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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Oct 23. 2019

통영의 그 바닷가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다

  여름이 오면 우리 가족은 남해로 갔다. 통영, 거제, 부산, 여수. 우리나라 지도에 보이는 남해를 찾아 떠돌았다. 우리가 아니 정확하게는 내가 왜 그렇게 남해를 찾았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가급적 서울에서 가장 먼 곳으로, 다만 사람이 적은 곳으로 가자며 남해로 향하지 않았을까?


  남해는 아이들이 지금보다 몸무게가 가벼웠을 때 많이 다녔다. 길에서 낭비하는 시간이 너무 싫어서 새벽 3시에 일어나 4시에 출발했다. 전날 대부분의 짐은 차에 실어놓고 새벽에 냉장이 필요한 음식 정도만 꺼내서 집을 나왔다. 누가 보면 마치 새벽에 야반도주라도 하는 듯 보였을게다. 가방 여러 개에 잠든 아이들까지 들쳐 메고 가는 모습이 영락없이 빚진 채무자가 빚쟁이를 피해 도망가는 모습으로 비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새벽 4시에 출발하면 남해 바닷가에는 아침 9시쯤 닿았다. 5시간을 그렇게 미친 듯이 달려 바닷가를 향했다. 조금 여유롭게 가면 좋으련만 20대, 30대의 나는 왜 그리 속도에 미쳐 있었는지 기다리는 게 너무도 싫어 제한속도에 가깝게 차를 몰았다. 남들보다 약간이라도 늦게 가거나 뒤쳐지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그나마 가족들이 무탈하게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다행일 정도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새벽의 졸음을 쫓기 위해 클래식을 들었다. 클래식을 들으면 졸린 것이 일반적이지만 오히려 내게 클래식은 잠을 깨우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들에게는 잔잔한 클래식과 이른 새벽의 공기, 차의 규칙적인 떨림까지 수면을 끌어주는 요소가 너무 많아 아내와 아이들은 차에 타자마자 이내 잠이 들었다. 아마도 아내가 여행 내내 깨어 있었더라면 스트레스로 여행을 시작하지 않았을까?

여전히 돌 던지기 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들

  이제는 더 이상 아이를 둘러업고 다닐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아이들이 더 이상 자동차 뒷자리에 눕혀지지도 않을뿐더러 들어 올릴 수도 없는 몸무게가 되었다.(고속도로에서 자동차 뒤 자리에 안전벨트 없이 눕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제야 깨닫고 있다.) 그렇게 우리 아이들은 자기 발로 일어나기를 바라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문득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5,6년쯤 남았다는 느낌이 든다. 주변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가자고 해도 따라가지 않는 나이가 얼마 남지 않았다. 다가오는 여름, 더 이상 아이들이 철이 들기 전에 다시 한번 그 바닷가를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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