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웃으며 싸우는 어른들

나이들수록 더 은밀해지는 서열 싸움

by 헤르메스의 편지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서열’에 민감하다.

또래들 사이에서도 누구의 서열이 더 높은지 자연스럽게 가늠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자신이 그 위에 서고 싶어 한다.


어릴 때는 그 욕망이 매우 직접적이고 투박하게 표출된다.


싸움이 대표적인 예다.

누가 더 세고, 누가 더 기세가 있는지 복도 한가운데서 확인하려 든다.


종종 ‘마, 비켜’, ‘이게 돌았나? 니가 비켜!’ 같은 유치한 말다툼에서부터 시작되지만,

그 안에는 단순한 감정싸움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바로 ‘서열 정리’다.


덩치, 주먹질 실력, 태권도 등 격투 유단자 여부까지 고려된다.

싸움을 피하더라도 그 정보를 통해 무언의 위계를 정리한다.


중요한 건 이 싸움들이 겉보기엔 유치해 보여도,

당사자에게는 지극히 진지한 ‘존재 증명’의 과정이라는 점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욕망이 사라지진 않는다.


청소년기를 지나면 직접적인 싸움 대신 다른 기준들이 등장한다.

공부 성적, 이성에게 인기를 끄는 정도, 대학의 이름값 등이 새로운 서열을 구성한다.


포털사이트에서 유독 ‘대학교 서열’ 관련 글들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웃으며 보지만, 사람들은 그 글에서 자신이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를 살핀다.


성인이 되면, 싸움의 무대는 다시 한 번 옮겨간다.

명함에 적힌 직장 이름, 직급, 연봉, 사는 아파트, 모는 차, 배우자의 외모까지 모든 게 전쟁터가 된다.
욕망은 그대로인데 표현 방식만 바뀐 것이다.


육두문자 대신 명함, 주먹 대신 시계


이제는 욕설이나 주먹질 대신 더 정제된 방식으로 신경전이 벌어진다.
비싼 시계를 슬쩍 드러내 보이고, 명함을 조심스레 건네며, "우리 집은 OO동에 있어요"라 말한다.

그 순간, 상대방은 말은 듣지 않고 ‘그 동네 시세’를 검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현대판 기세 싸움이다.
욕을 한 것도, 싸움을 건 것도 아니지만,

이상하게 기가 죽고, 마치 뺨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든다.


당한 쪽은 보란 듯이 반격한다.
"요즘 그 직장 잘 나가나? 별 얘기 없던데."
"너 그 시계 샀어? 요즘 개나 소나 그거 다들 하고 다니더라~"


분명 웃으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날 선 경쟁이 숨어 있다.

대화가 아니라 싸움인 것이다.

단지, 양복 입은 어른들의 방식일 뿐.


서열 본능, 그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이런 서열 본능을 부정하거나 비난하고 싶진 않다.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본능이기도 하니까.


수컷 공작이 쓰잘데기 없이 화려한 깃털을 자랑하고, 수사슴이 거대한 뿔을 들이대며 으스대는 것처럼,

인간도 무언가로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그것이 시계든, 명함이든, 아파트든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마주해야 하는 건, 이런 행동들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아는 것이다.
좋은 대학에 가고, 직장에서 승진하고, 부자가 되려는 욕망.


그것들이 단지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사실은 서열 본능에 뿌리 내린 경우가 많다.


인정할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마음이 가벼워진다.
‘나도 인정받고 싶어서 그런 거였구나.’
‘남보다 높아지고 싶었던 거였구나.’


많은 사람들이 이 본능을 감추기 위해 온갖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운다.

“내 자아실현을 위해서야”, “가족을 위해서”라고.

그 말들도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늘 ‘비교’가 있고,

그 비교는 대체로 서열이라는 틀 안에서 작동한다.


반대로, 자신의 본능을 정확히 인식하게 되면,

오히려 서열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내가 진짜로 즐거워하는 일이 무엇인지,
몰랐던 나만의 재능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 재능으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살아가는 경험을 하게 되면
'남보다 위에 있어야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나게 된다.


그런 삶을 살다 보면,
굳이 뾰족한 말을 하지 않아도,
굳이 싸우거나 물질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사람들은 당신을 존중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도 뿌듯함과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비교하지 않아도, 경쟁하지 않아도,

당신은 당신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방식으로 싸우고 있는가?


서열을 매기고 싶어 하는 욕망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하지만 그 본능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그 욕망을 인식하고도 그 위에 나를 세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어른이 된다.


당신은 지금, 그 본능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이 꿈꾸는 ‘최고의 자리’는,
단지 남들과의 비교에서 우위를 점하고 싶은 욕망일 뿐인가?
아니면, 당신 내면이 진심으로 원해왔던 자리인가?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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