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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Aug 09. 2020

나에게 허락된 자유를 잊었다

[잠수종과 나비]-장 도미니크 보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밥 먹기 귀찮을 때 간단히 알 약 하나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굳이 식당에 찾아가야 할 필요도 없고, 메뉴 고민을 할 필요도 없으며, 균형 잡힌 영양원을 공급해 준다면 알약 하나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였다.   


p.56 

위와 연결된 존데를 통해 투여되는 두세 병 분량의 갈색 물질이 나의 하루분 필요 열량을 충당해 준다. 

다만 감각적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머릿속에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맛과 냄새에 대한 기억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도미니크 보비의 글을 읽으며 인간에게 음식이 주는 즐거움을 그저 알약 하나로 대체할 수 없음을 조금은 깨달았다. 인간의 즐거움 중에 먹는 것이라는 것을 빼앗기는 것이 얼마나 큰 슬픔이 될지 나는 예상하지 못했다.


  [잠수종과 나비] 제목이 참 독특하다. 어떤 뜻일까?

  잘 나가는 잡지의 편집장이자 음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유머러스한 말을 구사하며 가족에게 좋은 아빠였다. 하지만 그런 40대 중반 황금의 시기에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만다. 3주 후 의식에서 깨어난 그에게 오로지 자유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왼쪽 눈꺼풀과 약간의 고갯짓뿐이었다. 얼굴에 앉은 파리 한 마리조차 자신의 의지대로 떼어낼 수 없었다. 


p.150

검은 파리 한 마리가 내 콧잔등에 와서 앉는다. 나는 파리를 쫓으려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본다. 그래도 놈은 버티고 있다. 올림픽 때 구경한 그레코로만형 레슬링 경기도 지금처럼 처절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 눈을 떴는데 말할 수도 없고 팔다리도 움직일 수 없으며 음식조차 삼킬 수 없는 그가 느꼈을 절망이란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은 그에게 마치 잠수종과 같이 무겁고 답답했을 것이다. 그는 자유롭게 움직이는 나비가 되기를 꿈꾸었고 결국 죽음으로써 나비가 되었다.


p. 16

  잠수종이 한결 덜 갑갑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면, 나의 정신은 비로소 나비처럼 나들이길에 나선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시간 속으로, 혹은 공감을 넘나들며 날아다닐 수도 있다. 불의 나라를 방문하기도 하고, 미다스 왕의 황금궁전을 거닐 수도 있다.


  그가 오로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왼쪽 눈꺼풀뿐이었다. 그는 왼쪽 눈꺼풀을 깜빡여 책을 썼다. 손가락을 두드려 이렇게 쉽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조차 감사한 일인데 나는 그런 생각을 잊고 있었다. 


 p. 37

ESA..로 된 알파벳 표를 내게 펼쳐 보이면, 나는 내가 원하는 글자에서 눈을 깜빡인다. 상대방은 그 글자를 받아 적으면 된다. 똑같은 과정을 그다음 글자에서도 계속 반복한다.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상당히 빠른 시간 내에 한 단어를 완성할 수 있고, 뜻이 통하는 문장도 토막토막 이어 맞출 수 있다. 물론 원칙적으로는 그렇다. 


  자유롭게 움직이던 저자가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뵀던 모습을 떠올리며 적은 글이다. 


p. 67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뵌 날, 나는 아버지의 수염을 면도해 드렸다. 내가 사고를 당한 바로 그 주였다. 아버지가 몸이 편찮으셔서 나는 튈르리 공원 근처에 있는 아버지의 작은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아침에 우유를 넣은 차를 끓여 드린 후, 며칠 동안 자란 수염을 깎아 드리기로 했다. 이 장면은 내 기억 속에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저자의 아버지는 아흔두 살로 거동이 불편하셨다. 그랬기에 아들이었던 저자는 아버지의 면도를 대신해주었다. 하지만 이제 저자는 팔조차 올리지 못하여 매일 아침 남에게 면도를 맡겨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아침마다 면도를 할 때마다 자신이 아버지에게 해드렸던 면도를 떠올리며 '과연 아버지에게 면도를 잘해드렸을까?'라는 생각을 떠올린다. 사고가 나기 전에는 아버지를 찾아뵙고 면도 한 번 해드리는 것이 그저 평범한 일이지만 이제는 기적 같은 일이 되어 버렸다. 


  요즘 들어 불만이 가득해진다. 자꾸만 세상의 높은 곳을 바라보며 내게 없는 것은 무한에 가깝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들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나만 혼자 뒷걸음질 치는 느낌이다. 불평과 불만이 가득해지자 말로 행동으로 자꾸만 툭툭 튀어나온다.


p.123

  저녁 해질 무렵에 꺾은 장미꽃, 비 오는 일요일의 나른함, 잠들기 전 울음보를 터뜨리는 어린아이 등등. 삶의 순간에서 생생하게 포착된 이러한 삶의 편린들, 한 줄기 행복들이야말로 나에게 다른 어느 무엇보다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생각해보면 참 감사할 일들이 주변에 많다. 내 몸을 자유로운 의지로 움직이며,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다. 그윽한 향취와 맛있는 음식의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주위 사람들과 웃고 떠들기도 하고 때로는 싸우기도 한다.

  그렇게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순간순간이 많지만 나는 그런 것에는 애써 눈을 감은 채 보이지도 않는 행복과 닿을 수도 없는 무한의 소유를 찾으려 무던히도 애쓰고 있다.

  삶에 늘 웃음만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건 미친 사람이라 했던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인생에는 달콤함과 쓰디씀이 번갈아 가며 나타남이 당연한 법인데 나는 달콤함만을 찾으려는 미친 사람은 아니었는지 다시 생각해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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