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가난을 버티며 자존심을 지키려 발버둥치던 삶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바라보다.

by 헤르메스의 편지

난 지금은 대체로

인격적으로 존중받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내가 자라온 환경은 그 반대였다.

오늘은 그런 내 유년 시절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노름과 여자에 빠진 친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버지는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고등학교때부터 생계를 위해 일터로 나가야 했다.

운전만 할 줄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 없는 직업에 종사하셨다.


어머니 역시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만 마친 채

어린 나이에 생계를 위해 돈을 버셔야 했다.


20대 초반에 결혼한 두 분의 신혼살림은,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처음엔 20평 남짓한 전세 아파트에 살았었다.
그 집에서 큰아버지의 세 딸, 즉 나에겐 누님 셋과 친할머니,

그리고 우리 식구까지 바글바글 모여 살았다.


어머니는 대가족 안에서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고,

나를 임신하고서도 너무 힘들어 나를 유산시키기 위해

독한 술도 마시고 높은 곳에서 쿵쿵 뛰기도 하셨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까지 왜 나에게 말씀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많이 힘드셨으니 그러셨겠지 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어땠는지 난 태어나면서 허약한 체질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아플때면 본인때문이라고 자책하며 많이 힘들어하셨다.

어찌되었건 난 태어나고 나서도

어머니는 갓난아기인 나를 가난해서 제대로 먹이지 못한다는 사실에 괴로워하셨다.


그 시절, 옆집 아주머니가 우리 어머니를 안타까워하며 말씀하셨다.
“아이고, 앳된 새댁 같은데 너무 고생하네. 우유를 우리 집으로 시켜놓을 테니, 다른 사람들 모르게 가져다가 아기 좀 먹여. 둘 다 너무 야위어서 내가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그래.”
어머니는 그 우유를 다른 가족들 몰래 나에게 먹이셨다고 한다.

에피소드는 내가 성인이 되서 어머니가 처음 꺼내셨고, 그 이야기를 하시며 울컥하셨던 기억이 난다.


내가 다섯 살쯤이었을까. 그 때는 남의 집 지하 셋방에서 살았다.
그곳 부엌에는 팔뚝만 한 시커먼 쥐들이 돌아다녔고, 아버지는 삽으로 그 쥐들을 내리치며 잡으셨었다.

어머니는 비명을 질렀고, 나는 그 상황이 뭔지도 모른 채 손뼉을 치고 웃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영양실조에 허약한 몸, 거듭된 이사,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부모님은 마침내 서울 외곽의 작은 아파트를 분양받으며 우리 가족만의 보금자리를 만들었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작은아버지가 이런저런 사고를 칠 때마다, 그 수습 비용이 고스란히 우리 집에서 나갔던 것이다.

부모님이 악착같이 일해가며 모은 소중한 돈이기에

어머니는 절대 작은아버지 사고 수습 비용으로 줄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친할머니는 작은아버지를 도와달라고 아버지에게 하소연을 하셨고,

아버지는 친할머니의 하소연을 외면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그 선택에 분노하셨다.


집안 싸움은 끊이질 않았고, 우리 집안이 풍비박살이 나는 날이 잦았다.

나는 두 분이 싸우실 때면 무서워서 동생과 함께 작은방에 숨어서 울곤 했다.


이런 유년 시절을 보내며 나는 자연스레 기가 죽고, 눈치를 보며 살았다.
그러다가도 누가 나를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면

내 안에 쌓인 분노가 폭발해 또래들과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귀티나는 내 외모만 보고 나를 부잣집 아이로 착각했던 담임선생이 있었다.

그 선생은 처음엔 나를 아이들 앞에서 치켜세웠고, 결국 선거를 통해 내가 임원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 후 담임선생은 우리 부모님에게 촌지를 요구했는데, 돈이 없던 우리 부모님은 거절하셨다.

그에 분노한 그 사람은 태도가 돌변하여 아이들 앞에서 나를 공개적으로 망신 주고 자존감을 짓밟았다.

그 일로 몇몇 애들은 나를 덩달아 무시하였고, 그에 분노한 나는 애들과 싸움이 잦았다.

그 담임 선생의 이름과 얼굴은 아직도 또렷하다. 잘 살고 계신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상처와 열등감이 나를 공부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중학교에 올라가 보니 공부를 잘하면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내게 처음으로 ‘나를 지키는 보호막’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처음에는 무시를 받지 않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곧 사춘기를 겪으면서 다시 공부를 안하고 많이 방황을 했었다.


그래도 어떻게 간신히 서울에 있는 나름 명문대를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내 방황은 끝나지 않았다.


부모님을 잘 만나서 별 다른 노력없이도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또래들이 보였다.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게 느껴졌고, 나의 삶을 저주하곤 했다.

나는 왜 가난한 부모님을 만나서

이렇게 고생하며 사는데도 제대로 혜택도 못받고 사는가에 대한 분노가 컸다.


악착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면서 고생하고 있는 나보다

그냥 해맑게 웃고 노는 또래들이

더 잘 사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비참했고 견디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대로 내 삶을 무너뜨릴 순 없었다.

나의 열등감과 분노를 가지고

내 삶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데 쓰자고 결심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평가되는 시험들 중 하나에 도전하였다.


하지만 그 도전은 쉽지 않았다.

열등감과 분노만으로는 뛰어넘기 힘든 시험이었다.

아무래도 내 재능과 노력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싸움같았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나에게 모든 기대를 걸었던 것 같다.


내 동생은 원래 하고 싶었던 꿈이 있었다.

그래서 공부를 더 하려 했는데,

형이 시험공부를 하는 바람에 그 꿈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집에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어머니는 내 동생보고 취업하라고 다그쳤고,

동생은 마지 못해 취업하기에 이르렀다.


나중에는 아버지 마이너스 통장도 거의 한도가 다 차버렸다.

내가 아버지 마이너스 통장에서 공부를 위한 돈을 빼가고 있었기에

한도가 넘칠까봐 조마조마했다.

아버지는 내 공부에 영향이 갈까봐 마이너스를 메꾸려고 엄청난 노력을 하셨다.


그렇게까지 온 가족이 노력을 했어도 그 시험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내 생각보다 수험기간이 길어지면서 내 마음은 초조해졌다.

점점 나이는 먹어가고, 이대로 계속 불합격한다면

다른 분야에 취업은 힘들어질 나이가 되겠다고 위기의식을 느꼈다.


결국 최후의 승부를 건다고 비장하게 공부해서 시험을 본 날,

불합격을 직감하고 술을 퍼마시며

서럽게 밤새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다음날 몸져 누워있는 나에게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아들, 속 좀 풀게 북어국 좀 마셔. 힘내."

난 간신히 몸을 이끌어 북어국을 마셨다.

근데, 너무 짰다. 나도 모르게 뱉었다.

"아니 이걸 어떻게 먹어? 너무 짜자나!"

어머니가 한 입 드셔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아니 왜? 난 괜찮은데."


그 때 알아챘다.

어머니는 멀쩡한 척을 하셨지만 입맛을 나보다도 잃어버리셨다는 것을.


합격자 발표날, 난 불합격했음을 확실히 인지하였다.


모든 의욕과 자신감을 잃어버린 난

이제 시험을 포기한다고 가족들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더 늦기 전에 다른 길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그 때 동생이 나에게 고급 잠바와 돈을 내밀었다.

"형, 옷이 그게 뭐야? 추운데 낡은 그런 옷 말고 이거 입어.

그리고 일년만 더해봐. 내가 학비는 지원해줄게"


나 때문에 자기 꿈을 포기하고 취업을 한 동생이,

누구보다 나를 원망해야 할 동생이

그렇게 나오니 난 너무 당황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가족들에게 말했다.

"진짜, 일년만 딱 마지막 최선을 다해볼게."


그리고, 난 그 때부터 정말 내 인생에서 그렇게 최선을 다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공부했다.

난 쉬는 날도 없이 공부했다.

내가 유일하게 쉴 때는 공부하다가 잠깐 엎드려서 잘 때였다.

팔이 아프면 파스를 붙이고 공부했다. 펜을 하도 잡아서 굳은 살이 베기면 밴드를 붙였다.


잠도 많이 자고, 게임도 술도 좋아하던 내가

잠도 줄이고 게임과 술은 아예 끊었다.

핸드폰도 방에 두고 독서실을 갔다.

오로지 공부였다. 그 외엔 모든 것이 사치였다.


그렇게 미친듯이 공부해서 침착하게 시험을 보고 결국 합격했다.


합격자 발표날, 온 가족이 펑펑 울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성적도 생각보다 많이 높았다.

그렇게 난 꿈으로만 생각했던 곳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원래 쓰고 싶었던 다른 이슈가 있었는데,

글을 쓰다보니 내 유년시절 이야기로 끝나버렸다.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냥 내가 예전부터 믿고 있는 음가짐 대해 여러분들께 소개하고 끝내려 한다.


"열등감, 사회에 대한 분노, 억울함이라는 감정을 사회나 남을 탓하는데 쓰지 말자.

그래봤자 바뀌는 거 없고 나만 손해다.

대신 나를 발전시키는 에너지로 쓴다면 엄청난 연료가 될 것이고,

그것은 결국 스스로를 크게 발전시키고 내 인생을 바꿀 것이다.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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