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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Apr 25. 2019

숫자로 말하다

10년 전의 직장 일기

직장생활을 5년 남짓 했을 무렵이었다.

세무조사를 담당하는 조사반에 배속되어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 팀은 조사 반장님과 나 그리고 막내 팀원 이렇게 셋이서 일을 했다.

조사 반장님은 주로 최종적인 판단과 보고를 담당하셨는데  일주일 동안 교육을 가게 되었다.

반장님의 다음 자리였던 나는 뜻하지 않게 그 주의 조사 진행상황을 대신하여 보고 하게 되었다.


그때는 세무조사라는 것을 그리 오래 해 본 것도 아니었다.

고작 2년이나 했을까?

물론 조사의 전체적인 내용에 대해 개괄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보고를 해야 하는지?'

반장님이 알려주고 가셨지만 그때의 내 실력으로는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조사 보고서를 들고 과장님 앞에 앉았다.

그 당시 우리 팀이 담당했던 조사 건은 대략 10건 정도 되었다.

첫 번째 조사 건을 펼치고 과장님께 기업의 기초적인 부분부터 설명드렸다.

회사의 현황, 업종 등 기본적인 사항을 설명했다.

아마 30초나 흘렀을까?


무테안경 속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과장님은 내 말을 끊으시며 이렇게 말했다.

"잠깐, 그래서 결론이 뭔가?"

3초쯤이었을까?

정적의 시간이 흘렀다.

무슨 상황일까?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정신을 차리고 일단 결론부터 말했다.

"추징세액 000원입니다."

그랬다. 일단 결과부터 보고했다.

지난번에 보고했던 내용을 듣기는 했지만 반장님이 어디까지 보고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10건의 조사 중 1,2건을 제외하고는 조사 진행되는 키 포인트 몇 가지만을 이야기하고는 보고가 끝났다.

그렇게 10여분의 보고가 끝나고 나니 뒤에서 기다리는 다른 반장님들이 보였다.


생각해보니 우리 과에서 200건 가까이 진행되는 건을 나처럼 보고를 하게 되면 시간이 무한정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어떤 식으로든 결론은 숫자로 생각하게 되는 습관이 생겼다.



각 팀의 진행상황을 모두 모아서 내가 일괄적으로 취합해서 과장님께 드리는 업무를 맡았다.

보고를 하다 보면 여러 칸의 숫자들을 보게 된다.

첫 번째 칸부터 두 번째, 세 번째 이렇게 숫자들이 들어있는 많은 칸들이 있다.

내가 작성해야 하는 보고서에는 합계가 제일 먼저 나왔다.

즉, 결론부터 말하고 나머지 세부내용을 적었다.


그런데 한 팀의 금액 합계가 이상했다.

24+14=39

숫자를 모두 더했는데 38이 나와야 할 자리에 39가 나와 있었다.

왜 그런가 그 팀에 물어보았더니 반올림으로 인한 끝수 차이였다.

즉 한 칸은 24.4라서 내림한 24를 쓰고, 나머지 한 칸은 14.4라서 내림한 14를 썼지만 합계가 38.8이니 반올림하여 39를 쓴 것이었다.


정확한 데이터를 받아서 내가 임의적으로 조정해서 합계가 모두 일치하도록 맞췄다.

1의 자리는 사실 큰 차이는 아니다. 하지만 보고를 받는 입장에서는 기본적인 숫자조차 틀리는 팀에게는 신뢰가 가지 않는다.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는 셈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주어진 문제를 볼 때마다 계량화, 수치화를 떠올린다.

피터 드러커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If you can not measure, you can not manage.

“계측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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