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과 욕망 사이,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네가 만난 그 아이는 인어야
p. 48
1902년, 강원도 통천 인근 외딴섬.
어부 박덕무는 아내와 두 아이(영실, 영득)와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아내가 폐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어린 딸 영실마저 같은 병에 걸리며 절망에 빠진다.
그때 공영감이 전해준 정체 모를 기름 한 방울이 영실을 기적처럼 살려내는데, 그것은 바로 인어의 기름이었다.
소망이 선을 넘으면 욕망으로 변한다
p. 101
누구에게나 소망은 있다.
어부 박덕무는 딸을 살리기 위해, 공랑은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위해, 또 다른 이들은 생계와 가족의 안녕을 위해 인어 기름을 원했다. 그들의 이유는 절실했고 정당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대부분의 인물들에게 애초의 소망은 희미해지고 "갖고 싶다"는 집착만 남아버렸다.
그것은 더 이상 간절한 필요가 아니라, 이유 없는 욕망이자 탐욕이다.
작중 공영감은 결국 “왜 그것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그저 원하게 되었을 뿐”이라고 고백한다.
이는 곧, 목적을 잃어버린 욕망의 본질을 드러낸다.
인어 기름은 오늘날 물질만능 사회의 단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재물은 처음엔 수단이지만, 이내 그 자체로 목적이 되고 만다.
자동차를 예로 들어보자. 차가 없는 이는 그저 차를 갖기를 꿈꾸지만, 차를 가지고 나면 고급차를, 나아가 슈퍼카를 탐낸다. 이후에는 한 대로는 부족해 두 대, 세 대를 원한다.
애초에 필요로 시작했던 소망은,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처럼 멈추지 못하는 욕망으로 질주한다.
물론 개인의 소망과 욕망을 가르는 선은 뚜렷하지 않다.
그러나 그 경계를 의식하고 조절할 줄 아는 이가 진정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어린 영실이 자신이 지켜야 할 ‘선’을 깨닫는 장면이다.
그녀는 욕망의 유혹 앞에서 절제하며, 소망이 탐욕으로 변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스린다.
그 선택이 결국 아버지를 살리고 자신을 살리는 길이 된다.
결말이 해피엔딩이어서 마음에 들었고, 욕망을 버리고 소망을 이룬다는 울림도 나쁘지 않았다.
때가 되어 사람은 죽었지만 욕망은 죽지 않았다.
수천 년에 걸쳐 해가 바뀌고 사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영생 불사를 누리고자 했던 인간 덕분에
욕망은 영생불사가 되었다.
p. 250
[인어 사냥]은 단순히 신비한 설화를 차용한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 역사적 단서를 절묘하게 엮어내며 미스터리한 신비감을 살렸고, 무엇보다 필요와 과욕의 경계 위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본성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소망과 욕망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우리네 삶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놀라운 점은, 이 작품이 배우 차인표의 세 번째 소설이라는 사실.
그는 무려 10년 넘게 글을 써왔고, 그 꾸준한 도전 끝에 이런 작품을 완성했다. 묵묵히 자신을 갈고닦아온 그가 존경스럽다.
나 역시 언젠가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가지고 있는데, 할 수 있다면 이런 작품을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