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란(知覧), 한국인으로서 거북함을 느꼈던 특공평화회관

가고시마 한달살기 #14

by 최씨의 N차 도쿄

가고시마현에는 치란(知覧)이라는 지역이 있다. 에도시대에는 사쓰마번 외성으로 사무라이들의 저택 지역이 있고, 또 치란 녹차로 유명하다. 그리고 또 하나, 제2차세계대전의 '특공부대', 다른 말로 카미카제 부대가 있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특공평화회관에서 계속 거부감을 느꼈던 나는 지금까지 들었던 최악의 '아리랑'을 듣게 된다.

* 키워드 : 가고시마, 치란, 특공평화회관, 도미야식당, 카미카제, 사무라이 저택 거리




오늘도 역시나 한번 어리광을 부리고 시작합니다. 늦잠을 자고 싶은 천근만근의 몸을 일으켜 가고시마중앙역 앞 버스 정류장으로 향합니다. 치란으로 향하는 버스가 오전 6시 50분과 9시 30분이 있었는데 피곤했던 저는 별다른 고민이 없이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반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는 치란에 왜 이렇게 가고 싶지가 않았을까, 아무래도 '특공평화회관'의 존재가 컸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약 1시간 20분을 지나 치란 특공평화회관에 도착 했습니다.


IMG_7655.JPG


특공평화회관의 첫인상은, 도쿄의 야스쿠니신사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느낌이랄까, 생각했던 이미지 대비해서는 외관이 평범한 편이었으나 느껴지는 스산한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치란'이라는 지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945년 3월 '특공부대'의 기지로 지정되면서 지역의 운명이 크게 바뀌게 됩니다. 우리의 광복이 1945년 8월이기 때문에 3월에는 이미 전세가 많이 기울어 일본의 패색이 짙은 상황이었으나, 일본은 결코 항복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전쟁을 불사하던 시기입니다.


한국에서는 '우리 동네 특공대'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듯이 '특공'이란 비교적으로 거부감이 없이 쓰이는 단어이고, 특공대라고 하면 특수 훈련을 받은 부대라는 인상이 들지만, 일본에서 '특공'은 곧 적의 함대를 들이받는 자살 폭탄 테러를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카미카제라고 합니다. 1944년 오키나와 전투에서 1000여명의 특공대원 중 약 400여명이 치란에서 출발을 하였다고 합니다.


20260129_113735.jpg


전시실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특공대 인원들의 사진과 이름, 그리고 그들이 남긴 편지와 유족들로부터 제공받았은 유품과 사연들이 남겨져 있습니다. 모두들 절절한 사연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태어난지 얼마 안된 아들에게 편지를 남기고 출격을 하게 되나, 남편의 사망소식에 놀란 아내가 젖이 나오지 않게 되자 아들도 8개월만에 사망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출격하기 전에 사랑하는 연인에게 남기는 절절한 편지가 인상 깊었습니다. 자신을 잊고 행복하게 살아달라는 장문의 편지에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슴아픈 사람들 가운데 저는 계속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이 사람들도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가족을 빼앗은 가해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들도 카미카제의 일원으로서 누군가의 가족, 아들과 남편, 또는 아버지를 폭격했던 사람들입니다만, 그렇것에 대한 언급은 없이 철저히 희생자에 입장으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 "일본은 1941년부터 미국을 주축으로하는 연합국과 전쟁을 시작하지만"... 누가 보면 연합국이 나쁜 사람들인줄...


"군사목표에 대한 전투행위로, 무고한 일반시민들을 무차별적하게 희생시키는 자폭 테러나 자살 행위와는 다릅니다." ... 상대방에 입장에서 보면 자폭 테러이고, 자살 행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토 시게루 소위는 조선 출신의 특공대원이었습니다. 가토 소위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일본 이름을 썼습니다." 이 가토 시게루라는 사람이 자의적으로 일본 이름을 썼는지 아니면 조선인의 이름으로 살아남기가 힘들었던 상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일본으로 넘어가 일본군인으로 충성을 맹세했던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 "마지막이니까 노래를 한곡 할게요. 라고 말하고는 수줍은 듯이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부른 노래가 '아리랑'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노래를 듣고 미쓰야마가 조선 출신인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 특공평화회관이 조선 출신을 사용하는 방법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조선 출신 병사도 같은 동지로서 미국에 대항하여 싸웠다는 식으로 언급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참으로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당 조선인들을 같은 편에 두고 결국엔 너도 피해자고, 나도 피해자라는, 우리 모두가 피해자였다는 방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거부감을 느끼던 찰나에 구구절절한 사연도 점점 이상해집니다. "전쟁에 나갈 수 있게되서 너무 기쁩니다", "폭격기를 격추시키는 것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자신을 위해 복수를 해달라는 등" 전쟁에 나가기 전에 설렘을 갖는 사연 등 결국에는 세뇌된 전쟁광이 아닐까 하는 정도입니다.


20260129_144016.jpg
20260129_143545.jpg


전시실 한켠에는 '도리하마 도메'라는 할머니를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라이 저택 거리에 가도 자료관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할머니는 치란에서 특공대원들을 위한 식당을 운영을 하고 있었고 일본 정부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지정된 식당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특공대원들의 정신적인 지주로서 유품을 가족에 전달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향후 천황으로부터 표창도 받으면서 일본 병사들의 어머니 격으로 모셔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무라이 저택거리에 있는 자료관에서는 정말 기분나쁜 '아리랑' 노래가 울리고 있었습니다. 조선출신인 특공대원이 카미카제에 나가기 전에 불렀다는 우리의 '아리랑', 이렇게 사용되도록 내버려둬도 괜찮은 것인지 힘들었던 순간이었습니다.




IMG_7684.JPG
IMG_7685.JPG


특공평화회관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찜요리 맛집(旬蒸terrace)이 있습니다. 깔끔한 인테리어와 음식이 정말 맛있었습니다. 화를 좀 누그러뜨리고 치란 사무라이 저택 지역 관광 그 자체는 괜찮았습니다. 거리거리 예쁜 정원들과 꽤나 넓어서 산책하면서 구경하기가 좋았음. 그리고 녹차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는 녹차가루를 뿌려주고 녹차 시음할 수 있도록 여러잔을 주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IMG_7708.JPG


IMG_7719.JPG
IMG_7730.JPG


이전 13화일본 소도시에서 현지인 교류회(カフェ会)에 난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