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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Dec 29. 2018

그녀의 속마음을 훔친다면

전지적 아내 시점

퇴근 무렵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돌아온 짧은 한 마디.

"응"

심상치 않다. 평소에 몇 줄을 보내던 그 사람이 이모티콘도 없이 단 한 글자의 문자를 보냈다는 것은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작성자 아들로 추정되는 카톡이 뜬다.

"엄마가 정리하느라 오셔도 식사하려면 기다려야 될 것 같데요. 왜냐하면 일을 크게 벌리셨거든요."

집 문 앞에서 숨을 일단 크게 들이쉰다.


"어떡해, 정리하느라 밥만 했어."

아내의 그 한마디에 피곤이 가득하다.

(피곤하니까, 우리 나가서 먹자. 이렇게 얘기해주면 좋으련만 아내는 늘 돌려서 말한다.)

아내의 눈치를 살핀다.

"그럼 우리 저녁은 밖에서 먹을까?"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

아들이 보내준 문자도 있고 아내의 컨디션을 보니 나가서 먹는 게 맞아 보였다.

"딤섬 어때?"

('나 딤섬 먹고 싶어, 그러니까 좀 먹자!' 이런 말인 줄 나중에 알았다.)

아내는 질문을 던지며 나의 의향을 물어본다.

상전 남매는 엄마의 속마음도 모른 채 국수를 먹겠단다.

특히나 아드님

"나는 국수가 좋아."

(아들아 엄마의 취향을 맞춰줘야 인생이 편하단다.)

얼른 상황을 정리해야 한다.

"오늘은 엄마 피곤하니까, 그냥 딤섬 먹자."

내가 그렇게 얘기했으나, 아들 표정으로 싫다는 기색을 내비친다.

아내는 아이들의 말이 신경이 쓰였는지 식당 메뉴를 찾아본다.

"여기에 만두도 있어. 그거 먹으면 되지 않아?"

아들 그제야 엄마의 제안을 따른다.


식당으로 가는 길 엄마가 그렇게 재킷을 입으라고 했는데도 딸은 잊은 채 나왔다.

나는 얼른 내 재킷을 벗어 딸에게 주었다.

어른 재킷을 입은 딸, 자꾸 엄마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며 발걸음을 방해한다.

허기 앞에 장사 없다는데 배고픈 엄마를 왜 심기 불편하게 할까?


식당에 도착하니 사람이 가득하다.

일단 대기표를 받았다. 다행히 앞에 대기하는 사람은 없는데, 4자리가 나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괜히 오자고 했나, 그래도 딤섬이 먹고 싶은데)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아내의 목소리가 들린다.

"조금만 기다리면 자리가 나온데"

뒤에 오는 사람들은 2명씩이라 그런지 우리보다 늦게 왔음에도 먼저 자리에 앉는다.

(도떼기시장 같은 분위기, 자리는 나지 않고 그냥 국숫집이나 가자고 할까?)

아내의 미안함과 눈치가 여기까지 보인다.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데 계속 신경이 쓰이나 보다.

사정도 모르는 아이들,

"아빠 왜 다른 사람은 우리보다 늦게 왔는데 먼저 앉아?"

"그 사람들은 2명씩 와서 금방 앉을 수 있는데 우리는 4명이 앉는 자리가 나야 먹을 수 있어."

아이들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심심해한다.


그렇게 이 사람에게 치이고 저 사람에게 치이고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맨 구석에 자리가 났다.

다시 시작한 메뉴판 공부

아저씨는 앞사람이 먹고 간 자리를 언제 빨았는지 알 수 없는 행주로 한 번 쓱 닦고 만다.

거기에 종이를 깔고 그릇을 가져다주었다.

물컵 옆면에 붙어 있는 파 한 조각이 "나 지저분함"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아내에게 지난번에 시킨 메뉴 사진을 보여주고 나는 컵과 수저, 그릇을 닦았다.

홍콩 사람들이 식사 전에 왜 그렇게 식기들을 닦는지 이해가 되었다.

아내는 한참을 찾았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한자 가득한 메뉴, 영어 메뉴도 없고 메뉴판은 이게 전부다

5개 메뉴 중에 4개를 찾았는데 마지막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나 보다.

나라고 특별히 더 나은 꿀팁이 있는 건 아니다.

지난번에 시킨 메뉴 가격을 보았다. 가격이 28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럼 28이라고 적힌 메뉴만 찾아보니 11번에 보인다.

(물론 7번에도 있지만 7번은 창펀이라고 불리는 하얀 반죽에 간장을 뿌린 음식이다)

메뉴판에는 앞자리에 2개의 한자가 더 적혀 있었다.

그렇게 우리가 시켰던 메뉴

사람이 많았던 저녁 7시

우리가 시켰던 음식은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처음에는 배고프지 않았는데 슬슬 배가 고파진다.

거의 30분을 기다려서야 음식이 나왔다.

천천히 먹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허겁지겁 먹었다.

"우리말 좀 하면서 먹자."

아내가 말했다.

(우리 돼지 아니잖아. 인간적으로 말 좀 하면서 먹으면 안 되겠니?)

하지만 여전히 속도를 줄이지 않는 정 씨들


게다가 아내도 그랬지만 나도 옆 테이블이 신경 쓰였다.

보아하니 옆 테이블은 성인 4 이서 메뉴 4개를 시켜서 나눠 먹고 우리 뒷 테이블은 성인 3 이서 3개를 나눠 먹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집은 어른 둘에 아이 둘인데 8 접시를 시킨 것도 모자라 3 접시를 더 시켰다. 홍콩 사람들 눈에 저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인가 싶을 것이다. 이렇게 한국 사람들이 많이 먹는다고 생각하려나?

아내도 역시 부끄러웠나 보다.


그렇게 장장 1시간 반의 식사를 마치고 나니 저녁 9시가 되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또 비가 온다.

아들과 나는 비를 피하려고 뛰었다.

(정 씨 부자 나만 빼놓고 뛴다. 자기들만 살겠다고) 

아내의 속마음이 들린다.

아내는 우산을 준비하지 못했기에 딸아이에게 자기가 입고 있던 모자 후드를 벗어주느라 서 있었다. 그런데 아들과 나는 비를 피하겠다고 처마 밑으로 쪼르르 달려가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오늘도 마음의 빚 한 무더기를 아내에게 주었다.

빚을 갚지는 못하고 계속 늘리고만 있구나


음식점 뒷 이야기

일단 홍콩 로컬 식당에 가면 차부터 시킨다. 차 값은 1인당 얼마씩 계산된다. 이 집은 1인당 5달러 4명이라서 20달러가 계산되었다.

이 집의 대표 메뉴. 만두 튀김 정도로 생각하면 되는데 생각보다 돼지고기 냄새도 나지 않고 만두피가 두껍지만 바삭해서 괜찮다.

홍콩의 대표적 딤섬 메뉴인 하가우. 새우를 얇은 피에 말아서 쪄낸 딤섬으로 새우의 통통한 살이 잘 느껴진다.


위에 한자를 풀어서 써 보면, 신선+새우+튀기다+운탕(완탕 껍질) 이렇게 해석된다. 즉 가운데 새우가 하나 들어 있고 완탕 껍질로 두껍게 싸서 튀긴 것이란 뜻이다. 껍질은 아주 바삭하고 새우살도 맛있다. 특히나 케첩이 들어간 소스와 함께 먹으면 더 어울린다.


홍콩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딤섬, 샤오롱 빠오. 한자로는 소룡포라고 하는데 육즙이 고여 있는 것이 사진에도 보인다. 못하는 집에 가면 육즙은 없이 텁텁한 돼지고기만 들어 있는데 이 집은 무난한 수준 이상은 된다.




옛날 방식으로 쪄낸 후식 케이크. 생각보다 많이 달지 않고 스펀지케이크 같은 맛이 난다.


딤섬 8 접시를 시켰지만 부족한 우리 집 식구들

메뉴판 12번에 나오는 시우마이와 몇 가지를 더 시켰다.

돼지고기와 새우가 잘 어우러진 시우마이, 껍질이 노란색이다

그렇게 모두 딤섬 11 접시를 먹은 우리 집 4 식구

그나마 가격은 263 홍콩 달러(한화 38천 원 정도)라 다행이다.

비싼 집에 가면 이 정도 시키면 홍콩 달러 500불을 훌쩍 넘으며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홍콩 달러 1,000불 이상 한다. 이 집은 로컬이라 저렴한 편이다.

Shop A, G/F, Dollar Building, 143-145 Shau Kei Wan Road, Sai Wan Ho, Hong Kong

사이완호 전철역 B번 출구에서 걸어서 2분 거리

현금 결제만 가능, 카드는 안됨


원래 홍콩은 점심에만 딤섬이 가능한데 이 집은 딤섬 전문집이라서 그런지 저녁에도 딤섬 주문이 가능하다.

미슐랭 가이드에 나오는 집도 아니고 찾아가서 먹을 집 정도 수준은 아니다

혹시나 홍콩섬 동쪽에 올 일이 있다면 방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이 집은 영어가 안된다. 중국어가 되시는 분은 가능하다.

메뉴 내용을 알고 메뉴표에 주문 내용만 적어서 주면 물론 주문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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