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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료의 함정

금융시장의 역설

by 일상예술가 정해인

최근 자산 관련 상담을 하면서 가장 많이 마주하는 질문은 "수수료를 얼마나 깎아줄 수 있나요?"입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질문이 지금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얼마전 쌀쌀한 바람이 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50억이라는 거금을 운용할 곳을 찾고 싶다며 한 중년아저씨가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첫 상담에서 그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단 하나, 수수료였습니다. 0.1%라도 더 낮은 상품을 찾아 여러 금융기관을 돌아다녔다고 했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몇년전 전 골드만삭스 홍콩의 담당자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한국의 한 회사가 새로운 투자 상품을 논의하러 간 자리에 우연히 동석하게 되었습니다. 회사가 제안한 운용 금액은 50억이었고, 한국에서는 결코 작지 않은 금액이었습니다. 하지만 골드만삭스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죄송하지만, 이 정도 규모로는 맞춤형 상품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그들의 기준에서 50억은 관심을 둘 만한 금액이 아니었던 거죠.


골드만삭스 담당자가 한국인이었던지라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금융 상품의 구조화 비용은 규모와 크게 상관없습니다. 100억짜리 상품을 만들든, 1조 규모의 상품을 만들든, 기본적인 구조화 비용은 크게 차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형 금융기관들이 더 큰 자금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1조의 1%는 100억이고, 50억의 1%는 5천만원입니다. 같은 노력을 들여 스무 배의 수익을 낼 수 있다면, 여러분이라면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골드만삭스가 만난 더 고액자산가들은 오히려 태도가 다르다고 합니다. 수백억대 이상의 자산가들은 오히려 최대 수수료를 물어본다고 합니다. “최저”가 아니라 “최고”를 묻지요. “성과가 좋으면 더 높은 수수료를 지불할 수 있나요?" 이런 질문을 던지죠. 그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진정한 수익은 수수료 몇 프로를 아끼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수익률을 만들어내는 것에서 온다는 사실을요.


저는 고객들에게 에이전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고 조언합니다. 여러분이 자산운용사라면, 0.5% 수수료의 상품과 20% 성과보수가 있는 상품 중 어느 쪽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시겠습니까? 답은 명확합니다. 운용사의 이해관계가 고객의 이해관계와 일치할 때,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옵니다.


최근에는 수수료 1%를 아끼려다 20%의 수익 기회를 놓치는 분들을 자주 봅니다. 마치 백화점 명품을 할인점에서 찾으려는 것과 비슷하죠. 싼 게 비지떡이라는 속담이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금융시장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돈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현명한 판단이 돈을 번다는 것을요. 수수료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오히려 더 큰 기회비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부자가 되는 길은 작은 것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큰 그림을 보는 안목에서 시작됩니다.


금융시장은 냉정합니다. 하지만 그 냉정함 속에는 분명한 논리가 있습니다. 50억이 적은 돈이 아니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그저 작은 물방울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진정한 수익은 비용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서 온다는 것. 이것이 제가 15년간 금융시장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입니다.


오늘도 저는 새로운 고객을 만나며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수수료만 보지 마시고, 그 수수료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를 보세요." 때로는 비싼 것이 싼 것일 수 있다는 역설. 이것이 바로 금융시장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인생의 지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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