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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Jun 04. 2023

이것만 되면

인생의 보이지 않는 사탕

  학생일 때는 어른이 되고 나면 마냥 좋을 줄 알았다. 지겨운 공부도 더 이상 안 해도 되고 선생님의 잔소리에서 여유로워지리라 생각했다.

 

  막상 대학에 들어가고 보니 어른의 좋은 점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돈이라는 장애물이 있었다. 직장에 들어가 돈을 자유롭게 쓸 수 있으면 더 나은 삶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직장에 들어가고 보니 무언가 허전함이 있었다. 나만 혼자 외롭게 있어서 행복함을 느끼지 못하는 줄 알았다. 결혼을 해서 좋은 배우자를 만나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줄 알았다.

  

  그렇게 결혼을 해서 배우자를 만났지만 자꾸만 배우자와 싸우고 있는 나를 보았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공통의 관심사라는 아이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시기에 아이가 찾아왔다.


  그렇지만 아이는 부모에게 무한한 인내심을 요구하기에 아이가 얼른 크기를 바랐다. 아이를 낳고 조금 더 키우면 나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가 커도 여전히 인생의 어려움은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막연한 인생 사탕을 바라며 살아가고 있었다.

직장에서 높은 자리로 승진하면,

내 집을 마련해서 눈치 보고 살지 않으면,

내 사업을 해서 상사 눈치를 안 봤으면,

무수한 가정을 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파랑새를 쫓고 있었다. 그렇게 다음에 무엇을 하면  행복해지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오랜 시간 계속했다.

  하지만 한참의 시간이 지나 모든 것을 만족할 수 있는 시기는 없으며 오히려 소금물처럼 마시면 마실수록 느끼는 갈증처럼 욕망의 수레바퀴는 점점 더 빨리 돌아간다는 걸 느꼈다.


  행복의 공식은 소유 / 욕망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소유를 늘리기보다 욕망을 줄이는 것이 행복을 올리는데 훨씬 효과적이다. 하지만 늘 소유의 욕구가 욕망을 줄이려는 욕구를 이긴다.

  언제쯤 욕망을 조절할 수 있는 순간이 오려나? 죽기 직전에나 가능할 것일까? 자꾸만 마음속으로 불만을 내뱉으려는 나에게 욕망부터 다스려보자고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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