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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도서 서평

위대한 개츠비

소설보다 영화, 영화보다 유튜브가 더 재미있는

by 채PD

책은 지루했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 제목은 알고 있었지만, 내용은 전혀 모른 채 읽기 시작했다. 읽는 내내 지루하다고 느꼈다.

스토리는 단순했고, 문체도 번역 탓인지 모르겠지만 읽는 맛이 밋밋했다.

무엇보다 무언가를 상징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배경을 전~혀 모르니 답답할 수밖에.

그래도 꾸역꾸역 다 읽기는 했다.


유튜브 영상들을 훑어보고 나서야 소설의 숨은(?) 의미들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소설 속에는 1920년대 미국의 시대상을 상징하는 것들이 매우 많았는데, 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무하다시피 한 내가 이 이야기를 난해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미국인이 한국 소설 '소나기'를 읽으면 그게 재미있겠는가?


하여간 이 소설은 좀 특이한 경험이었다.

대게는 소설이 재미있고 영화가 실망스러운데, 반대로 영화가 소설보다 더 재미있었고, 유튜브는 훨씬 더 재미있었다.

공부하는 듯 읽게 돼서 재미를 알게 된 소설이랄까?

미국에서는 이 소설이 교과서에도 실려있단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책 제목의 "위대한"의 의미.

이는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한데,

한 여성을 향한 지고지순한(?) 개츠비의 구애를 위대하다고 평하는 이도 있었고,

아메리칸드림의 환상과 몰락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것이라고 보는 해석도 많았다.

뭐가 됐든, 이 소설은 매우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한데. (사랑받는 고전들의 공통된 특징이지.)

나도 나름대로 이 소설의 의미를 해석해 보았다.


아메리칸드림(American Dream)의 환상과 몰락을 비판적으로 조명한 소설이라는 평이 가장 많은데, 그렇게 거창하게(?) 생각할 것까지도 없이 그저 인물들 개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개츠비에게 '위대함'이라는 수식어는 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츠비는 정말 '위대한(Great)’가?


인간은 꿈을 꾸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다. 희망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간다.

끊임없이 더 나은 인간이 되려고 하는 욕망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속되게 말하자면 출세욕이나 부에 대한 욕심도 마찬가지. 우리는 끊임없이 어제보다 더 나은 삶을 그리고, 꿈꾼다.


이 소설은 한 여자를 향해 부단히 질주한 남성의 서사다.

그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무언가를 갈망한 이의 발자취에는 충분히 의미가 있지 않을까?

작가가 그에게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바로 그 순수한 열정과 열망, 집념을 향한 헌사였는지도 모른다.


작품 해설을 좀 찾아보니. 작가 피츠제럴드 자신의 삶이 투영되었다는 해석도 있고, 왜곡된 아메리칸드림에 대한 상징이라는 평가도 있다.

자신의 이상을 위해 끝없이 달리는 삶은 그 자체로 위대함의 한 조각은 아닐까.


개츠비의 아버지가 닉에게 아들의 메모를 보여주며 그가 대단한 루틴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장면이 있는데, 그가 얼마나 자기의 목표를 위해 스스로에게 엄격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다.

그는 데이지라는 꿈을 꿨고, 희망을 품었으며, 끊임없이 더 나은 존재가 되기를 갈망했다.

스스로를 단련하며, 원하는 삶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간 사람.

개츠비는 그래서 '위대한 면'이 있다.


그러나


개츠비는 과거를 되돌릴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과거를 되돌릴 수 없다고? 왜 못 되돌려?”라고 당당히 말하는 그의 모습은, 어쩌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인간상이기도 하다.

그의 목표도, 희망도, 사랑도 모두 과거에 존재한 한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다.

그가 꿈꾼 이상은 ‘앞을 향한 비전’이 아니라, ‘과거의 재현’이었다. 그래서 그의 열망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위태롭다.

그는 변화하는 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오직 한때의 찬란했던 순간만을 붙잡으려 한다.

그리고 결국 그 순간은 산산이 부서진다.


위대함은 어쩌면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는 용기, 흘러가는 시간과 삶의 변화에 순응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개츠비의 삶은 뜨겁고 치열했지만, 그 끝은 고독하고 공허했다.

그 이유는 그가 과거에만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묻게 된다.


"개츠비, 그는 정말 위대한가?"


Only 개츠비? No~ 그들도 위대하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지점은 이것이다.

정말 개츠비만 위대한가? 그의 순수함이 그를 위대하게 만든다고 한다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아닌가?라는 것이다.


데이지는 속물적이고 무책임한 인물로 그려지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으로서 선택의 폭이 제한된 현실 속에서 안정을 택한 현실주의자다.

조지 윌슨은 끝까지 사랑을 지키려다 절망에 무너진 슬픈 상징이고, 닉 캐러웨이는 이상과 타락한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으려 한 관찰자다.

등장인물 모두가 서로 사랑하고, 갈망하고, 삶을 버텨낸 존재들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고군분투했다.


만약 위대함이 성취의 결과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와 진심에서 비롯된다면,

소설 속 모든 인물들 역시 위대할 자격이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개츠비가 위대하다면, 그들 또한 위대하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읽게 되었지만, 막상 읽는 과정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진 소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뒤, 영화와 해석 영상들을 보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왔다.

소설보다 영화, 영화보다 유튜브가 더 재미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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