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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독기있는 그녀, 결혼하다
03화
내가 찬 남자의 웨딩프사를 본 기분
부제 : 밤 10시에 카톡 숨김친구는 왜 봤을까
by
흙표범
Feb 1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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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톡의 차단기능, 숨김기능을 애용한다.
자주 사용하다 보니 나름의 기준이 생겼다.
ㅇ '전에 살던 집주인', '절대 연락할 일 없는 소개팅 남자'처럼 절대 연락하기도, 받기조차 싫은 사람
-> 차단
ㅇ 카톡 상태가 전혀 궁금하지 않은 '예전 한때 같이 일했던 다른 회사 직원', 마음에 들지 않아 거절은 했지만 차단까지 하는 것은 '미안한 소개팅 남(여지를 둔 것일까...)'
-> 숨김
마흔으로 산 지도 어느덧 11개월이
지났다.
보름
뒤면 마흔하나로 살아야 되는 게 무서웠던 밤 10시의 사무실.
업무 관련 문서를 보는 게 너무 지겨워서 카톡의 '숨김친구' 목록을 열어봤다.
'숨김친구'는 사진을 클릭하면 일반 카톡 친구처럼 그 사람의 프로필 사진이 보인다.
'매일 보는 직장 사람들 말고 다른
사람들은 뭐 하고 사나' 궁금하기도 했고,
'나처럼 변화 없이 1년째 같은 프로필 사진을 걸어놨는지'도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당시의 나는 외로움을 넘어,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들 말고는 개인적인 부탁을 할 사람도 없는 정신적으로 고립된 느낌이었다.
설마.
.. 그 사람 맞지?? 결혼해? 벌써?
나 좋다 할 때는 언제고?
대부분 업무와 관련 됐었던 사람들 사이에서 새하얀 프로필 사진이 눈에 띄었다.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처음으로 소개받았던 그 사람이었다.
내 자체 기준으로는 너무 수다스럽고, 너무 퉁퉁한 아저씨 외모
때문에 손잡을 마음도 안 생길 것 같아 거절했던 그 사람이... 4개월도 안되어 행복한 웨딩사진을 만천하에 보여주고 있었다.
약간은 날씬해진 것 같은 그 사람 옆의 새신부가 나에게는 더 충격이었다.
나의 자존감이 좀 떨어진 상태였지만, 그녀는 확실하게 나보다 젊고, 날씬하고, 예뻤다.
밤 10시 야근 중인 사무실에서 하던 일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집에 와서 씻는 중에도 생각은 끊이질 않았다.
'내가 문제인가?'
'너무 심하게 까탈스러운 건가?'
'나보다 예쁜 저
여자도
그 사람이랑 결혼하는데, 내 나이에는
그 정도
사람이면 베스트였던건가?'
처럼 자신에 대한 비판부터,
'나 좋다고 할 때 그냥 잡을걸 그랬나?'
'결혼정보업체를 환불
안 하고 그냥 10번 다 만나볼 걸 그랬나?'
라는
되돌릴 수 없는 후회까지.
다음날 아침
일찍 절친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얘기하고, 나의 후회를 한가득 풀었을 때 친구는
"너 기억 안 나? 그 사람 만났을 때마다 나한테 전화해서 "진짜 아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라고 계속 얘기했던 거? 그때 감정을 기억해 봐. 막연하게 후회하지 말고"
그 말을 듣고서 약간 마음의 평온이 찾아왔고,
또
밤낮없이
일을 하면서 후회하는 감정은 점차
잊혀갔다.
그때의 감정을 스스로 이렇게 정리하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홈쇼핑을 즐겨
보지도 않고,
TV를 돌리다가 홈쇼핑을 우연히 틀었는데,
살 생각도 없던
물건이
홈쇼핑 방송 중에 매진이 되었다고 하니 '그렇게 좋은 물건이었나? 한번 써볼걸 그랬나?' 하는 심리.
그리고 그 남자는 결혼에 진심이었고,
나에게도 그런 진정한 마음으로 대했겠구나 생각해본다.
마흔한 살의 밸런타인데이
=
나와는 상관없는, 남자가 여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건지, 여자가 남자에게 주는 건지
헷갈리는 날.
그 헷갈리는 날에 언제나처럼 직장사람들과 점심 먹고,
직장사람들과 저녁 먹고,
1도 관심 없는 승진얘기, 업무얘기를 하며 지내던
중
평소 친하게 지내는
나보다 3살 많은 싱글인 동료가 '알츠하이머
예방법'을
나에게도 공유했다
.
"내 친구 중에 혼자 살고 집에서 혼자 일하는 애가 있는데, 얼마 전에 알츠하이머 초기판정을 받았어. 걔는 평소 생활이 누구와 말도 안 하고, 감정의 기복도 없는 상태거든. 도파민이
나올 일이
없는 게 알츠하이머의 원인이 된 것 같기도 해."
그러면서
그녀는
우리같이
혼자 사는 애들은 드라마 남주인공이라도 좋아하며 사랑에 빠져야 한다고 했다.
퇴근 후 재밌는 뭔가를 찾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월화 드라마를 시간 맞춰 챙겨봤다.
두 달 정도 나의 알츠하이머를 예방해 준
'
사내맞선
'
얼굴천재
'
강태무
'
남주님은 나의 평생 은인이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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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ch Book
40대 독기있는 그녀, 결혼하다
01
서른아홉에 만난 남자들
02
서른아홉에 40만원짜리 소개팅
03
내가 찬 남자의 웨딩프사를 본 기분
04
그냥 취미모임도 나이 때문에 가입을 못해?
05
혼자 사는 40대 딸을 둔 엄마의 마음
40대 독기있는 그녀, 결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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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를 돌아다닌 자유로운 영혼이었는데 마흔넘어 만난 동갑남친과 5개월 만에 결혼 후 쉽지않게, 쉼없이, 여유없이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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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취미모임도 나이 때문에 가입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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