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에 담긴 가족 이야기]
평소 아버지와 메신저로 대화를 하면 메시지가 두 줄을 넘어가지 않는다.
"아들 잘 지내니? 별일 없지?"
"네, 아버지. 아이들이랑 다 잘 지내고 있어요."
"그래, 잘 지낸다니 다행이다. 또 연락 하마."
"네, 아버지도 건강 조심하세요."
마치 대화를 복사해서 붙여 넣은 듯 시간만 다를 뿐 며칠 만에 한 번씩 같은 대화가 이어진다. 그나마 부탁할 일이 있어야 긴 대화가 이어진다. 아버지에게 도움은 못 드릴 지언정 늘 부탁만 드리는 아들로서 면목이 없다. 매번 귀찮은 부탁일 텐데 말없이 해주시는 아버지께 그나마 메시지로 감사를 드린다.
이번에는 김치가 메신저 역할을 맡았다. 중국산 김치에 질려서 아버지께 집에서 담근 김치를 부탁드릴까 고민했다. EMS 가격도 만만치 않지만 비닐 포장에 여러 번 박스 포장까지 하려면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 고생 끝에 김치가 온다는 것을 알기에 선뜻 부탁드리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필요한 것 있으면 이야기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나도 모르게 '혹시 김치 있으시면 보내주세요.'라고 진심을 말해버리고 말았다. '사 먹는 것보다 돈도 품도 많이 드는 김치를 왜 부탁했을까?' 정신을 차리고 나서 '힘드실 텐데 그냥 두세요.'라는 말은 이미 부모님 귓전에는 들리지 않는다. '알았다.'는 짧은 마디에서 또 한 동안 고생하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져서 나도 모르게 힘든 부탁을 드린 입이 오늘따라 밉다.
분명 어머니와 아버지는 소소하게 다투시는 모습이 예상되었다.
"햇김치를 보내줘야죠." "그러다 터지면 어쩌려고."
"이 포기가 커요." "너무 크면 상자에 안 들어가."
"몇 포기나 된다고 그래요." "무게 많이 나가서 더 안 들어가."
조금이라도 더 보내려는 어머니와 적당히 보내자는 아버지가 별것 아닌 김치를 두고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실게 보였다. 그렇게 신김치가 어머니와 아버지의 숱한 의견 조율 끝에 어렵게 어렵게 상자에 담겼을게다.
EMS 상자가 가는 내내 부모님은 '김치가 터지면 어쩌나?' 노심초사하셨을게다. 접수창구에서 '잘못하면 도착할 때까지 30일 넘게 걸린다'는 이야기에 괜히 보내는 건 아닌지 또 한 번 하지 않아도 될 근심을 얹어 드렸다.
그렇게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듯 우리 집 가족들은 EMS 상자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혹시나 터질지 모를까 아버지가 이중 삼중으로 포장한 EMS 상자가 도착했다. 신김치 하나에 가족 모두 다른 꿈을 꾼다. 아내는 김치 만두를, 아들은 김치전을, 딸은 두부김치를, 나는 김치찜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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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힘들게 부쳐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아버지는 힘들게 김치를 보내주셨지만 그래도 햇김치를 보내지 못해 못내 미안하신지 평소와 다르게 긴 문자를 보내주셨다.
그렇게 아버지가 보내주신 신김치 한 박스가 냉장고 한 쪽에 자리를 잡았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아버지가 보내준 신김치에서 아버지의 인사말이 자꾸 떠오른다.
"아들아 잘 지내지. 무탈하게 지내거라."
아버지 감사합니다. 당분간은 반찬 걱정 없이 맛있게 먹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