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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은 Nov 14. 2021

흑백사진

엄마도 엄마를 참 많이 그리워했구나.


1959년 5월. 겨우내 추운 가시나무속에 웅크려있던 초록색 잎들 사이로 새빨간 장미꽃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 무렵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힘들게 세상에 나와 첫울음을 터뜨린 기쁨도 잠시 손목과 발목이 굽은 채 태어난 가여운 아기는 엄마의 품 대신 방바닥에 깔린 이불 위에서 세상을 살아갈 준비를 했다. 이 사실을 그 아이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 동네 아주머니에게 전해 들었다. 그때 그 아이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이 아이의 이름은 윤상분. 우리 엄마이다. 결혼 후, 십여 년 동안 방 두 칸짜리 좁은 집에 살다가 그것보다 조금 넓은 거실이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해서 처음으로 비싸고 고급진 티비장을 구매해 거실을 꾸민 나의 엄마, 상분 씨.  그리고 틈나는 대로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사서 장식장에 채워 넣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들 중에는 손바닥 만한 작은 액자가 여러 개 있는데 그 액자 속엔 나의 아기 때 사진, 동생의 아기 때 사진과 가족사진 그리고 빛바랜 흑백사진 속 상분 씨와 꼭 닮은 여인의 사진이 있다. 그 여인은 상분 씨의 엄마이다.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외할머니. 맞다, 그녀에게도 엄마가 있었다.

상분 씨의 아버지, 나의 외할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는데 평소 나를 예뻐라 해주셔서 밤새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때 그녀는 아버지를 떠나보냈는데도 울지 않았다. 내가 못 본 것일 수도 있지만 씩씩했다. 그래서 참 강인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녀가 엄마를 떠나보낸 나이보다 훌쩍 자란 딸은 문뜩 엄마의 사연이 궁금해졌다. 언제부터 그리 장애를 얻게 되었는지 묻는 일은 쉽지 않았다. 며칠을 망설인 끝에 무심한 듯 툭 던지며 물었다. 그 물음에 그녀의 대답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아기 때 고열이 나고 많이 아팠는데 그때 당시엔 큰 병원에 갈 수 없어 동네에 있는 작은 한의원의 의사가 놓은 침을 맞아 잘못되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후, 그녀가 소뇌위축증이라는 치매성 질환을 진단받을 때쯤에 어떤 이유로 그 이야기를 다시 하게 되었는지 기억은 잘 나진 않지만 같은 질문에 전혀 다른 대답을 했다. 태어날 때부터 이랬다고. 이렇게 태어난 걸 보고 놀란 그녀의 엄마는 그녀를 보자마자 젖도 주지 않고 무심히 며칠을 방바닥에 놔두었단다. 이 사실을 먼 훗날 엄마가 돌아가시고 동네 아주머니가 이야기해주어 알았다고 말하며 그녀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몹시 불안해했다. 강인하다고 믿었던 그녀의 그런 모습은 처음 보았기에 물음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렇게 더 이상 자세히 묻지 못하고 어색한 정적으로 그 대화는 끝이 났다.

중학교 무렵 때부터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며 자라 누구보다 그 빈자리를 잘 알고 있는 그녀였을 것이다. 감성이 예민의 최고치에 다 달았을 사춘기 시절에도, 결혼을 할 때도,
아이를 낳아 키울 때에도 그녀는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고 또 느껴야만 했을 것이다. 그 빈자리의 의미를 너무나 잘 알아서였을까 그녀는 아파서 휠체어에 몸을 맡겨야 했음에도 아이를 낳고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의 딸에게 와서 후레지아 꽃다발을 선물해주었다.

누구보다 섬세한 감정을 가진 그녀가 몇십 년 만에 마련한 고급진 장식장에 앨범 속 많고 많은 사진들 중에서 하필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 남아있는 엄마의 사진을 선택해 어여쁜 액자에 고이 맞춰 잘라 넣으며 어떤 생각들을 했을는지, 어떤 심정이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사진으로

밖에는 볼 수 없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엄마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진 속 환히 웃고 있는 상분 씨의 얼굴을 보고 있는 지금의 나처럼.


이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한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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