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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Jun 15. 2020

딸의 독설

저녁 만담

  주말 저녁 아들이 집에서 밥을 먹기 싫은 모양이다. 마치 자기 폰 인양 아빠의 스마트폰을 손에 든 채 햄버거를 비롯해 돈가스, 피자 등등 밖에서 파는 음식을 열심히 검색하더니 '맛있겠다'를 연발한다. 그러더니 엄마한테 한 마디를 슬쩍 흘려본다.
  "엄마 오늘 외식하면 안 돼요?"

  잠시 고민하던 아내, 아들이 이럴 때는 특히나 집요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그래. 그럼 엄마가 푸는 이 스도쿠(9줄*9줄 수학 퀴즈) 풀면 나가서 먹자꾸나."

아내의 취미인 스도쿠

  아들은 어찌해야 할지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본인이 제일 싫어하는 머리 쓰는 수학 문제다. 엄마가 매일 재미있다고 푸는 스도쿠를 세상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본 아들이 과연 수긍할까 싶었다. 아들 옆에 있던 딸은 나가는 게 귀찮았던지 오빠에게 깐족거리며 이렇게 말한다.

  "엄마가 준 밥 들고 베란다에서 먹으면 되겠네. 밖에서 먹으니깐 외식 아니야?"

  '어쩜 저리 버릇없게 이야기하는지' 나는 예의 없는 딸에게 오빠에게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혼을 냈다. 아들은 이런 주변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반드시 외식을 하고 말리라는 강한 집념으로 도전에 응했다. 학교 시험 볼 때 보다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들은 숱한 도전 끝에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는 스도쿠 문제를 풀어 외식 식사권을 획득했다.


  딸내미는 나가서 먹자는 오빠의 이야기를 들어줬다고 아빠에게 삐졌는지 이번에는 아빠 놀리기를 시전 중이다.

  "아빠가 요리해주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아빠 피부가 지성이잖아요. 그러니까 기름이 모자라면 이마에서 짜서 쓰면 되는 거 아니에요?"

  옆에 있던 아내는 크게 웃음을 짓지는 못하고 '그런 말 하면 못쓴다'며 다시금 혼내고 있다.

  마음 같아선 '니 피부도 지성이거든.' 이 말을 해주고 싶지만 아이와 싸우는 어른의 모양새가 보기에 좋지 않아 그만두었다.


  얼른 옷을 입고 준비를 했으면 좋겠건만 딸은 이런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빨리 준비를 하라고 닦달을 해도 미적거린다. 갑자기 옷 입다 말고 딸내미가 갑자기 심장론을 꺼낸다.

  "미안한데, 아빠 엄마가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내 심장은 방탄유리로 지키고 있어서 괜찮아요. 오빠처럼 눈물샘으로 가득한 심장이 아니라서요."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나에게 딸은 이런 말을 전해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아빠 피인가 봐요. 돌로 된 심장을 가진 아빠잖아요. 어떤 이야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돌로 된 심장이죠. 하지만 엄마는 솜으로 된 심장이라 힘이 없어요. 그러니까 난 아빠 유전이죠."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밥이나 먹으러 나가자."

  자꾸 딴지를 거는 딸내미를 데리고 밖으로 향했다.


  “배부르죠?”

  저녁 식사를 끝내고 들어오는 길, 아내가 물었다.

  “뭐 더 먹을까요?”

  나는 배가 고파 묻는 줄 알고 아내에게 물었다. 그런데 곁에 있던 딸이 한 마디를 보탠다.

  “아니, 아빠 무슨 뜻인지 몰라서 묻는 거예요? 엄마가 차 한잔 하자는 소리잖아요.”

  '그냥 그럼 차 한잔 하자' 하면 될 것을 이러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속사포처럼 말을 이어간다.

  “아니 엄마랑 10년을 넘게 살았으면서 매번 그러더라. 앞으로 40년은 더 걸리겠어요.”

  딸내미는 한 대 쥐어박을 새도 없이 얄미운 말들을 쏟아낸다.


  이번엔 양육비 이야기가 나왔다. 딸이 자기의 자식에게는 숙박비에 분유와 식사 값에 키워준 수고비를 나중에 받겠단다. 본인이 고생했으니 그만큼 돈을 받아야 한단다.

"그럼, 너도 엄마 아빠에게 돈을 내야 하겠네"하고 내가 물었다.

그랬더니 갑자기 딸은 정색을 하더니.

"아빠, 오억만 빌려줘!"라며 손을 내민다.

"응?"

나는 무슨 말인가 했더니

"키워 준 값이 계산해보니 30억은 될 거 아니야. 그럼 5억은 내가 나중에 돈 벌어서 갚고, 나머지 25억은 부자 신랑 만나서 갚을게."


도대체 우리 집 딸내미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까? 딸의 가정교육을 어찌 시켜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다른 아빠들은 딸바보라 딸을 예뻐라 한다던데. 이렇게 꼬박꼬박 말대꾸에 아빠 무시를 일삼는 자존심 강한 딸을 둔 나에게 딸바보는 머나먼 이야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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