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연차쓰고 도쿄에서 보내는 하루

도쿄 7주차 일상 # 시모키타자와에서 도쿄 미드타운, 가사이 임해공원까지

by 최씨의 N차 도쿄


도쿄에 온지 벌써 7주차, 성과도 성취감도 없고 회사 생활은 한국과 똑같은 쳇바퀴의 연속입니다. 최근에는 정신이 없다보니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보려던 마음가짐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대충 살기 시작했습니다. 주말에는 밖에 꽃이 예쁘게 펴서 마음은 싱숭생숭한데 쌓여있는 업무 때문에 공유 라운지에 짐을 풀어 봅니다.


이번주에는 식겁한 일이 있었습니다. 집에서 지하철까지는 15분 정도 걸어야하는데 지하철에 다 와서야 교통카드가 들어있는 지갑을 안들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한국에서 지갑을 안들고 다니다보니 신경쓴다고 썼는데도 방심을 한탓에 지갑을 깜빡한 것입니다. 집에 다녀오기엔 늦어서 식은땀이 났지만, 다행히 동전지갑은 가방에 고대로 있어서 1왕복 교통비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가방에 여분 현금를 챙겨놓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도쿄까지 와서 이렇게 무기력하게 살 수는 없습니다. 평일에 연차를 내고 하루를 온전히 여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계획없이 여행한 하루였는데도 아주 좋은 하루여서 한번 기록을 해보고자 합니다.


연차 쓴 어느 하루의 일기,

ㆍ오전 : 시모키타자와 (토토로 슈크림, 20가지 야채가 담긴 수프 카레와 실험실 컨셉의 카페)

ㆍ오후 : 도쿄 미드타운 (소소했던 벚꽃 페스티벌, 멋드러진 공원과 공간)

ㆍ저녁 : 가사이 임해공원 (차분하게 보내는 저녁, 람사르 협약 습지와 철새 구경)




연차낸 월요일 오전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시모키타자와입니다. 도쿄에서 조금 한적한 곳을 찾고 싶어서 방문하는 곳인데 주말에 가보니 사람이 정말 많더군요. 좀 더 한적한 시모키타자와를 다시 보고 싶었습니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시로히게 슈크림 공방 (白髭のシュークリーム工房)' 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동생 (4남 중 3남)이 운영하는 가게로, 세계에서 '토토로 슈크림'을 만드는 곳은 이곳 하나밖에 없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모키타자와에서도 조금 골목으로 들어가야만 만날 수 있는 장소 조차도 지브리 스러워서 인기가 많은 곳입니다.



1층이 슈크림 공방이고 2층은 별도의 카페인데, 2층에서도 토토로 슈크림을 주문할 수가 있어서 2층에 자리잡고 앉았습니다. 카페에서 시켜 먹고 나가는 길에 1층에서 테이크 아웃을 하는 분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옛스러운 인테리어까지 너무 좋았고, 잘라먹기 아까운 슈크림빵도 물론 맛있었습니다.



사진도 열심히 찍고 시모키타자와 거리를 거닐기 시작했습니다. 예쁘고 힙한 분위기의 거닐다가 중고 빈티지 옷가게 구경도 하고 봄에 입을 청자켓도 한벌 구매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점심을 먹으러 이동했습니다. 메뉴로는 카레의 성지라고도 불리는 시모키타자와이니 만큼 카레를 선택했습니다. 근방에 카레 집이 많아서 1년 동안 대부분 다 가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첫 카레 가게로는 삿포로식 스프 카레로 유명한 로지우라 카레 사무라이 (Rojiura Curry SAMURAI) 입니다. 야채들을 푹 익혀서 끓여낸 스프가 마음을 안정되게 합니다.


막간의 일본어 공부를 해봅니다. 메뉴 중 12개 야채가 들어가는 경우에 キャベツ(양배추), にんじん (당근), キクラゲ (목이 버섯), ゴボウ (우엉), カボチャ (단호박), パプリカ (파프리카), ナス (가지), オクラ (오쿠라), れんこん (연근), 紅芯大根 (코우신다이콘, 홍심무), 大豆 (다이즈, 콩), ブロッコリー (브로콜리) 까지가 12종이고, 20종 까지 추가할 경우 다음 여덟개가 추가됩니다.


玉ネギ (양파), ピーマン (피망), じゃがいも (감자), ズッキーニ (주키니 호박), さつまいも (고구마), 大根 (무), ホールトマト (홀 토마토), ヤングコーン (어린 옥수수).



오늘의 야채 (本日の野菜)라고 칠판에 쓰여있는 것을 보니, 매일 리스트는 바뀔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비쥬얼부터가 정갈함의 끝판왕이라서 하나씩 야채를 먹을때마다 건강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치킨은 겉바속촉으로 조금씩 베어 먹는 재미가 있었고, 다만 야채가 압도적으로 많다보니 쉽게 물리는 면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는 오가와 커피 레보터리 라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실험실 느낌의 카페가 무슨 뜻인지 궁금했는데 도착과 함께 그 뜻을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여기가 카페가 맞는건가 싶은 첫인상을 뒤로하고 다양한 원두와 함께, 한눈에 볼 수 있는 메뉴 리스트와 함께 추출 방식도 고를 수 있었습니다. 잘 모르지만 '에어로 프레스'를 추천 받아서 그렇게 부탁 드렸습니다. 한잔을 내리는데에도 심혈을 기울여 내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내부는 미니멀하게 구성되어 좌석도 많이 없었습니다. 커피는 원했던 대로 한번에 많이 마실 수 없을만큼 산미가 정말 강해서 조금씩 음미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모키타자와는 원래 오다큐선이 지상으로 다니던 선로였는데, 선로 때문에 마을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버리자 이를 지하로 내리는 대공사를 진행하였다고 합니다. 東北沢 (히가시 키타자와), 下北沢 (시모키타자와), 世田谷代田 (세타가야 다이타) 역까지 총 2.2km에 달하는 선로가 지하로 내려갔고, 지상은 복합 문화 공간으로 조성되었습니다.


시모키타 '센로가이(線路街)' 라고 부르는데 웹사이트를 보니 이벤트도 활발하게 개최하고 길 자체를 조성을 잘해놔서 산책할 맛이 납니다. 중간에 보너스 트랙이라는 구조물이 있고 카페, 음식점, 잡화점이 있는데 구경하기에 좋습니다. 평일 낮에 오니까 사람이 없는 편이지 주말에는 자리가 없습니다.



시모키타자와 선로 끝에는 독보적으로 큰 핑크색 벚꽃이 있었습니다. 이 나무 하나만으로도 마을 전체 분위기가 달라지는 느낌이었고 시모키타자와에 너무 잘왔다는 생각이 들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일반적인 연분홍색 벚꽃보다 좀 더 빨리 만개하는 품종인 것 같기는 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이동한 장소는 '도쿄 미드타운' 입니다. 근처의 '롯폰기 힐즈'와는 라이벌 관계로 유명한데 미드타운은 한번도 가본적이 없어 버켓 리스트에 묵혀있던 장소입니다. 시모키타자와에서 오다큐선을 타고 노기자한번에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 MIDTOWN BLOSSOM 이라는 벚꽃 축제를 3/13~4/12 기간 하고 있어서 방문하기 딱 좋았던 것 같습니다.


말은 복합문화 시설이라고 하지만 명품관과 쇼핑센터만 있는 경우에는 금방 발걸음을 돌리게 하는데 도쿄 미드타운은 공간 자체도 너무 아름답고 또 방문하고 싶게 만드는 요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입구에 벚꽃 축제의 길을 알려주는 안내판. 벚꽃 분위기가 물씬 납니다.



벚꽃은... 거의 피지 않았습니다. 3월 23일이었는데 살짝 이른듯 합니다. 그렇게 도착한 장소는 '21 21 디자인사이트'입니다. 안도 타다오가 설계했다고 하는데, 지상 위로 나와 디자인을 자랑한다기 보다는 지하로 숨어있는 형태로 공원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습니다. 제가 방문한 날에는 갤러리 1&2는 아직 전시를 준비하는 기간이었고, 갤러리3이 무료로 개방하고 있었습니다. 명품은 잘 모르지만 이세이 미야케 2026년 컬랙션의 색채와 영감을 전시했는데 가볍게 둘러보고 나오기 좋았습니다.



공원에 도착하면 고개를 들어 올려다봐도 끝이 없는 '도쿄 미드타운' 건물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모리빌딩의 '롯폰기 힐즈' 보다 4년 정도 늦게 지어진 건물인데 둘다 지상 54층이지만 높이 자체는 10m 높게 지어졌다고 합니다. 면적 자체는 롯폰기 힐즈보다 작아서 상징적으로 높이는 이겨볼려고 한 느낌입니다. 처음에는 입주 기업이 도쿄 미드타운으로 이동하는 등 신경전이 있었던 것 같지만, 지금은 서로의 이벤트를 소개하는 등 상생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공원과 빌딩 가운데 2층으로 올라가서 예쁘게 조성된 거리와 공원을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살짝 괴랄하게 생긴 조형물이 저는 약간 미관을 해치는 것 같습니다.



빌딩 내부에서 밖으로 본 전경입니다. 공원이 시원하게 보이는, 탁 트인 전경이 유명합니다.



하브스 (HARBS) 갤러리아 2층에 매장이 있습니다. 시그니처 밀 크레이프를 시켰습니다. 녹차가 특별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케이크는 과일이 통으로 들어가 있어서 확실히 맛이 풍부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장소는 가사이 임해 공원(葛西臨海公園)입니다. 도쿄 미드타운에서 한번 갈아타서 약 40분 정도 소요됩니다. 한국인에게는 많이 알려진 관광지라고 할수는 없지만, 도쿄의 인파에 지친 저로서는 이런 장소가 있다고 들었을 때에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조금 늦게 도착한 탓에 5시까지 운영하는 수족관은 방문할 수 없었지만, 사람이 비교적 적어서 여유로운 저녁 노을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가사이린카이코엔 (가사이임해공원) 역에서 내려 공원으로 향하다보면 '크리스탈 뷰'라는 건축물이 압권입니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다니쿠치 요시오의 건축물로 투명하고 시원한 휴게 공간이자 조망 공간으로 조성되었습니다. 마치 액자 처럼, 세련된 느낌으로 공원을 꾸며주고 있었습니다. 이 공간을 거쳐 공원으로 나올때는 마치 다른 세계에 진입하는 느낌이 듭니다. 공원으로는 돗자리를 깔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가족들, 연인들이 있었습니다.



한참을 노을을 바라보면서 멍을 때렸습니다. 이 여유가 오래가지 않을 것을 알지만, 이 순간만큼은 마음에 여유를 주고 싶었습니다.


이곳에 오면 꼭 봐야하는 곳은 도쿄의 유일한 람사르 습지입니다. 람사르 협약은 국제적으로 중요성을 인정받은 철새의 도래지이자 습지입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철새 도래지가 있다는 것이 놀라우면서도 공원의 규모에 한번 놀라고, 사람의 접근으로부터 자연을 보호하고자 하는 노력에 한번 더 놀랐습니다.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이 공간은 사람들의 방해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전체적으로 바리케이드로 둘러놓았습니다. 그래도 벽에 틈을 만들어 사람들이 안쪽으로 구경할 수 있게끔 조성해놓았습니다. 밤이 되자 조명은 최소한으로 하여 금방 어둑해졌습니다. 자연을 보호하고 조성하고자 하는 노력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이런 노력이 있기 때문에 이를 지나는 사람들도 더욱 조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찾아보니 서울에도 한강 밤섬이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었다고 하는데 귀국하면 한번 방문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도쿄에서 연차쓰고 어느 월요일의 하루, 글을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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