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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May 08. 2019

통장에 쓰는 편지

어버이날 현금 송금

딸이 손에 쥔 종이 하나를 내민다

본인이 용돈으로 받은 천원도 주겠다고 한다

나는 괜찮다며 다시 돌려주었다.


나 역시 자녀로서 부모님 얼굴을 뵙고 직접 선물을 드리는 게 맞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지라 계좌로 현금을 보내드리고 인사를 드리려 했다.

문득 십여 년 전 계좌 조사를 할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 당시 상속세를 조사하고 있었다.

돌아가신 분과 배우자 그리고 자녀의 계좌 거래내역을 검토했었다.

자녀 한 명의 계좌에 매월 입금되는 금액의 비고란에 특이한 메모가 있었다.


사랑해요

고마워요

쥐꼬리

소꼬리 반쪽

보너스가 그립다

(송금자 메모는 공백이 허용되지 않으며

최대 10자 이내다)


배우자가 생활비를 보내면서 매월 문구를 달리 했다.

통장에 찍히는 메모를 보면서 상대방이 웃음을 짓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 역시 부모님께 돈을 보내며 생각해 보았다.

그냥 아무런 메모도 없이 무미건조하게 내 이름이 찍힌 돈을 보낼 것인지 아니면 작은 인사라도 들어간 의미 있는 돈을 보낼 것인지

예전 비고란에 편지를 보냈던 아이디어를 통장에 적용하여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보내드렸다.

아마도 나와 아내의 양가 부모님이 통장에 찍힌 메모를 보면 가끔은 웃음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버지가 예전에 내게 해주셨던 말씀을 이제야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


“아버지, 어머니 죽고 나서 좋은 제사상 차려야 아무 소용이 없단다.

평소에 연락 자주 하고 수시로 안부만 전해주면 부모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구나.

특히 너의 엄마는 딸이 없어서 말 상대가 없으니 자주 연락해 드리려무나.”


오늘이 가기 전 영상통화라도 양쪽 부모님과 해야겠다.

그것이 진정한 마음의 선물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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