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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목 Jun 01. 2023

기쁨과 연민을 셰어하는 '셰어하우스'

하우스메이트들과 소박한 일상을 나누며 살았던 신입 시절을 회상하며

 

 평생 지방에서 살아왔던 나는 작년에 취업 때문에 서울로 올라왔다. 나의 첫 거처는 가로수길에 위치한 셰어하우스였다. 햇빛이 잘 들어오는 8명 정원의 널찍한 공간이었다. 나는 거기에서 가장 큰 방을 혼자 사용했다. 작년 초에는 아직 팬데믹 상황이었기에 조금 걱정됐지만, 나는 10개월 동안 코로나19에 한 번도 걸리지 않고 무사히 퇴거했다. (여담이지만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코로나19에 걸려본 적이 없다.)


  셰어하우스에선 전부 각자도생했다. 특성상 사람들이 자주 바뀌기에 일부러 정을 주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옆방 사는 동갑내기 L과 우연히 말을 텄다. 이를 계기로 셰어하우스에 사는 모든 하우스메이트들과 밥도 같이 먹고, 술도 같이 마시는 사이가 됐다.


  처음 대화를 나눌 때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와 “어디서 오셨어요?”다. 그리고 그 다음엔 직장이나 학교 이야기가 따라온다. 나를 인터넷신문 기자라고 소개하면 모두 크게 놀랐다. 매체명을 말해주면 더 놀랐다. 그땐 생신입이었던 터라 그 반응이 싫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궁금해하는 직업을 가졌다는 사실이 조금은 뿌듯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하우스메이트들은 곧 나를 연민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체력이 소진되는 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아침 5시 반에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1시간 동안 발제 거리를 찾다가 7시쯤 집을 나섰다. 7시 반까지 회사에 출근해 내가 모은 발제 리스트를 정리하고 근무를 시작했다. 회사는 역삼이었지만 늘 걸어서 퇴근을 했기 때문에 집에 오면 7시가 됐다. 밥 먹고 조금 쉬면 8시. 하우스메이트들과 이야기를 조금 나누고 할일을 하다 보면 다시 잘 시간이었다.


  심지어 스케줄 근무였기 때문에 주말엔 약속을 거의 잡지 못했다. 주말이라 밖에 나가서 놀다 들어오는 하우스메이트들에게 부러운 시선을 보냈다. “언니 오늘도 일해요?”라며 안쓰러워하는 목소리로 말하는 동생에게 나는 힘없이 고개를 주억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한창 회사에 적응할 때라서 밤에 잠도 일찍 자야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어떻게 버텼나 싶다.


  어떻게 버텼긴, 덕질로 버텼지. 첫 근무를 마치고 셰어하우스로 돌아와서, 너무 힘들다고 중얼거리며 세븐틴의 자체 콘텐츠이자 이제는 웹예능으로 크게 사랑받고 있는 '고잉 세븐틴'을 틀었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익숙한 목소리로 왁자지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고일 정도로 안도감이 들었다. 보통은 엄마나 친구한테 전화를 걸텐데, 나도 참 나다.


  아무튼 하우스메이트들과 인생의 한 시기를 통과해오며 정도 많이 들었지만 결국 친했던 사람들은 다들 원룸을 구해 떠났고, 나는 그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떠났다. 지금은 뚝섬과 어린이대공원을 사랑하는 광진구 주민이지만, 가끔 셰어하우스에 살던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잠원한강공원에 간다. 신사동에서 1년도 채 안 살았는데도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가로수길을 보면 향수병에 걸린 사람처럼 마음이 아련해진다. 가장 힘들었던 신입사원 시절을 함께 해서 애틋함이 생긴 것 같다. 아, 잠원에서 처음으로 자전거를 배우기도 했다. 같이 살던 S언니가 알려줬다.


  셰어하우스에 살 때는 방에 있어도 늘 소음이 들렸는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엔 나의 타자 소리와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안락하고 쓸쓸한 적막. 살아가는 일은 혼자임을 적응해가는 일인 것 같다. 나는 아직도 내가 혼자라는 사실이 사뭇 어색해질 때마다 '고잉 세븐틴'을 틀어 놓는다. 그들의 말을 들으며 혼자 웃는다. 여전히 밖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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