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여름궁전
‘사람 뼈 위에 세워진 도시’라는 이름을 가질 만큼 많은 희생을 치르고 건설된 도시,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나 보다. 도시를 만들고 나서도 귀족들이 춥고 습하다고 이주하기를 꺼려 표트르 대제가 직접 귀족들에게 초청장을 보낼 정도였다고 한다. 물론 거부하면 죽음이고.
왕의 권위도 세우고 여름휴가도 보내고 파티도 즐길 셈으로 표트르 대제는 1714년, 지금 여름궁전으로 불리는 궁전 건립을 명령한다. 다시 이어지는 건설붐의 시작. 유럽의 유명한 건축가와 조각가가 모이게 된다. 이번에도 엄청났다. 표트르 대제가 유럽을 돌아다닐 당시 베르사유 궁전에 꽂혔나 보다. 더 화려하게 짓겠다는 욕심이었을까. 실제 건물을 지을 때 그렇게 주문을 했고, 그래서 결론은 금! 금으로 발라진 궁전이 탄생했다. 이번에 금이 발라진 곳은 조각물들이었다. 이에 비하면 1800년이 넘어야 시작되는 이삭 성당의 황금돔이나 조각의 규모는 뭐 큐트하다고 해야 하나.
궁전 중앙에 있는 유명한 분수에서는 삼손이 사자 입을 찢고 있고 사자 입에선 물이 솟구친다. 삼손이 표트르 대제, 사자는 당시 표트르 대제가 싸워서 이기고 싶던 스웨덴을 상징한다고. 조각의 구체적인 표현이 역동적이고 섬세하다. 사자 입 찢는 게 얼마나 힘든지 저 장딴지 근육에까지 잘 드러나 있다. 난 삼손보다 사자에게 감정이입이 되어서 아가리를 찢기는 고통에 더 몰입했다. 사자 입이 얼마나 아프겠는가. 암튼 저거 다 진짜 금이다. 내 평생 이렇게 많은 금을 동시에 본 적이 없었다. 처음엔 놀랐지만, 나중엔 누런 건 다 금이겠거니 싶으니 오히려 시큰둥.
이 궁전을 직접 보기 전까지 설마 금으로 발라도 얼마나 발랐겠냐 싶었다. 혹시 숫자가 잘못된 거 아닌가 싶었지만 실제 보니 그만큼 들었겠다. 이 궁전에 쓰인 금이 2톤이 넘는다니. 궁전 앞 정원은 솟구치는 물과 누런 금이 서로 어우러져 현란하고 시원하게 빛난다.
당시 표트르 대제는 얼마나 신났는지 스스로 아이디어도 내서 분수 디자인도 했다고 한다. 그의 신남과 별개로 엉덩이까지도 황금색으로 빛나는 그 많은 조각들은 금방 질렸다.
눈을 돌려 궁전 중앙에 있는 정원을 벗어나 외각 산책길로 접어들었다. 이어폰으로 첼로 연주를 들으며 궁전을 나와 흐느적흐느적 공원을 맘껏 산책했다. 곧 겨울이 올 것처럼 싸늘한 날씨. 초록초록한 풍경이 내 것도 아닌 금보다 훨씬 좋다.
공원을 산책하다가 이리 곱게 비질이 되어있는 길을 자주 만났다. 소복하게 눈이 쌓인 하얀 길처럼, 헝클면 안 될 거 같아 결을 따라 살짝살짝 발을 떼며 걸었다. 이 넓은 곳을 비질하느라 하루 종일 고생이었겠네. 난 청소노동자가 좋다. 남을 위해 청소하는 사람은 마음도 넓고 깊을 거 같다.
노동하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존경심도 있다. 노동하는 사람 없이 세상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이 누리고 공유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노동의 결과물이다. 어떤 노동이든 존경받을 만한 건 아니다. 가치를 생산하는 활동에 대가가 주어지는 게 노동 규범이라고 놓고 본다면, 시급 1만 원을 받는 청소노동자는 임금 1만 원당 많게는 2만 원 가까운 가치를 생산한다. 그러나 연봉 1억을 받는 부동산 투기펀드 업체 직원은 1만 원당 19,800원의 가치를 파괴한다. 출처는 없다. 지금 머릿속에서 만든 수치니까. 아동 성착취 비디오 공유 사이트를 운영한 한국 남자를 감옥에서 빼낸 변호사가 파괴한 공동체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해 팔아치운 정치권력은, 산을 밀고 소수를 위한 골프장을 세운 건설회사는.
가지런한 비질 모양이 망가지지 않도록 사뿐사뿐 걸으며 청소라는 작업의 위대함을 생각한다. 청소는 사람의 일상을 유지시키고, 위생적 환경을 제공하며, 돌봄 받고 있다는 혹은 돌보고 있다는 고통이자 뿌듯함인 복잡한 마음을 가져온다. 나를 위해서건 타인을 위해서건 청소는 미래를 살게 한다. 곧 어질러져 또 다른 청소노동을 부르겠지만 그 공간의 항상성을 보장하면서 삶의 터전을 기능하게 한다. 사회적으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저임금과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점도 왠지 숭고한 것들이 자주 그렇듯 박해받는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청소가 펀드매니저나 변호사만큼 고임금에 타인이 욕망하는 노동이었다면 그리 숭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청소노동자는 혁명을 완수하기도 쉽다. 청소노동이 멈추면 사회도 공동체도 멈추니까. 아쉬운 건 이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자들은 청소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하긴 청소를 했다면 권력자 따위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난 당신을 기록하고 싶은 거라고요. 황금덩어리보다 당신의 비질이 더 좋았다고요. 계속 하시던 일 하시면 되는데, 귀찮게 안 할 건데. 이 청소노동자는 내가 찍으려 하는 사람이 자기인 줄도 모르고, 사진 찍는데 방해될까 봐 카메라를 내릴 때까지 차렷 자세를 풀지 않았다. 나도 괜히 미안해서 길거리를 찍는 척했다. 카메라를 거두자 다시 자기 업무로 돌아갔다.
이 노동자가 그저 청소를 계속했다면 나는 금방 카메라를 거두고 갈 길을 갔을 것이다. 자기가 주인공일 리 없다는 그 겸허한 마음이 숭고미를 더했고, 결국 그 사진으로 이 글의 주인공이 되었다. 여전히 리스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