최대 목표가 되었고. 그걸 하면 쌀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라는 말은 인생 선배들의 여러 충고질 중 가장 강력했고, 돈을 위한 일만이 쓸모가 생겼다. 너무 많이 먹어 매일 다이어트해야 한다고 징징거리는 게 현대인의 삶인데, 시스템을 벗어나려 할 때마다 겁을 주면서 금방 굶어 죽기라도 할 것처럼 공포를 조장했다.


한때 성실과 쓸모를 인생 최대의 미덕으로 알던 나는, 올라가 장미를 돌본다고 했을 때 뭔가 쌀이나 밥이 나오는 일을 하려나 보다 생각했다. 장미를 돌본다니 내 머릿속에선, 장미를 잘 가꾼다(성실하게 일한다) → 장미를 내다 판다(돈 되는 일을 한다) → 쌀 사서 밥을 해 먹는다(생존을 유지하며 성취감을 느낀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거친 음식을 먹으며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기꺼이 가난하게 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올라에게 장미를 돌보는 일은 소행성 B-612에서나 가능한, 어린 왕자의 장미 사랑하는 일 같은 것이었다.


집시들은 시스템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차별받고 무시당한다. 어디 가나 사회 골칫덩어리이고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며 살아간다. 유럽을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대개 집시들의 악명 높은 범법행위를 들었거나 경험했을 것이다. 실제 이들은 뻔뻔하게 관광객의 주머니를 털고 관광객을 대상으로 사기 치는 일 따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뿐이다. 그들은 사법 살인을 하거나 주가조작으로 남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부동산 사기를 치지는 않는다. 실제 사회의 주요 범죄는 잘 배우고 성공한, 부정한 정치권력이나 탐욕스러운 자본이 저지른다. 시스템 안에서 이들은 사회가 어려워질수록 사람들의 분노를 힘없는 좀도둑꾼에게 돌린다. 권력과 자본이 뭘 해쳐먹는지도 모르고 늘 속아 넘어가는 우리는 만만한 사람들 욕만 하게 되고. 이에 부응해 경제위기에 접한 유럽 각국에서 집시에 대한 인종차별적 집단 폭행이나 살인 등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 한다.


가난하게 사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시스템 안에서 노동력을 사고파는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성실하게 노동한다는 건 자본가에게나 좋은 일이지 개인의 자아실현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일임에도, 우리는 가난을 무서워하지 않는 불성실한 사람들을 경멸한다. 아니 사실은 질투하는지도 모르겠다. 가난한 주제에 한가롭게 놀면서 행복해 보이기까지 한단 말인가! 몹쓸 것들이다. 나는 겁나서 하지 못하니 더 미워할 수밖에.


올라에게 장미가 꽃을 피우면 사진으로 찍어 보내달라고 했다. 카메라도 없고 인터넷도 없는 곳에 살지만 친구 걸 쓰면 된단다. 겨우 내내 벤지의 돌봄을 받을 그 장미에게도 작별 인사하고, 돈에 쩔쩔매지 않는 그 집시들이 샘나는 건지 안쓰러운 건지 얄미운 건지 잘 모른 채로 그라나다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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