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걱정이 있다. 그것의 한가운데 있을 당시에는 엄청난 크기의 바위에 눌린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별것도 아닌 일에 괜한 걱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도 있는데 걱정이라는 것은 겉모습을 바꿔가며 항상 우리 옆에 머문다. 걱정으로 속을 태우는 것은 우리 삶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것이기에 피할 수는 없지만 해결방안은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전적으로 자신만이 할수 있는 것이다. 걱정에 대한 부담감이 가중될 때는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다고 생각될때 같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편안해야 좋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심적으로 힘든 부분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으며 마음의 위안을 찾으려고 노력해왔다. 종종 엄마에게 걱정거리들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았었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도 가벼워졌고 보다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나의 걱정거리는 대부분 아이들에 관한 문제이다. 얼마 전엔 둘째가 이름을 불러도 쳐다보지도 않고 눈 맞춤도 전혀 되지 않았다. 24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말은커녕 옹알이도 없어서 걱정이 되었다. 단순히 말이 느릴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해당 증상들을 찾아보니 자폐아의 특징들이었다. 두려웠다. 이 아이를 내가 잘 키워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눈앞이 캄캄했는데 그때 엄마의 빈자리를 크게 느꼈다. 또래 엄마들은 아이들을 키우며 친정엄마의 도움도 많이 받고 육아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며 도움도 많이 받는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럴 수가 없기에 걱정에 대한 두려움에 엄마에 대한 그리움까지 더해져 잠 못 이루는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채워지지 않는군요. 지금 이 순간 그 부재는 무엇보다 혹독한 불행으로 느껴지네요. 저는 친구가 하나도 없습니다.(중략) 물론 제 생각들을 종이에 적을 수야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감정을 소통하는 데는 썩 훌륭한 매체가 아니지 않습니까. 공감해줄 사람이 동행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바라보면 눈빛으로 화답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프랑켄슈타인 p23-24]
가만히 앉아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종이에 적어보았다. 종이에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다 보니 눈에서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르기도 했고 옛 생각이나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는데 마치 엄마가 옆에서 나를 꼭 안나 주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 소설 속 내용처럼 종이에 자신의 감정을 적는 것이 썩 훌륭한 매체가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공감해줄 사람과 동행하며 서로에게 눈빛으로 화답을 받는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엄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지금의 나로선 연필심을 꾹꾹 눌러적으며 속내를 털어내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다. 그것이 마음의 허전함을 완전히 채워줄 수는 없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어딘가에서 엄마가 나와 항상 동행하고 있다는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고구마를 먹고 꽉 막힌것처럼 가슴이 답답할때 작은 상앞에 앉아 종이와 연필을 가지고 시간을 보낸다. 연필로 종이에 이것저것 적다보면 새끼손가락이 까맣게 물들때도 종종있다. 마치 마음의 걱정이 시커멓게 드러난 것 같기도 하다. 다쓰고 손을 비누로 씻으면 하얀 거품은 시커멓게 변하지만 손끝은 깨끗해진다. 종이에 적어 가벼워진 내 마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