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영화관 2편. 벚꽃이 피면 다시 찾아오는 영화
< 도쿄의 미니시어터에서 재미난 일본 영화를 보러다니는 도쿄 영화관 2편 >
○ 본 영화 : 초속 5센티미터 (秒速5センチメートル)
○ 영화관 : 시모키타자와 톨리우드
○ 내용 : 사람과 사람간의 거리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 벚꽃 시즌만 되면 재상영으로 찾아오는 영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성지에서 관람하다.
카레의 성지, 힙한 빈티지 샵 그리고 철로거리 (센로가이)로 잘 알려진 시모키타자와에 52석짜리 미니시어터가 있다. <초속 5센치미터> 재상영 관람을 위해 이 영화관을 찾은 이유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데뷔작이 상영된 성지이기 때문이다. 내가 간 재상영 첫날인 4월 7일에도 만석이었다. 만석이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게 정말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어렸을때 봤을때보다 지금 봤을때 훨씬 더 깊은 여운이 있었다.
만석임을 알리는 안내판.
<초속 5센티미터>는 왜 재상영을 하는가, 바로 영화의 주요한 소재가 벚꽃으로 초속 5센티미터가 곧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를 나타낸다. 매년 벚꽃이 북상하는 기간에 맞춰 서일본 지역에서는 3월 20일부터, 동쪽에서는 3월 27일부터 2주간 특별 상영을 한다. 벚꽃 개화 시기가 북상하는 텀을 두고 재상영을 하는게 정말 재미있는 컨셉이라는 생각이든다.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를 유심히 보면 사실 꽤나 빨리 떨어진다. 흡사 눈이 내리는 속도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사실 실제 속도는 중요하지 않고, 시간이 느리게 가는 상황을 비유한다고 보면 되겠다. 또 영화 말미에는 약 10분간의 특별 영상이 있어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생생한 제작 비화를 들을 수 있었다.
실제로 특별 영상에서 제작진은 이 시모키타자와 톨리우드에서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이 영화관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 대목이다. 처음에는 세가지 단편이 이어지는 단편인지 몰랐다. 어쩌면 굉장히 대충 본것 같다. 다시 보니 남자 주인공이 같은 인물이었고, 첫번째 단편에서 만난 첫사랑을 계속 잊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각 단편의 제목을 붙인 이유가 궁금하다. 모든 시간은 지나면 기억 속에서 분절이 되고 그 분절된 시간에 대해 스스로 제목을 붙여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지금 기간의 제목은 무엇일까.
1부. 이 파트는 정말 어른의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연락 수단이 없어서 편지로만 소통이 가능한 점. 나도 핸드폰이 중2 때 생겼기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는 집 전화로 통화를 하고 만남의 장소로 나가는 아날로그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이를 십분 이해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스마트폰을 갖고 다니는 요즘 세대들은 아마 공감을 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과 장소로 약속을 잡고 약속 장소로 나가는 그 기분은 그때는 답답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특별 영상에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예전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전철에서 갇힌 기억이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귀가길이었기 때문에 다음 날 출근을 못하는 상황이라 그냥 연차쓰면 되는 상황이었지만,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상황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에서 시작되었다. 1화에서 그 한없는 힘듦이 잘 표현되었다. "한없는 답답함에서 느끼는 감동"이라는 것 자체가 어른들의 영화이다. 로봇드림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2화. 남자 주인공인 타카키가 도쿄에서 가고시마 타네가시마로 이동한 중고등학생 시절이다. 처음에 타카키가 아니라 성으로 불려서 다른 사람으로 오해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남자는 시종 1화의 첫사랑에게 보낼 문자 메세지를 쓰고 지우고 있었던 것이다. 또 2화에서 화자가 갑자기 여자에게 넘어온 것도 특이하다. 그때의 타카키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여자 주인공의 마음을 알면서도 어장 관리를 한거라면 진짜 나쁜 놈인데 말이다.
하필 가고시마로 가는 이유는 특별영상을 통해서 알 수 있었는데 타네가시마라는 우주 발사대 (우치아게죠)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을 우주선을 발사하는 것으로 표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한다. 내가 아닌 저 너머의 것을 보고 있는 것을 우주선의 발사로 깨닫는 비유라니 정말 미친듯한 낭만이다. 그러고 2화는 끝나버린다.
* 감독은 우주 발사대가 생활권과 가까운 곳을 찾다가 타네가시마라는 곳을 알게되고, 배경 조사를 위해 직접 가서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학생들이나 학교에서 선생을 인터뷰 하는 등의 조사를 하였다고 한다.
3부. 처음에 모두 다른 이야기라고 오해했을 때에는 3부는 정말 당혹스러움 그 자체였다. 완성되지 않은채 급히 마무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재상영을 보고서는 나는 오히려 이게 완성형의 완성형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이 감독은 특별 영상에서 3화가 짧다고 느껴지는게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지금 제작을 다시 한다면 3화는 길어졌을 것이라고. 그래도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형태로 남겨놓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여백의 미와 같이 많은 상황을 생략함으로써 각자의 상황에 맞게 대입하거나, 상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느껴본 적은 없으나 사랑했던 옛 사랑이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 심지어 거리에서 마주친다는 것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그보다도 더 비참하게 느껴지는 건 사랑하는 사람을 봤을 때의 설렘과 대비되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 때문이다. 그렇게 놀며 살지는 않았건만 지금 나의 모습은 항상 무언가에 쫓겨사는 행복한 모습은 아니기 떄문이다. 어찌되었든 타카키는 첫사랑을 마주쳤는지 어쩐지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한방에 날려버리고 그 간의 컷을 넘기는 형태로 방식으로 마무리하는데 큰 여운을 맞고서는 얼얼한 감정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정말 어색한 마무리 방식이지만 그게 큰 감동이었다. (직장인이어서 더 공감이 되는것인가 싶다.
옆에서 2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연신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옆에 있는 나의 배에서 계속 꼬르륵 소리가 나서 정말 극도로 민망하고 내 자신이 싫어졌다. 소리한번 내지 않고 눈물만 닦아내는 이 섬세한 감동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야속한 내 배는 계속 꼬르륵 소리를 내었다.
귀여운 영화관이었다.
시모키타자와 관광을 하였다.
라이트업 커피이다. 사람이 많았던 곳이라 냉큼 커피를 시켰다. 다정해보이는 직원분이 스몰토크를 시전하셨으나 잘 받아치지 못해서 아쉬웠다. 항상 뭔가 아쉬운 내 일본어.
3월 중순 빨갛게 폈던 벚나무를 다시 찾으러 한참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2주 정도 지난 시점 벚꽃이 그냥 다 떨어졌다. 아예 없다. 미리 만개한 꽃은 그만큼 빨리진다는 생각을 배움을 자연으로부터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