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촐한 책 모임을 만들며
책 모임을 하나 만들었다.
서로 다른 나이와 좋아하는 관심 분야가 다른 세 사람이 모일 예정이다.
자녀의 나이를 보니 미취학 아동, 초등 고학년, 대학생 이렇게 모두 다르다.
각자에게 해 줄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어찌하다 보니 내가 모임을 이끌게 되었다.
나머지 두 분에게 말로써 이야기를 전하려다가 활자화하여 전해드리는 게 나아 보였다.
그동안 생각했던 독서 모임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책 읽는 모임의 목적
다 같이 모여서 읽는다.
우리가 원하는 건 오로지 재미다.
책 읽는 재미가 반감되면 계속할 수 없다.
모임에 오는 준비물
본인이 좋아하는 책이나 읽고 싶은 책을 들고 온다.
처음 모임에는 그저 들고 왔다가 그냥 들고 갈 수도 있다.
언젠가는 읽을 시간이 생길 테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읽는 재미 그것 하나만 생각한다.
단계별 진행 방법
1단계 책 휴대의 습관화
세 명 모두 직장인이다. 책 읽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고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첫 3주는 우선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우선 책을 들고만 다니는 것이다. 거창한 목표는 필요하지 않다. 단순 명료하면서 간단해야 한다. 그리고 실행이 확실한 방법이어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2단계 책과 친해지면 펼치기만 하기
책을 들고 다니다 보면 책과 친해진다. 들고 다니다 보면 틈새 시간이 생긴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 버스나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간, 미팅 상대방을 기다리는 시간 등등 약 1분에서 5분의 자투리 시간이 생긴다. 그 시간에 역시나 읽으면 안 된다. 펼쳐보기만 한다. 마치 책에 어떤 내용이 있나 훑어보기만 한다. 그렇게 또 3주를 보낸다. 인생을 그렇게 허무하게 보내도 되겠나 싶지만 어차피 책 읽지 않던 사람이 읽는 사람으로 변화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렇게 서두를 필요 없다.
(2단계에서는 괜찮은 내용을 펼쳐서 사진을 찍어 같이 공유해보는 것도 괜찮아 보이는데 숙제처럼 보일까 염려스럽다.)
3단계 한 줄만 읽어보기
책을 펼쳤으니 일단 한 줄 읽어본다. 그러다 재미있으면 더 읽고 재미없으면 덮는다. 한 줄도 안되면 단어 하나만 읽는다. 마치 불교 선문답을 하듯 단어 하나만 집중해도 상관없다. 오히려 단어 하나만 읽고 생각을 하다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눈에게 이제 읽을 때가 되었다고 얘기해주는 것이다.
(4단계부터는 책 읽는 수준에 따라서 진행해 볼 생각이다.)
4단계 부담 없는 책 읽기를 넘어 한 번 더 읽기
이 정도쯤이면 아마 책 읽는 것이 어느 정도 습관화되었을 것이다. 이쯤부터는 한 번 읽고 끝나는 독서가 아니라 다양한 독서 방법을 시도해 본다.
참고도서 읽기 : 실용서를 보면 보통 부록에 보면 글을 쓰면서 참고한 서적들이 나온다. 그 책을 찾아서 읽는 것이다. 아니면 본문 중에 언급된 독서를 찾아서 읽어본다.
파도타기 독서 : 글쓴이가 슨 다른 책을 읽거나 비슷한 주제의 책을 읽어본다.
관점 독서 : 특정 인물의 시야에서 본다던가, 특정 직업인의 시야에서 보았을 때의 느낌, 다른 사람이 느꼈던 부분을 나는 어떻게 느꼈는지 비교해 본다.
5단계 발제 후 토론하기
회원 모두가 좋아하는 책을 하나 골라서 읽고 나서 주제를 하나 정한다. 책 내용 중에 관심이 있거나 느낌이 강한 부분의 주제를 고른다. 그러고 나서 회원끼리 각자의 느낌과 생각을 토론해 본다.
6단계 서평이나 글을 쓴 후 상호 평가해주기
책의 내용을 장기 기억으로 넘기기 위해서는 인출을 해야 한다. 기억을 끄집어내는 노력이 들어가야 머릿속에 오래 남는다. 이런 작업이 없으면 그저 책을 읽어봤다는 지적 위안에 그치고 만다. 그래서 보통의 독서 모임에서는 서평이나 글 쓰기를 한 후 모임을 한다. 그렇게 본인이 어떤 문자의 형태로 기억을 끄집어냈을 때 토론 모임에서도 활발하게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서평이나 글 쓰기의 문제점은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숙제처럼 느껴져서 독서의 재미를 반감시킨다. 그래서 이 정도 수준은 어느 정도 독서가 몸에 붙고 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때 하는 것이 괜찮아 보였다.
7단계 한 권을 정해서 요약하여 발표
책에 대한 느낌을 말하는 것과 한 권의 전체적인 내용을 요약해서 말하는 것은 수준이 다르다. 책의 내용도 머릿속에 들어가 있어야 하고 남들 앞에서 말한다는 부담감도 있다. 이 수준은 본인이 할 수만 있으면 느끼는 점이 많을 텐데 무리해서 해 볼 생각은 없다. 회원 모두가 원하는 때가 오면 해 볼 예정이다.
상호 도서관 (회원 간 책 교환)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책을 가지고 있다. 자기만의 관심사가 있기 때문에 보는 책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서로의 책장을 공유하고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빌려주고 돌려받는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빌려주고 빌려 받는 사람에 대한 상호 신뢰가 쌓여야 한다. 최소 3,4개월의 상호에 대한 신뢰가 생긴 뒤에 적용해 볼 생각이다.
단 지켜야 할 원칙이 몇 가지 있다.
-책 보유자를 고려한 읽기 ; 새책처럼 조심스럽게
(책을 보는 사람마다 책 읽는 방법이 다르다. 나의 경우 책에 밑줄도 긋고 낙서도 하고 읽는 편이다. 하지만 다른 분은 다음에도 새책의 느낌을 받고 싶어서 조심스럽게 읽는다. 독서의 취향은 서로 존중해주어야 한다. 내가 읽는 방식이 그렇다고 다른 이의 책에 밑줄을 긋거나 낙서를 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도서관 제도의 근간이 흔들린다. 빌린 책은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 3주 내에 원 소유자에게 돌려준다.
(돈을 빌려간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빌려준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잊지 않는다. 책도 마찬가지다. 빌려간 사람은 빌린 뒤에 잠시 잊을 수 있지만 원 소유자는 언제 돌려주나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3주 내에 돌려주는 것으로 원칙을 정했다. 물론 원 소유자가 허락한다면 다시 빌려줄 수 있다.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반드시 모임에 들고 나왔다가 다시 빌려간다. 그렇게 귀찮게 해야 책을 기한 내에 읽을 수 있다. )
- 잃어버리면 책값의 최소 10배 배상한다.
(나만의 생각이 적힌 책을 빌려줬다가 잃어버리면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 경우에는 빌려주지 않는 것이 맞겠지? 아예 잃어버릴 생각을 하고 빌려주기로 해야 할 듯하다. 다만 빌려간 사람이 잃어버릴 경우에 대비해 10배의 보상 제도를 두었다. 책을 보유한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정성이라 생각한다.)
이 모임이 얼마나 어떻게 진행될지 아직은 모르겠다. 몇 주 하다가 그만두게 될지 아니면 계속하게 될지. 하지만 다만 한 번이라도 같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눈다면 인생에 무언가 의미 있는 생각을 하나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인생에 쓸모없는 경험이라는 없다는 생각을 해 보며 책 모임을 잘 진행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