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이 왜 '나쁜 사람'이 되는가
착함과 유능함 사이에서 균형 잡기
“그 사람, 참 착하고 좋은 사람이야.”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한다.
그런데 이 말,
‘어디서’ 만난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지에 따라
의미는 달라진다.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이라는 개념은 생각보다 모호하다.
어디에서 만났는지, 어떤 목적으로 만났는지,
나와의 성격 궁합은 어떤지에 따라
같은 사람이라도 전혀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친목 모임에서 만난 사람이라면
배려심 있고,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지 않고,
갈등 상황에서 한발 물러서며,
타인의 감정을 살피는 사람이
‘좋은 사람’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직장은 다르다.
"착한 사람이 억울하게 당한다"는 오해
이 주제로 글을 쓰려 하니, 조금 걱정이 들었다.
혹시 이런 식으로 오해받지 않을까?
"직장은 착한 사람이 억울하게 당하고,
못된 사람이 더 잘 나가는 구조다"
답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은
그 자리에 앉힐 만큼 적합한 사람을 대체로 잘 선택한다.
높은 자리에 갈수록,
유능함과 함께 덕(德)을 겸비한 사람도 적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중
잘되는 사람들도 있다.)
드물게 정말 부적절한 사람이 요직에 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오래 버티지 못하거나,
자리에서 물러난 뒤의 삶이 좋지 않았다.
이는 곧,
직장도 나름의 기준과 합리성을 가지고
사람을 뽑고 평가한다는 뜻이다.
다만 중요한 사실은,
일상생활에서의 ‘착한 사람’ 모습만으로는
직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이다.
친목의 ‘좋은 사람’ vs 직장의 ‘좋은 사람’
내가 생각하는 친목형 '좋은 사람'은 이렇다.
타인의 입장을 잘 배려한다.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는다.
갈등이 생기면 양보한다.
누군가 불편해할까봐 말과 행동을 조심한다.
결정이나 선택의 주도권을 상대에게 넘긴다.
이런 사람은 분명히 인간적으로 매우 호감이 간다.
함께 있으면 편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이 직장에서 그대로 행동하면 어떻게 될까?
타인의 입장을 배려하고 머뭇거리다가 자기 이익을 주장할 타이밍을 놓친다.
갈등을 피해 양보하다가 남들에게 공을 가로채인다.
반격이 필요한 순간에도 말과 행동을 조심하는 습관때문에 조용히 맞기만 한다.
중요한 업무나 협상에서 상대방에게 주도권을 넘겨 버린다.
이렇게 되면 개인의 손해로만 끝나지 않는다.
팀 전체, 나아가 조직 전체가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인간적으로는 좋은 사람일지 몰라도,
회사에서는 '부적절한 사람',
심하면 '나쁜 사람'으로 전락한다.
회사에서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회사는 공동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따라서 조직의 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평가한다.
예를 들어,
남들의 공격에 휘둘리지 않고,
대화나 협상의 주도권을 가져오며,
상대방의 공격에는 반격을 하고,
필요한 순간엔 선제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압박하는 등
미션을 침착하게, 책임감있게 수행하는 사람.
그 결과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이익에도 기여한다면
그 사람은 회사에서 인정받는 ‘좋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래서 고민이 시작되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양보를 잘하고, 배려가 많고,
싸움을 싫어해서 왠만하면 피하는 성격이다.
이 성격을 바꾸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그리고 실제로 이 성격이 직장 생활을 어렵게도 하지만,
때로는 큰 강점이 되기도 한다.
또한, 당장은 직장을 그만둘 생각도 없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다.
“내 성격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조직이 요구하는 미션을 완수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내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회사에서 ‘좋은 사람’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싸움은 피하면서도 싸움에 지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기회는 잡되, 억지로 나를 바꾸지 않아도 되는 전략은 없을까?
앞으로의 글들은 그 고민을 한 결과의 흔적들이다.
앞으로 나는 이 공간을 통해
착함과 유능함 사이의 균형,
진짜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했던 고민들을
하나씩 나눠보려 한다.
나답게, 그러나 바보처럼 살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