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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Dec 03. 2021

타인의 잣대 앞에 서야 한다면

정당함과 억울함

  일 때문에 타인의 판단을 구해야 하는 자리에 자주 서게 된다. 때에 따라 공격과 수비하는 입장에 번갈아 서다 보면 상대방의 실수가 오히려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며칠  다녀온 위원회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아 잊기 전에 적어본다.



1. 상대방의 아킬레스건을 노려라.


  어떤 결정에 대해서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찬성하는 입장과 반대되는 입장. 두 가지 입장에 대해서 판단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의 주장이 더 타당한지 검토하게 된다.


  나의 예로 설명해보자. 나는 찬성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상대방이 5가지 반박 논리를 펼치며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각각 어느 정도 타당성은 있었지만 특히나 4번째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법을 위반한 사람의 명단을 낼 수 없다는 이유였다. 나는 그 점을 조목조목 비판했고 판단을 검토하는 사람들 역시 상대방에게 그 점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지만 밝히지 못했다.

  결국 반대 의견이 범법자를 비호한다는 결정적 이유 때문에 결론은 찬성으로 결정되었다.

  

  상대방의 모든 주장에 대해 근거를 덧붙여 반대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건 서류를 통해서 서로 충분한 시간이 있을 때 가능하다. 짧은 시간 내에 말로써 설명해야 하는 자리에서 모든 것을 이야기하려다 정말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게 된다. 그러니 그럴 땐 가장 중요한 한 가지에 집중하고 시간이 남으면 그때 가서 다른 이야기를 해도 된다.


2. 판단자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보통 판단을 구하는 자리에 참석을 하면 자신의 신분과 의견을 간단히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 대략 30초 정도의 시간이 부여된다. 30초라면 대략 100-150자 내외의 몇 문장을 말하면 지나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런 룰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2-3분을 넘어 이야기하는 경우를 본다. 내용을 들어보면 이미 서면으로 배부한 검토 자료에 나와 있는 내용을 또 이야기하고 있다.

  검토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짜증이 일어나는 느낌이 스친다. 당사자는 1건이지만 판단을 하는 사람에게는 10, 20  하나다.  사람이 그렇게 많은 시간을 쏟으면 다음 사건을 판단할 시간이 줄어들거나 전체적인 시간이 늘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치 없이 계속 이야기하다 보면 진행자나 심판관이 제재를 한다.

  “그래서 핵심 이야기가 뭡니까?”

  상대방 답변 과정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우리 쪽에게 유리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발언을  때는 항상 주어진 제약 조건을 생각해야 한다. 나의 경우 상황에 따라  가지 답변을 준비한다. 요약 문장과 상세 문장,  가지를 준비해서 짧게 답변해야 하는 경우에는 요약 문장만, 길게 답변해야 하는 경우에는 상세 문장까지 함께 읽는다.

  길게 이야기하는 것이 결코 답은 아니다. 때에 따라 판단자가 원하는 만큼만 이야기하는 것이 답이다.


3. 억울함은 당사자만 느낀다.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방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에서 의견의 불일치가 발생한다.

  위원회 같은 곳은 결국 누구의 의견이 더 옳고 타당하냐를 가늠하는 자리다.

  물론 자신의 입장에서는 모든 점이 다 억울하다. 이해할 수도 없는 결론을 내리는 상대방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3자의 시선에서 과연 억울한가?라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나에게는 굉장히 억울한 일이지만 심사 의원들에게는 당연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어 문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DON'T JUDGE UNTIL YOU'VE WALKED IN SOMEONE'S SHOES

  상대방의 신발을 신어보기 전에 판단하지 마라. 어쩌면 그 사람의 신발은 밑창이 나갔을 수도 있고 구멍이 뚫려 있을 수도 있으며 크기가 너무 작아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사실을 모른 채 걸음걸이에 대해 질책한다면 그건 과연 옳은 판단일까? 자꾸만 나의 생각이 옳다고 우기려 할 때마다 나는 과연 상대방의 신발을 제대로 보고 있는지 떠올려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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