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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Jun 03. 2023

만 원의 기적, 만 원의 웬수

꽃 한 다발

  집 근처를 산책 중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려 사거리를 가려는데 앞에 걸어가는 한 커플이 보였다. 중장년의 남자와 여자는 부부일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남자분이 먼저 횡단보도를 향하고 여자분은 한 가게 앞에 섰다. 그리고 남자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했다. 나도 횡단보도 쪽으로 이동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여자분을 지나쳐야 했다.

 "꽃 한 다발만 사줘"

  여자분은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 남자에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횡단보도에서 기다렸다.

  "꽃 한 다발만 사달라고."

  애원에 가까운 이야기를 했지만 역시나 묵묵 부답이었다.

  "아니 어떻게 평생 꽃 한 다발을 안 사주냐?"

  그러고는 다시 그 여자분은 남자 옆에 섰다.


  꽃 가게 이름이 그제야 보였다. '만 원의 기적'. 소주 2병 값 만 원이면 그래도 꽃 한 송이는 살 수 있는데 그렇게 아까우셨을까? 꼭 기념일이 아니라도 꽃 한 송이를 살 여유는 없었을까? 몇 백만 원짜리 명품백은 아니라도 꽃 한 송이 정도는 사줄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아저씨는 만 원으로 만들 수 있는 기적을 만 원으로 원수를 만들어 버렸다.

  


  꽃 한 송이 사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닌데 물론 나 역시도 꽃을 잘 사는 편은 아니다. 그래도 기념일에는 가급적 사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배우자나 여자 친구가 꽃을 이야기한다던가 꽃 사진 이야기를 한다면 꼭 기념일이 아니라도 한 번쯤 사주자. 이런 거 왜 사 왔냐며 타박은 하겠지만 그래도 좋은 마음과 돈이 아까운 마음이 공존한다고 한다. 여자에게 있어 꽃이라는 의미가 예쁜 것을 받고 싶다는 것도 있지만 나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표현해 달라는 뜻이 숨어 있다. 하지만 남자들은 굳이 돈도 안 되는 꽃을 왜 사야 하냐고 묻는다. 타인을 위해서 기부도 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꽃 한 송이 살 수는 없을까?

  아내의 생일날, 썼던 문구. 매일 남편은 남의 편이라 놀리기에 분홍 꽃에 당신편이라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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