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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흙표범 Feb 23. 2023

혼자 사는 40대 딸을 둔 엄마의 마음

부제 : 엄마의 자랑거리가 아픈 손가락으로 바뀌었다.

"너랑 동갑이고, 와이프가 바람피워 이혼했단다. 애는 없대"

설 연휴에 부모님 댁에 갔더니 엄마가 갑자기 집 근처에서 커피 한잔 마시고 오라면서 한 말이다.


운동복 한벌로 4일째 지내고 있던 나에게 엄마는

"이렇게 나가도 괜찮아, 자연스럽고 좋지" 라며 자꾸 일어나라고 몸을 밀친다.

넘치는 기름으로 이미 선을 넘어버린 머리에 이 옷 그대로 바로 나가라는 것에 당황했고, 소위 말하는 '재취자리'를 그것도 친엄마가 나가라고 하는 것에 너무 화가 났다.  

"싫어! 싫다고!! 지금 나보고 그런 자리에 나가라는 거야? 그런 사람은 어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고!! 자꾸 그러면 나 명절에 안 온다!!"

다 모인 가족들 앞에서 크게 소리를 내고는 이미 창고가 되어버린 예전의 내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고 나서는 엄마와 데면데면하게 남은 명절연휴를 보내고 혼자 사는 내 집으로 올라왔다.


"엄마는 너네 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항상 울어" 

명절연휴가 끝난 후 첫 출근날은 언제나 힘들다. 퇴근 후 혼자만의 짧은 휴식을 보내고 있는데 오랜만에 아빠 전화가 왔다.

"엄마한테 너무 서운해하지 마라, 너 마음 아플까봐 얘기는 안 했는데 몇 년 전부터 너네 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엄마는 항상 운단다.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는 네가 안쓰럽고, 우리가 오고 나면 또 혼자 남은 네가 외로울까봐 그런 것 같아"

아빠의 말을 듣고 마음 한켠이 아파왔다. 결혼을 하라는 걸 잔소리로만 치부했는데, 혼자 있는 내 모습을 보며 돌아서서 울기까지 했던 엄마모습이 떠오르면서.


엄마의 자랑거리였던 내가 30대 후반부터는 아픈 손가락으로 바뀌었다.

어릴 때부터 엄마의 자랑거리는 나였다. 어려운 형편에도 공부는 곧잘 해서 학창 시절에는 '공부 잘하는 큰딸', 직장을 다니고 나서는 '좋은 직장에 다니는 큰딸'  팍팍한 형편에도 엄마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무기였다.

"모임에 나가도 이제 자랑할 게 없어. 남들은 사위자랑, 손주자랑 하는데 나는 입을 꾹 닫고 할 말이 없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엄마의 푸념을 나는

"자꾸 뭘 자랑하려고 그래. 다른 사람 시선은 왜 신경 써. 엄마는 그게 문제야"라고 뾰족하게 반응하곤 했다.


엄마와 서로의 감정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부모가 되어본 경험은 없어서 엄마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동안 지겹게 들었던 결혼 압박이 타지에 혼자 있는 나를 걱정하는 맘에서 비롯된 것임을 깊게 느끼고 나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물론, 평상시와 다름없이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오늘따라 더 끈끈한 가족의 연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저 멀리서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마음속의 지지대.


결혼이란 게 나 혼자 노력한다고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마음을 조금 더 여는 노력은 해보기로 했다. 

영어단어 숙제는 혼자 몇 번이고 외우고 되뇌면 완성할 수 있지만, 결혼이란 건 혼자 잘한다고 완성할 수 없는 숙제임은 분명하다. 주변 지인 중에는 "결혼은 타이밍이야. 결혼하고 싶은 시기에 옆에 있는 사람과 결혼했어"라는 사람도 있고, "연애하고 뭔가에 휩쓰려 눈떠보니 결혼했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 점에서 나의 타이밍은 아직 안 온 것일 수도 있고, 뭔가에 휩쓸리기에는 아직 자신만의 신념과 기준이 확고해서 결혼이라는 것에 빨려 들어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원래 뾰족하게 모가난 나의 성격이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도록 둥글어지는 데는 남들보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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