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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목 Oct 14. 2022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혼밥뿐

홀로 달랑 서울로 올라온 사회초년생의 식사



 올해 1월에 상경했다. 어렸을 때부터 심각한 케이팝 오타쿠였던 나는, 서울에서의 생활을 매일 꿈꿨다. 내가 사랑해마지않던 모 엔터테인먼트의 건물엔 들어갈 수 없었지만, 한강에서 운동할 때 보이는 엔터사의 로고를 보며 어릴 때의 나를 떠올려 본다. 상상 속의 나에게 뿌듯한 미소도 지어 보인다. 내 마음을 거쳐 간 수많은 구오빠들에게도.


 서울에서의 생활을 그토록 그려왔지만 막상 지내 보니 쉽지 않았다. 친척들이 살긴 하지만 친하지 않고, 지인들이 있긴 하지만 역시나 친하지 않다. 나는 모든 걸 혼자 해야했다. 혼자 한강에 누워 있고, 혼자 서울숲에서 자전거를 타고, 혼자 리움으로 전시회를 보러 간다. 혼자 즐겁고 혼자 쓸쓸하다. 서울에서 지내는 동안 나의 ‘혼밥 레벨’ 역시 쭉쭉 올라갔다.


 나는 원래 미각이 매우 둔하다. 웬만해선 다 맛있게 먹는다. 가리는 식재료는 조금 있지만, 딱히 가리는 음식은 없다. 최애 맛집도 없었다. 내가 가는 모든 음식점은 다 맛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자 먹느라 미각에 집중한 덕분인지, 이제 나에게도 나만의 맛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초밥은 여기가 제일 맛있고 팟타이는 여기. 아직 미식가도, 대식가도 아니지만 어쨌거나 음식을 향한 마음은 사랑밖에 없다. 혼자서 양껏 사랑만 할 거다.


 사실 브런치에 연재하려던 글은 <혼밥일기>다. 미식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 근데 나는 거의 모든 음식을 사랑하며 그저 맛있게 먹기만 할 뿐이므로 이는 기획 단계에서 그쳤다. 쓰는 속도가 먹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것 같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계속 혼밥에 대해 쓰고 싶었다. 혼자 먹는 게 얼마나 안락한 행위인지 설파하고 싶었다. 이렇게 말하니 거창하지만. 내가 비록 친구가 없어서 혼밥하는 건 맞는데요, 혼밥 진짜 진심으로 좋거든요.


 회사에서도 거의 매일 혼밥을 한다. 이건 나뿐만이 아니라 전 직원이 그렇다. 코로나19 이후 생긴 문화라고 한다. 회사 내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식사를 고르고 조용히 밥을 먹는다. 고요한 주택가를 벗 삼아. 다만 빨리 밥을 먹고 친한 동료와 함께 커피 타임을 가진다. 회사의 점심 시간은 칼같이 한 시간이므로 점심은 거의 30분 만에 해결해야 한다. 그래도 커피 타임을 포기할 순 없다.


 쉐어하우스에 살 때도 거의 혼자 저녁을 먹었다. 같이 살던 언니, 친구, 동생들과 친하게 지냈을 땐 종종 같이 먹기도 했다. 식탁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으면 적게 먹어도 배부른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혼자 밥을 먹을 땐 오롯이 내 시간을 운용할 수 있다. 밥 먹으면서 시청할 영상을 찬찬히 고르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는 것.


 본가에 살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을 때도 나는 방 안에 틀어박혀서 혼자 밥을 먹곤 했다. 그땐 극심한 다이어트 중이었어서 같이 먹는 걸 정말 싫어했다. 허닭볶음밥과 삶은 계란, 김을 쟁반에 올려 방으로 들어간 다음 식사를 하면서 인터넷 강의를 시청했다. 강사의 웃긴 강의를 들으며 밥알을 그저 씹어 삼켰다.


 나도 언젠가 혼밥보단 같이 먹는 식사에 익숙해지는 날이 오겠지. 그때 지금을 돌아보면 과연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지금보다 좀 어른이 된 나는 지금의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혼자만의 식사 시간을 즐기며 밥과 나에 대해서 탐구해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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