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칼 세이건
p. 376
일종의 지구 중심 우주관에 사로잡힌 우리는 아직도 일상적으로 “해가 뜬다”,”해가 진다”한다. 우리의 말투는 여전히 지구가 돌지 않는 듯하다.
“해가 떠오르고, 해가 진다.” 해가 뜨는 것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움직이며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과학을 통해 배웠다. 하지만 그런 우리의 과학적 상식과는 달리 우리의 인식 관점에서는 해가 뜨고 지는 것이 지구는 가만히 있고 해가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중세 사람들은 지구가 가만히 있고 주위의 천체들이 움직이기에 천문 현상이 나타난다고 믿었다. 지동설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이 이야기한 대로 지구가 움직인다면 왜 우리는 조금의 미동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아마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지구가 움직인다는 생각을 비웃었을 것이다. 분명 우리는 지구가 움직인다고 이성적으로 믿지만 아직 우리의 말은 지동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p.604
수백만 개에 이르는 문명사회가 은하수 은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면 문명사회들 사이의 평균 거리는 대략 200광년이 된다. 빛의 속도로 전파되는 라디오 전파라고 하더라도 가장 가까운 이웃까지 가는데 2세기의 시간이 필요하다.
외계인은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 멀리 있어서 올 수 없는 것뿐이다.
아주 가까운 은하라고 하더라도 1초에 30만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빛의 속도로 200년이 걸린다. 과연 그 200년을 영속해서 존재할 수 있는 생명체가 있을까? 그 속도로 이동하는 문명이 가능할까? 외계인이 오기에는 넘어야 할 난관이 너무 많다. 설령 외계인이 있더라도 태양계를 콕 찍어서 와야 할 이유가 있을까?
어마어마한 우주의 크기에 인간은 사소하기 그지없다. 인간의 삶을 우주의 역사에 비한다면 인간의 수명에 비유한다면 한 번의 눈깜밖이는 순간에도 미치지 못한다. 인간의 역사는 우리에게 하루살이만큼이나 하찮다. 우주를 알면 알수록 인간에게 겸손과 겸허함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의 가치가 원소로 따져서 100만 원이든 천만 원이든 1억 원이든 어느 누구도 그만큼의 원소를 모아준다고 해서 인간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개별적 가치의 총합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하나의 개체로써 평가받아야 한다.
p.156
저는 그분이 오락이나 기분전환을 목적으로 바람을 쏘이러 말을 타고 나간다던가, 산보를 한다던가, 아니면 볼링을 친다거나, 또는 이러저러한 운동 하나 하시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연구에 쓰지 않은 시간은 모두 내다 버린 시간이라고 생각하셨기에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분이 연구에 얼마나 열심이셨는지 방을 비우는 적이 거의 없었고, 있다면 오로지 학기 중 강의할 때 뿐이었습니다. 그분의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은 얼마 없었고, 강의를 들어도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은 더욱 없었습니다. 이해하는 학생이 없으니 그분의 강의는 벽에다 대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천재의 시간을 바라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자신의 시간을 오롯이 하나에 투입할 수 있는 사람이 천재다.
천재의 노력을 보면 그만큼 몰입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지독하게 한 가지의 주제를 파고든다. 어쩌면 그렇게 독하게 몰입할 수 있는 능력, 그 능력이 평범한 사람은 따라갈 수 없는 천재의 밑바탕이 아닐까 싶다. 뉴턴의 하인이 40대 중반의 뉴턴을 묘사한 글이다. 그는 정말 오로지 연구 하나에 자신의 인생을 쏟아부었다. 그만큼 쏟아부었기에 평범한 인간이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지 않았을까?
몇 백 페이지에 이를 만큼 우주에 관한 방대한 내용이 들어있는 책이다. 하지만 우주보다 그 외의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들었다.
https://brunch.co.kr/@hermite236/1464
이 글에서 나왔던 탈레스의 내용도 코스모스에 나왔던 내용이다. 과학책인데 과학보다 인생을 더 생각하게 만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