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 언니 독서기
감정이 메마른 것일까? 힘든 일을 겪어도 슬픈 일을 보아도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눈물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마치 누군가 어른이 되자마자 눈물샘을 가져간 것처럼 분명 슬픈 일이지만 나는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 어쩌면 어른이라는 차가운 가면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자니까 어른이니까 아빠니까 선배니까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그런 책임감 같은 것들, 그런 것들 때문에 운다는 것은 마치 나쁜 일인 것처럼 치부되어 버렸다.
어릴 때 나는 눈물이 너무 많은 아이였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흐르는 아이, 남들 앞에 나서기만 해도 얼굴이 빨개지던 아이였는데, 어떻게 이렇게 바뀌어버린 것일까? 몽실이를 보며 어른이 되어 버린 몽실이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책을 잡자마자 몇 시간에 모두 읽어버렸다.
학교에 다닐 때도 분명 읽었을 것인데, 아마도 그때의 나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문학책의 한 귀퉁이뿐이었겠지. 아니면 시험 과목에 나오는 문제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내용과 감흥을 잊어버리기 전에 몇 마디 적어 본다.
p.76
누구든지 길을 가자면 그 길의 멀고 가까움과 어느 정도 험한가 평탄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만반의 준비를 해야겠지요. 우리들이 지금 공부를 하려는 것은 바로 우리의 인생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가? 그 길의 내용을 정확히 알고 가자는 데 있는 것입니다.
#1
고등학교 시절, 학교를 마치고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했다. 파란불이 바뀌었고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차 한 대가 지나갔다. 정말 아주 코 끝을 스치는 듯 그 차가 지나갔다. 친구 동건이가 나의 어깨를 잡아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동건이에게 제대로 된 감사 인사도 건네지 못했다.
#2
예비군 훈련 길. 6대의 버스 중 이상하게 마지막 버스가 타고 싶지 않았다. 분명 사람이 제일 없는 버스였는데 이상하게 그 버스에 타기 싫었다. 그렇게 난 마지막 버스를 타지 않고 사람이 꽉 찬 5번째 버스를 탔다. 버스가 출발하고 나서 마지막 버스는 속도를 한참 내더니 운행 도중 우리를 앞서 지나치는 것이 보였다. 결국 그 마지막 버스는 강원도 화천 고갯길을 넘어가다 코너에서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사고가 났다. 2명의 사망자와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만약 그때 마지막 버스를 탔더라면?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어수선한 마음을 안고 사격장에 섰다. 표적을 향해 10발을 쏘고 표적을 확인하기 위해 3발짝 정도 걸음을 뗀 순간 총성이 울렸다. 내 옆 사로에 있던 사람이 총을 쏜 것이었다. 10발을 다 쏜 것으로 알았는데 9발을 쏜 것이었고 관리자는 미처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표적 확인을 하라고 한 것이었다.
총성이 올리는 순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죽음의 순간은 이렇게 오는 것인가? 하는 그런 느낌 말이다.
사람들은 내게 가끔 묻는다. 왜 그렇게 1분, 한 시간이 아까운 사람처럼 바쁘게 사냐고 말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내 주변에는 죽음의 신이 어른거렸기 때문일 것이다. 사신은 나에게 "너는 내일 아니 잠시 후에 죽을지도 모른다"고 계속 주지 시키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인생이라는 것에 대해 사실 난 잘 모르겠다. 내가 얼마의 인생을 살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끝을 알 수 없는 러시안룰렛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내가 없으면 나의 아내, 우리의 아이들이 잘 살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
그래서 내 인생길에서는 그저 지금의 순간을 열심히 사는 것 그것 밖에는 답이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인생을 모르겠다. 죽음의 순간, 눈을 감으며 인생이 무엇이었는지 되돌아볼 수 있을까?
p.90
눈물이 마르지 않을 만큼 매일 울었으니까? 어떠했겠니? 그러나 그게 부질없었어. 그렇게 울지 말고 입술을 깨물었으면 난 좀 더 건강할 수도 있었을 거야. 우는 건 참 못난 짓이야.
나는 아이였을 때 이렇게 생각했었다. 이제 좀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마치 우는 건 비겁하거나 못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난 어른이 되면 절대 울지 말아야지 했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어 우는 것을 잃어버리고 나니 너무 슬프다. 울어야 할 자리에서도 울지 못하는 슬픔이랄까? 분명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장례식장에서 울어야 하는데 눈물이 나지 않았다. 곡소리를 하며 다른 이를 따라 했지만 슬픔을 느낄 수 없는 마음의 불구가 된 건 아닌지 안타까웠다. 마치 얼음여왕이 된 것처럼 차디찬 가슴만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 소리 내어 우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p.122
사람은 누구나 처음 본 사람도 사람으로 만났을 땐 다 착하게 사귈 수 있어. 그러나 너에겐 좀 어려운 말이지만, 신분이나 지위나 이득을 생각해서 만나면 나쁘게 된단다.
진정한 친구를 얻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해관계가 얽힐수록 인간적인 면모보다는 나를 이용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게 된다. 학교를 다니던 때 친구와 같이 아무런 이해관계없이 만난 친구들을 나이 들어서 찾게 되는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닐까? 아무런 부담 없이 그저 술 한 잔 기울이며 이해득실 없이 내 속을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친구 말이다.
p.276
여태까지 모든 일들이 몽실이 뜻대로, 몽실이 바라는 대로 된 적이 없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수용할 수 있는 것, 그것 아닐까?
계획했던 대로 생각했던 대로 되지 않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진다. 만 명이 넘는 조직을 이끄는 대표의 한 마디가 떠올랐다.
"나도 나를 만나기가 어려워!"
직급과 위치가 올라갈수록 개인적인 시간보다는 점점 더 공적인 시간이 많아진다. 그러면서 내 뜻대로라기보다는 주변의 뜻대로 휘둘리는 일이 많아진다. 그것이 돈을 위해서였든 명예를 위해서였든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분명 내 것 중의 하나를 희생해야 했다. 그건 나의 꿈일 수도 있고 가족과의 시간일 수도 있다.
몽실 언니, 아이에게 읽어보라고 권했던 책에서 오히려 내가 더 인생을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