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을 여행할 때마다 내 정체성이 확연하고 단순하게 드러나는 일을 자주 경험한다. 우선 한국을 떠나면 나는 외국인이 된다. 여자 외국인, 좀 더 자세하게는 늙은 여자 외국인. 동남아시아에선 늙은 한국 여자 외국인+돈 잘 쓰는 관광객, 유럽에선 늙은 동양인 여자 외국인+가난한 배낭여행자가 된다.
난 달라진 것 없이 그대로다. 여행하는 패턴도 비슷하다. 내가 도착한 그 지역의 맥락에 따라 달리 정체화되는 것뿐이다. 이런 타자되기 경험은 한국에 돌아와 지내면서 외국인을 대하는 내 방식을 돌이켜 보게 한다. 내 경험을 기준으로 어떤 외국인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그 외국인의 나라, 언어, 문화, 종교 등 어떤 것이든 편견을 갖지 않으려 한다. 최소한 편견이 없는 척이라도 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나와 다른 문화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너희도 이런 거 정도는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겠어?’라며 건방 떠는 일들이 있다. 외국인 주제에 현지인의 생활방식을 내 맘대로 규정해버리는 짓. 가령 수세식 변기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건 몽골에선 멍청한 일이다. 똥을 가둬두고 정화하는 것, 물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 몸이 한국에 있지 않으니 내 생활방식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박쥐 튀김과 초코 브라우니를 생각하면 어떤가. 전 세계 그 누구라도, 도대체 누가 초코 브라우니 대신 박쥐 튀김을 선택하겠는가.
미얀마를 여행하던 중이었다. 긴 버스 여행이었는데, 바간에서 만달레이로 가는 길에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하는 동안, 버스에서 내려 허름한 식당 처마 밑에서 멍 때리고 있었다. 머리에 큰 쟁반을 이고 있던 어떤 여자아이가 다가와서 간식거리를 사라고 권했다. 열 살은 막 넘겨 보이는 긴 머리의 새침데기 느낌의 그녀. 쟁반을 내려 보자기를 젖히자 잘 배열된 특이한 모양의 간식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대개 뭔 튀김들. 튀김 자체도 싫고, 튀긴 음식 너무 많아 싫고, 너무 튀겨서 거무튀튀해 싫고, 뭘 튀겼는지 몰라 싫다. 미얀마에선 달걀프라이도 기름에 푹 담가져 나온다. 노 땡스, 하고 나서 뭘 튀긴 거냐 물어니 새 bird란다. 새? 어, 새. 박쥐 bat... 아, 박쥐도 새였구나. 하긴 미얀마 여행하면서 유적지나 사원에서 박쥐들 수천 마리는 본 것 같다. 살아있는 박쥐도 싫고, 죽은 박쥐도 싫고, 튀겨진 박쥐도 싫다. 게다 이 박쥐 튀김은 박쥐의 사지를 찢어질 듯 늘여놓고 막대로 고정해 튀겼다. 튀김인 채로 박쥐는 하늘을 나는 듯 온몸을 펴고 있다. 으웨웨웨웨... 마음속으로만 도리질하고 있는데 그 아이가 맛있단다.
대강 이렇게 생겼다. 너무 오래 여러 번 튀긴 통닭 같은 색깔이었고. 내 초코 브라우니는 요렇게 생겼었다. 호두 대신 초콜릿 토핑이 올려진.
거절하고 나니 미안해서 그 아이에게 초코 브라우니 한 조각을 주었다. 이 아이는 초콜릿을 먹어본 적이 있을까. 바간 숙소를 떠나며 만달레이로 간다 했더니 호텔 식당에서 일하던 미얀마 언니가 먼길 가는데 먹으라고 호텔 조식 디저트 나온 걸 싸준 거였다. 맛보니 쫀득하고 깊은 풍미에 초콜릿은 얼마나 진한지 씁쓸하고 달콤한 맛이 황홀하게 입안에 번졌다. 모양도 동그랗게 빚어서 초콜릿 토핑까지 올린 고급진 브라우니였다. 하얀 손수건에 몇 개 싸준 걸 아껴먹으려다 그 아이와 하나 나눈 것이다.
이 아이는 그걸 받아 들고 조심스럽게 한 입 베어 먹었다. 으흠... 자, 이제 그 사랑스러운 문명의 맛을 너의 언어로 말해주렴. 나한테 너무 고마워할 필요는 없단다. 초콜릿 맛을 본 이상 너의 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지. 흐뭇한 표정으로 그 아이의 감탄사를 기다리는데, 그 아이는 정작 오만상을 찌푸리더니 뭐 더러운 것이라도 먹은 것처럼 입 안에 있는 건 옆으로 퉤 뱉어버리고 나머지는 쿨하게 어깨 뒤로 던져버렸다. 헐.
나는 전 세계 누구에게나 인종과 성별, 나이를 불문하고 당연히 초코 브라우니가 박쥐 튀김보다 맛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당연하지. 당연한 거 아냐! 기름에 쩌든 박쥐 튀김이나 파는 주제에 진짜 카카오가 함유된 풍미를 풍기는 내 브라우니를 내 던져? 말은 못 하고 한참 동안 벌려 있던 입을 다물고 나서야 반성의 기운이 머릿속을 정돈시켰다.
그녀가 브라우니를 즐길 거라 생각하다니.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는 박쥐 튀김과 초코 브라우니 사이만큼 멀고 멀다고 느꼈지만 이것도 나의 오만일 뿐. 그녀는 그녀 입맛이 있고, 난 내 입맛이 있을 뿐이다. 난 그 기름 투성이 박쥐 튀김을 거부했지만 그녀는 과하게 튀겨진 박쥐보다 더 시꺼멓게 생긴 처음 본 케이크를 시도했고, 고소하기는커녕 씁쓸한 첫맛에 끈적 지근한 식감을 견뎠고, 너의 것은 맛없다고 확실하고 솔직하게 표현했다.
이로써 또 존중하는 척했지만 정작 깔보고 있었던 내 마음이 뚜렷하게 읽혔다. 다시 출발한 버스 안에서도 쪽팔림은 가라앉지 않았다. 언제부터 달디단 케이크를 즐겼다고. 버터에 기름, 설탕 투성이 빵들, 동맥경화나 걸리기 딱 좋지. 물론 남은 브라우니는 다 내 입으로 들어갔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