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한, 그들은 죽지 않는다
한강의 전작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를 인상 깊게 읽었지만, 이번 작품은 아무런 정보 없이 접하게 되었다.
한참을 읽고 나서야 이 소설이 제주 4·3 사건을 바탕으로 쓰인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소년이 온다]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시대의 아픔을 기억하자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
제목 [작별하지 않는다]는 바로 그런 뜻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상징적 메타포를 통해 메시지를 직조해 낸 1부였다.
"앵무새와 눈보라"
잊혀진 말을 반복하는 존재와, 그 기억을 덮으려는 폭력
1부는 주인공 경하가 친구 인하의 앵무새를 구하기 위해 제주도로 향하는 여정과, 그 여정 중 마주하는 거센 눈보라, 그리고 결국 죽어 있는 앵무새를 발견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아마도 눈보라와 앵무새는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앵무새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 새다.
점차 잊혀가는 4·3 사건을 끊임없이 되뇌며, 망각을 거부하는 존재.
앵무새는 기억의 잔향이며, 멈춰버린 인선 어머니의 시간, 그리고 지워져 가는 사건의 표상이다.
경하가 그 새를 살리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모습은, 기억을 되살리려는 작가의 무의식적 의지가 투영된 것처럼 보인다.
반면 눈보라는 곧 시련이며, 폭력이다.
그것은 진실을 가리고, 기억을 덮으며, 끝내 말할 수 없도록 만드는 국가 폭력의 은유다.
주인공 경하는 엄청난 폭설에 중간에 가는 길을 포기하고 되돌아오려 했으나, 때마침 들어오는 버스의 불빛과 정류장에 서있던 정체 모를(?) 노파의 눈빛에 이끌려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장면은 이 소설의 윤리적 방향을 보여주는 상징적 순간이다.
기억을 향해 가는 여정은 어렵고 고통스럽지만, 결국 누군가는 걸어야 한다는 선언처럼.
경하가 눈보라를 뚫고 앵무새를 찾아내는 여정은 단순한 우정이나 의무감이 아니다.
그것은 “잊히고 지워진 존재에 대한 애도의 몸짓”이며, 문학이 감당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하고 가장 단단한 저항인 것이다.
앵무새는 "사라졌지만 아직 말은 남아 있는 존재",
눈보라는 "그 존재를 지우려는 폭력",
그리고 경하의 행동은 "기억하고 말하려는 예술의 실천"이다.
물은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고 순환하지 않나.
그렇다면 인선이 맞으며 자란 눈송이가
지금 내 얼굴에 떨어지는 눈송이가 아니란 법이 없다.
인선의 어머니가 보았다던
학교 운동장의 사람들이 이어 떠올라
나는 무릎을 안고 있던 팔을 푼다.
...
그들의 얼굴에 쌓였던 눈과
지금 내 손에 묻은 눈이 같은 것이 아니란 법이 없다.
p. 133
읽다가 탄성이 나왔던 부분.
그렇다. 순환하는 물질에도 영혼과 기억이 함께 담겨있을 것이다.
그들의 시간은 그렇게 지금 이곳에서도 조용히 내리고 있다.
2부에는 전쟁과 학살, 무자비한 국가 폭력에 희생되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
그렇게 야만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이들의 모습을 인선과 인선 어머니의 증언을 통해 무척이나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읽다 보면 이건 소설이 아니라 마치 한 편의 르포르타주 기사를 보는 것 같다는 느낌까지 받게 된다. 그만큼 묘사가 실제 같다.
또한 그런 일이 단지 백 년도 채 지나지 않은 현실이었다는 사실은 더더욱 놀랍고, 아프다.
제주 4·3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많은 민간인이 국가의 이름으로 희생된 사건입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그 사실을 말하는 것조차 금기였죠.
너무나 많은 이들이, 죽는 것조차 다하지 못한 채 잊혀졌습니다.
작가 한강
한강은 이 ‘말하지 못한 죽음’과 ‘기억되지 않은 존재’들에 대해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고심했다고 한다.
그녀는 이 책을 쓰기까지 약 10년 가까운 시간을 준비하고, 그중 집필에는 3년 이상을 바쳤다고 밝혔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제주 4·3이라는 실제 역사적 비극을 배경으로 한 기억의 복원 서사다.
결국 그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다.
"작.별.하.지. 않.는.다."
단순히 이별을 거부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국가 폭력에 의해 사라져 간 이들을 기억하고 애도하며, 망각을 강요하는 역사와 시간의 흐름에 대한 저항인 것이다.
"사람이 진짜로 죽는 순간은 그저 육신이 시들었을 때가 아니라,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모두 사라졌을 때."라는 말처럼.
당시를 기억하고 회상하는 것은 그들을 영원히 우리 곁에 살아있게 만들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죽은 자가 산자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불과 얼마 전 12.3 계엄사태를 통해 경험하지 않았는가?
우리가 당시 그들과 작별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