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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 Oct 30. 2020

남과 함께 산다는 건 III


나는 두바이 시내에서의 삶이 그리워졌고 좋은 기회에 다시 시내 중심으로 이사 오게 되었다. 이사는 설레지만 그 과정은 참으로 힘겨웠다. 여자 혼자만의 물건을 정리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었다. 더 이상 이사 가지 않겠다 다짐한 나는 새로운 빌딩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리고 덴마크 출신 동료들을 새 플랫 메이트로 맞이했다.


덴마크에서 온 이사벨라는 이 집에서의 공동 규칙 같은 것을 내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북유럽 출신답게 그녀는 전기와 물을 아끼는 것을 집중적으로 이야기했다. 비록 모든 비용을 회사에서 부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효율적으로 전기와 물 쓰는 것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전기 사용 후 항상 플러그가 뽑혀 있는지 다시 한번 체크했다. 그 후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남자 친구의 집에서 보냈기에 얼굴 볼 일이 많이 없었다.


남아공 친구와는 사연이 깊다. 나는 한 번도 회사 빌딩에서 만난 동료들과 트러블이 있었던 적이 없다. 하지만 그녀와는 작은 갈등으로 시작하여 감정의 골이 깊어져 후에는 서로 눈도 안 마주치고 생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비행을 다녔기에 집에서 보는 시간이 많지 않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곧 코로나가 터졌다.


그녀의 어떤 비행에서 확진자가 나와 그녀는 모든 검사를 마치고 2주 동안 집에서 자가 격리해야 했고 나 또한 속속히 없어지는 비행 스케줄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다. 자연스레 서로에 대한 불편함은 최고조에 다다르게 되었다. 잠깐 공용 냉장고 문제로 이야기해야 할 것이 있어서 서로 대화를 했을 때에도 우리는 엄청난 불꽃을 튀겼다. 나는 그녀의 남아공 식 말투와 영어 발음까지 싫어졌고 그 문화에서 온 큰 제스처 같은 것들이 더욱더 거슬려서 다시금 다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굳어져갔다. 


물론 내 마음이 그렇게 굳어져 갈수록 속 깊은 내면에서는 이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집안의 작은 다툼이 점점 내 영혼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도 무시한 채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더욱더 나만의 성벽을 높게 쌓았다.


라마단이 왔다. 무슬림들은 해가 떠있는 시간 동안 금식을 하고 해가 지면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즐기며 알라께 감사를 드린다. 용서와 관용의 달인 라마단에 무슬림 친구가 나를 위해 기도해 주겠다고 했고 어느 날 응답을 받았다며 내게 큰 축복을 기대하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사실 그 시간에도 남아공의 그녀와 같이 거실에서 각자 할 일을 안 불편한 척하고 있던 터라 마음이 안 좋았는데 그 메시지를 받고는 사실 콧방귀를 뀌고는 대충 ‘Ok Thank you’라고 답장을 보냈다. 휴대폰을 옆으로 치우고 나는 내 할 일에 열중했다. 적막한 거실에는 내 타자 소리와 그녀가 낀 이어폰으로부터의 온라인 강의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내 마음에서 아주 이상한 충돌이 일어났다. 무언가가 울렁이기 시작했다. 이 느낌은 아주 빠르게 더욱 나를 불편하게 하고는 그녀를 바라보게 했다.


그녀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나 또한 나쁜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이렇게 지내서는 안 된다


용기를 내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녀 또한 이어폰을 빼고 나와 긴 대화를 시작했다. 

우리는 어떠한 작은 갈등이 우리 사이를 이지경으로 만들었는지, 서로 다른 목소리의 톤부터 제스처 등의 사소한 것들이 어떻게 우리를 더욱 오해의 늪으로 빠지게 하였는지 깨닫게 되었다. 몸에 식은땀이 나는 긴 화해의 시간을 보낸 후 우리는 서로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고백했다. 이 순간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 왔다고. 


자신의 허물을 인정한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도하자 말했고 따뜻한 포옹을 했다. 물론 이 이후로 우리가 아무 트러블 없이 행복하게만 지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이곳에 쓸 수는 없다. 사사로운 일로 다시 다투기도 했지만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지키려고 부단히 훈련 중이라는 것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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