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만 내면 돼요?

어느 세무조사관의 회고

by 일상예술가 정해인

눈물은 끝내 정리되지 않았다.

"이거만 내면 돼요?"

상속세 1500억 고지서를 받아 든 아들이 내게 한 말이었다.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아니면 그가 말을 잘못한 건지 가늠이 안 됐다.


1,500억


이건 누구에게도 작은 숫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어린 그의 말투에는 놀라움도, 억울함도, 두려움도 없었다.

'이거만?'

마치 편의점 계산대에서 영수증을 확인하듯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문득 조사를 마무리하며 나는 처음으로 조사가 끝났는데, 끝난 게 아닌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그의 말은 내게 이렇게 들렸다.


'삼천억이 남아있는데 고작 1500억을 과세하는 거예요?'


허탈했다.

가슴에 큰 구멍이 하나쯤 뚫린 느낌이었다.


세무조사는 보통 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돈이 어디서 나와서, 어디로 갔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거래는 대부분 기록으로 남기 때문이다. 문제는 흔적이 아니라 해석이다. 계좌, 전표, 계약서, 회계장부, 메일, 내부결재와 같은 기록에 거래의 사실이 남는다. 돈은 언제나 "정상적인 얼굴"을 하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내가 맡았던 그 사건은 시작부터 이상했다. 거래가 크고, 관계가 복잡했으며, 무엇보다 당사자의 상태가 이상했다.


상속세 검토대상자는 한때 기업을 사실상 지배했던 인물이었다. 죽기 직전 상당한 기간 병상에 누워 있었다. 의사결정 능력이 이전과 같지 않았고, 기억이 단절되는 순간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주변 관계인들이 재산 흐름의 중심에 서 있었다.


조사는 단순히 "탈세"를 찾는 일이 아니었다. 실질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의 의사가 어디까지였고, 누가 그 공백을 채웠는지. 누가 '대리'의 이름으로 권한을 잡았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그 집안에는 늘 모순이 있었다. 계좌에는 돈이 없었다. 잔고는 너무 초라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그들은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비싼 법무법인의 변호사를 몇 명이나 쓰고 있었다. 계좌에 남은 돈으로는 어림없는 비용이었다.


이상했다. 어떻게 그 비싼 변호사를 선임하는 비용을 냈을까?


압수수색을 나가서야, 답이 나왔다.

부엌 어딘가에 흔한 김치 보관통이 있었다. 집집마다 하나쯤 있는, 아주 평범한 김치통이었다.

뚜껑을 열었을 때 그 안에는 음식이 아니라 현금 다발이 들어 있었다. 오천만 원 묶음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통장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통장에만 돈이 없는 거구나.'


나는 그 통을 보며 생각했다. "돈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돈이 공식적인 곳에 기록되지 않았다는 뜻일 뿐이다.

그리고 기록되지 않은 돈은 대개 기록되지 않은 의도를 데리고 다닌다. 김치통을 보니 어떻게 변호사를 선임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압수수색 자료 속에서 유독 눈에 밟히는 자료가 하나 있었다. 상속인이었던 배우자의 여권이 몇 번이나 바뀌어 있었다. 그런데 바뀔 때마다 얼굴이 크게 바뀌었다.


처음에는 '변했나' 싶었다. 사람은 나이를 먹고, 인상도 바뀌고, 사진도 다르게 나오니까 그러려니 해야 했다. 하지만 그 변화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얼굴의 윤곽 자체가 달라졌고, 눈빛도 달라졌다. 같은 사람의 기록인데,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얼굴을 바꾼다는 건 단순한 꾸밈이 아니라, 흔적을 끊겠다는 선택일 때가 많다.

"내가 누구였는지, 기억하지 못하게 하겠다."


나는 피상속인이 울었다는 사실을 세무조사를 하며 알지 못했다. 압수수색 자료를 정리하던 날이었다. 딸의 녹취록을 읽다 보니 병상에 누운 아버지의 눈물이 보였다.


"딸아 미안하다…"
"그동안 못해줘서 미안하다…"
"흑흑…"


나는 그 짧은 문장 앞에서 한참 멈추게 되었다. 세무조사 자료는 늘 건조한데, 그 몇 마디는 기이하게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나는 그가 이미 사망한 후에 자료를 접했기에 그가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녹취록 속에서는 그는 울고 있었다. 그 눈물은 세금 때문이 아니었다. 패배 때문도 아니었다. 그건 그냥… 딸에게 미안한 사람이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는 돈을 벌었지만, 말년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세무조사를 오래 하다 보면 '부자'라는 단어가 조금 바뀐다. 겉으로는 풍요롭다. 자산이 늘어나는 사람들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말년에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특히 가족이 갈라지고, 집이 둘로 나뉘고, 사람이 사람을 분리시키기 시작할 때 그 부는 오히려 삶을 얇게 만든다.

그의 말년도 그런 느낌이었다.


돈은 많았지만 그의 기록에는 표정이 없었다. 부의 권력은 남아 있었지만 그 권력은 더 이상 자신을 지켜주지 못했다. 배우자는 이복자녀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그것이 보호였는지 통제였는지, 나는 끝내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건 있었다. 가까워져야 할 순간에 사람들이 오히려 멀어지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누군가는 말한다. "가족은 늘 곁에 있다"라고. 하지만 현실에서 가족은 허락을 받아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한 사람이 중심을 잃기 시작하면, 그 주변의 관계도 새로 정렬된다. 새로운 질서 속에서는 누군가가 "들어오면 안 되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 출입금지는 종종 '보호'라는 말로 포장된다.


그 배우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회장님을 위해서요."
"지금은 자극이 안 좋습니다."
"괜히 오셨다가 더 힘들어지실까 봐요."


그 말들이 정말 보호였는지, 아니면 통제였는지 지금도 확신하지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 통제 속에서 그는 혼자가 되어갔다.


세무조사는 돈을 보지만, 나는 결국 사람을 기억한다.

내가 다뤘던 건 돈이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돈이 없다"라고 말하면서도 삶은 너무 비싸게 굴러가고 있었다.


사건이 끝나갈 때쯤 나는 자꾸만 다른 장면을 떠올렸다.


돈을 많이 벌었는데 행복해 보이지 않던 얼굴.
사람이 많은데 외로워 보이던 병실.
가족이 있는데 가족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던 침묵.


부는 삶을 편하게 만들 수 있지만, 삶이 외로워지는 걸 막아주진 못한다.

말년에 필요한 건 돈이 아니다. 말년에 필요한 건 내가 원하는 사람을 내가 원하는 때에 볼 수 있는 권리다.

그런 권리가 사라지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삶은 갑자기 감옥처럼 변한다.


분명 나는 과세를 했지만 그들에게 그 숫자는 '처벌'이 아니라 '처리'처럼 보였다.

그런데 딸의 녹취록 속 눈물은 처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숨길 수 없는 것이었다.


세무조사는 끝이 난다. 숫자는 정리되고, 결론은 내려진다.

하지만 어떤 사건은 마음속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집안에서 가장 진짜였던 건, 김치통 속 돈이 아니라 녹취록 속 눈물이었다.

나는 돈을 찾아냈지만, 눈물은 끝내 정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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