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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 Oct 30. 2020

거친 하루


긴 업무를 마치고 비행기가 착륙하더라도, 승무원이라면 또 다른 듀티 아닌 듀티를 위한 체력은 남겨뒀어야 한다.


오늘은 기내 비상상황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 승객이 빠져나가면 기내를 청소하시는 분들이 들어오기 전에 전체적으로 담당 구역을 한 번 더 점검한다. 그리고 분주하게 자기 짐을 빠짐없이 잘 챙겨야 한다. 하나라도 잊어버린다면 두 배 세배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고 립스틱을 다시 정리한 후 다음은 생전 처음 와보는 공항에서 팀은 함께 움직인다. 길고 긴 터미널을 걷고 걷다 복잡한 입국심사를 마치면,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수하물을 찾는다.  또각또각 구두를 신은 발걸음은 랜딩 후 공항의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을 연신 움직이며 더 바쁘게 움직인다.


부지런히 공항을 빠져나오면 우리를 호텔로 데려가 줄 호텔 버스를 찾아 부지런히 또 걷는다. 버스 짐칸에 가방을 싣고 나면 이제 내 짐짝보다 더 무거워진 몸을 드디어 의자에 앉힌다. 안도의 한숨 한번 쉰다.


버스가 우리가 머물 호텔에 도착하면 다시 흐트러진 머리와 화장을 정리한다. 유니폼 모자를 쓴 후 각자의 짐을 끌고 버스에서 내린다. 스무 명 남짓한 승무원들은 이제 마지막인 호텔 룸 체크인의 순서를 기다린다. 모두의 긴장이 점점 풀리는 시점이기도 하다.


가장 막내였던 나의 체크인을 당연히 맨 마지막 순서이다. 모두가 자기의 차례를 피곤에 절어 기다리는데, 시작된 체크인을 안 하고 리셉션 앞에서 웃고 떠드는 부사무장을 바라본다. 당연히 리셉션 직원의 얼굴은 잔뜩 구겨져 있다.


나는 모두가 듣게끔 그 부사무장에게 체크인을 하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녀는 부끄러움과 화를 동시에 느낀 것처럼 보였다. 그녀를 대변하듯 다른 부사무장이 다가와 내가 그랬으면 안 되었다고 지적했지만 나는 할 말을 했을 뿐이라 말한다.


아니나 다를까 레이오버가 끝나고 돌아오는 비행 브리핑에서 부사무장들이 나만 잠시 다른 곳으로 부른다. 어제 호텔 체크인 일에 대한 피드백이 시작되는 듯 보였다.


나 또한 내가 할 말을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그리고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논쟁을 위한 숨 한번 크게 쉬고는 당당하게 그 둘을 응시했다.


그때 이상하게도 내 시선에, 내게 듣기 좋지 않은 소리를 하는 그녀의 떨리는 입술이 보였다. 그가 쓸데없이 태블릿을 만지작거리며 어색한 헛기침을 하고 직접적인 참견을 회피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이 상황을 다른 관점으로 보기 시작했다. 싫은 소리를 즐겁게 하는 사람은 없고, 작은 트러블은 모두를 불편하게 만든다.


사회 초년생의 패기는 “사과”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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