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상예술가 정해인 May 27. 2023

좋은 장비가 좋은 사진을 보장하지 않는다.

[사진을 읽어 드립니다]_김경훈

  다급해 보이는 어머니와 두 아이. 이 사진 속에는 무슨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요? 오늘은 사진 한 장으로 글을 시작해 봅니다.

  이 사진은 멕시코 국경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국경을 넘으려다 넘지 못하고 미국 국경 수비대가 쏜 최루탄을 피하고 있는 중입니다. 중간에 있는 어머니는 사진 속 두 아이를 포함해 다섯 명의 아이와 함께 넘으려고 했답니다.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해 다 큰 아이들이 어쩔 수 없이 기저귀를 착용했습니다. 어머니는 안나와 엘사가 그려진 겨울왕국 옷을 입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신발도 신지 못하고 그대로 달려야 했지요. 당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에서 넘어오는 사람들 중에 범죄 조직이 숨어 있다면서 장벽을 설치했지만 이 사진 한 장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었죠. 100마디의 말보다 사진 한 장에 더 큰 울림이 있습니다.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로이터 통신의 수석 사진기자인 김경훈 기자입니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퓰리처상을 받았죠. 사진 기자가 쓴 사진 책이라서 사진 찍는 뛰어난 기술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법은 없네요.

  사진 찍는 기술이나 기법을 배우고 싶다면 이 책에서는 찾으실 수 없습니다. 오히려 사진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게 해 주었습니다.


  요즘 스마트폰이 과거의 사진기에 비해 훨씬 더 성능이 좋고 용량이 수백 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과거의 필름 사진기는 고작 24장이나 36장 정도밖에 찍지 못했죠.

https://brunch.co.kr/@hermite236/1413

  그런데 그렇게 늘어난 용량만큼 사진의 가치도 늘어났을까요? 1주일 여행만 다녀와도 사진이 최소 몇 백장에서 몇 천장 정도 찍게 됩니다. 하지만 따로 인화를 하거나 아니면 사진첩을 만들지 않으면 사진을 잘 안보게 됩니다. 전 그래서 사진첩을 만듭니다. 1년에 1번이나 아니면 장기로 다녀온 여행 뒤에는 이렇게 사진첩 한 권으로 만들어서 보관을 합니다.

10년 전의 아이들
3년 전의 아이들

  그렇게 몇 년의 사진첩이 모이고 나니 아이들이 크는 모습과 제가 늙는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아이들이 참 많이 컸다는 생각을 잘 못하는데 이렇게 모아서 보다 보면 정말 다른 사람이 되었구나 하고 느끼게 되죠.

작년 여행 사진첩 뒤표지

  본인들의 초상권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에 작년에는 풍경 사진만 넣었습니다.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이 답답할 때 한 번씩 꺼내보며 '이 때는 참 행복했었지'라고 다시 돌아봅니다.


  사진을 찍다 보면 그 순간의 생각이 떠오릅니다. 요즘 들어 찍은 사진 몇 장을 올려 봅니다.

부실했던 난간

 난간의 힘이 없어 보입니다. 튼튼한 쇠로 만들었는데도 금방 부서질 듯 약해 보입니다. 주인이 걱정되었는지 경고 문구를 붙였습니다. '절대 기대지 마세요.' 그런데 기대지 말란 이야기에는 다른 생각이 듭니다. 힘이 들고 지칠 때 나는 누구에게 기대야 할까요? 집에서도 아빠라고 모두들 기대를 하고 직장에서도 팀장이라며 잘 마무리해 줄 거라 기대를 합니다. 지인들도 세금에 관해서는 잘 해결해 줄 거라 기대를 합니다. 그렇지만 정작 저는 '모든 일들이 잘 해결될 수 있을까?' 숱한 고민들에 휩싸입니다. '기대지 마세요'라는 문구에 저도 모르게 '저도 의지할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게 되네요.

평양냉면집 문구

  냉면집 사장님이 자신 있게 이야기합니다. 정약용 선생님이 쓴 문구라며 자신 있게 이야기하시네요. 술 한 잔 마시고 면을 먹으며 고기를 먼저 먹고 면을 먹는다. 인생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닌데 '저렇게 먹으면 더 맛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먼저 듭니다. 저는 선 국물 후 냉면 마무리 고기로 살도록 할게요.

  금지라는 말을 많이 봅니다. 과속 금지, 좌회전 금지, 주정차 금지, 추월 금지, 무단 횡단 금지. 참 하지 말라는 게 많습니다. 도서관을 올라가려는데 난간에 장난 금지라는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도서관에서는 조용해야 하죠.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니까요. 그런데 금지라는 말에는 이상하게 금지를 어기고 싶은 욕구를 더 만들게 하는 이상한 힘이 있는 거 같습니다. 장난 금지라고 하니 더 장난이 치고 싶어 집니다. 다 큰 어른이 무슨 말이냐며 옆이 있는 아내가 철이 덜 들었다며 꾸중을 합니다. 아직 인생에 금지라는 말을 더 들어야 어른이 되려나 봅니다.

 


 과연 사진의 진화는 어디까지 이뤄질까요? 이제는 사진을 찍은 곳의 정보까지 모두 사진이 담고 있는데 어느 순간에는 사진 속 내 감정까지 읽어주는 세상이 오지는 않을까요? 사진이 주는 강력한 힘을 보고 싶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이상한 한 줄 요약 : 좋은 사진기가 좋은 사진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빠빠 중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