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연필로 한참 색을 칠하고 나니
날이 무뎌졌다
마침 색연필 깎이가 없어
그냥 무딘 색연필로 그려보려 하였다
하지만 그림 사이사이에 있는 흰색 부분은
잘 메꿔지지 않고 이미 칠해진 부분만 더 진해졌다
무턱대고 힘만 쓴다고 다되는 건 아니란 생각에
색연필 깎이를 한참만에 찾아서
날카롭게 심을 다듬었다
다시 예리한 날을 세운 색연필로
칠해보니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잘 칠해졌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겠지
무작정 열심히만을 외칠게 아니라
가끔은 한 발짝 물러서서
안식년 같은 날을 깎는 시간을 가져야
무뎌진 날이 예리해지겠지
조금 느리게 간다고 타박하지 말고
쉬면서
예리하게 날을 갈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