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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은 Mar 05. 2022

잊히지 않는 날.

두려움에 무뎌지는 방법.

그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날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항상 그대로인 것처럼. 나는 같은 시간 항상 하던 대로 엄마가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에 갔다. 병원에 입원할 때보다 더 안 좋아져서 담당자가 중환자실로 옮기는 것이 어떤지 제안했고 병원 측 입장과 엄마의 상태를 고려해 중환자실로 옮겼다. 중환자실은 일반병실보다 제한되는 것들이 많아 면회는 하루 두 번 오전, 오후 30분씩만 가능했다. 매일 오전 면회시간에 맞춰 병원에 가면 엄마의 말은 알아듣기는 힘들지만 엄마와 나는 눈짓 발짓을 해가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하지만 그날은 엄마가 자고 있었고 말을걸어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상하단 생각에 담당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맥박, 혈압 등이 다 정상이라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소견과 함께 밤사이 잠을 못 자서 자는 것이 아닐까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별다른 생각 없이 오전 면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고 아기 낮잠을 재우며 쉬고 있었다. 평온한 오후가 이어지나 싶었다. 아무 일 없이 그저 그런 하루. 그렇게 고요함 속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요양병원이었다. 보통 면회를 하고 나면 요양병원의 전화를 받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전화를 받기 전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전화는 엄마가 위독하다는 전화였고 서둘러 요양병원으로 갔다. 도착하니 중환자들 중에서 가장 중환자들만 있는 간호사 테이블 바로 앞에 옮겨져 있었다. 엄마의 얼굴을 보니 아침에 잠을 자고 있는 듯 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담당의사가 왔고 엄마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려는 순간 '삐---'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급히 담당의사가 엄마에게로 가서 상태를 살핀 후 다시 와서는 살리실 거냐고 물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할 겨를이 없었고 그 순간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살려달라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엄마가 누워있는 침대의 커튼이 쳐지며 심폐소생술이 시작되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가려진 커튼만 바라보며 멍하니 그저 멍하니 서있는 것뿐이었다.

'이대로 엄마를 보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두려웠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그러한 상황이 닥치니 슬퍼하지 말자 굳게 먹었던 마음은 유리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져 눈물과 함께 흘러내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심폐소생술이 잘 되었고 힘겹게 눈 뜬 엄마와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두려움'의 종류에는 '미리 대처할 수 있는 것 '과 '대처할 수 없는 것' 두 가지가 있다. 전자는 공포영화나 고소공포증 같은 두려움의 자극을 차단하면 없어지는 두려움이고 후자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심적인 두려움이다. 엄마가 오랜 시간 아팠기 때문에 후자에 속하는 영원한 이별에 대한 두려움에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나의 완벽한 착각이었다. 아주 막연히 슬플 때 느껴지는 슬픔의 감정일 것이라 예상했던 그것은 상상 이상이었다. 슬픔의 감정뿐 아니라 두려움을 넘어선 공포와 그 끝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듯했고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정신없이 떼로 몰려와서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것 같았다. 미리 대처할 수 없는 두려움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다 보면 감정이 무뎌져서 조금 덜 아플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그 상황에 처하니 그냥 아프고 또 아프기만 했다.


["못 견디게 보고 싶던 사람들인데 무뎌지더라고." "그리움도 무뎌진다고요?" "그렇다네. 분노도 그리움도 마찬가지야."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 p290]

시간이 지나고 그때의 일을 되짚어가며 글을 쓰다 보니 무뎌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는 알 것 같다. 미래의 두려움을 미리 생각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은 시간낭비이다. 미리 걱정해도 아픈 건 매한가지. 걱정 대신 우리는 현재에서 마음을 전해야 한다.


[지금도 보면 눈물이 핑 도는 것은 죽음이나 슬픔이 아니라네. 그때 그 말을 못 한 거야. 그 생각을 하면 눈물이 흘러.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 p290] 

영원한 이별에 대한 감정은 무뎌질 수 있지만, 하지 못한 말은 영원히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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