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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Feb 21. 2020

아빠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아빠, 지금의 아빠

  내가 아버지를 아빠라고 마지막으로 불렀던 시기가 언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가 시키지도 않고 어떤 시기가 되면 아빠 대신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지 몰랐지만 중학생이 되며 나는 아빠를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아버지에게 가끔 안부 전화나 문자를 드리며 아빠라고 살갑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다 큰 어른이라는 무게감이 친근하게 대하려는 나를 막는다.


  어느덧 내가 기억하는 젊은 아버지보다 더 나이가 든 아빠가 되었다. 내 기준으로 본다면 초등학교 6학년을 지나는 우리 아이가 아빠라고 불러줄 날도 몇 년 남지 않은 셈이다.


  아버지가 내게 주셨던 사랑만큼 아버지에게 돌려드리지 못하니 나의 자녀에게 대신 갚아야겠다는 부채의식이 든다. 아버지가 바라시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어렴풋이 생각해 본다.


  아버지는 내게 늘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셨다. 자기 능력 개발을 위해 새벽까지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를 하셨다. 아내의 단점을 보완해주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고민하며 이런저런 해결책을 주셨다. 다른 친척들과 잘 어울리며 자리를 마련하셨고 모임을 만들어 총무 역할까지 도맡아 하셨다. 그런 아버지 덕분에 매년 한 번씩은 친척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당연히 보는 거라 생각했지만 커서 보니 그만큼 큰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나의 외할머니인 즉, 본인의 장모님을 잘 모셨던 거 같다. 자신의 어머니가 중학교 시절 일찍 돌아가신 것이 이유였는지는 몰라도 친어머니처럼 잘 대해 주셨다.


  체력적인 면에서도 누구에게 뒤지지 않았다. 나는 내가 크면 아버지의 체력을 넘어설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아버지에 비해 부족하다. 어린 시절부터 농사일로 다져진 아버지의 힘을 여전히 따라갈 수 없었다.


  아버지가 유명 인사도 그렇게 큰 부자도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그저 내게는 가장 존경스러운 사람처럼 보였다. 나도 아버지의 반만큼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꾸만 내가 어렸을 적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과연 나의 아버지에 비해 우리 아이들과 아내에게 과연 잘하고 있는 건가? 마음속 질문에 대해 “예”라는 대답을 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당신은 그렇게 부모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으면서 본인은 가족들에게 너무 인색한 것 아니냐라는 아내의 질문에 딱히 답변할만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지극히 이기적인 아빠였나 싶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들었던 “아빠, 사랑해요”를 나는 아버지에게 할 수 있을까? 퇴근길 버스에서 생각해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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