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일본, 동행은 불가능하다 (2)
일본국 헌법(1946.11.3. 공포) 제2장 전쟁의 포기
제9조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하게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 내지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써는, 영구하게 이를 포기한다.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 해, 공군 기타의 전력은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일본 헌법 제9조는 일본의 국제적 무력 행사와 이의 수단이 될 군대의 보유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현행 일본 헌법이 이른바 '평화헌법'이라 불리는 가장 큰 이유다. 헌법이 공포된 것은 1946년 11월 3일, 그때까지도 패전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일제의 망령들은 절망했다. 그 이후 73년, 그만큼 긴 시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본 헌법 제9조는 일본 우익들에게 '일본의 진정한 자주'를 가로막는 독소조항으로 대상화되며 아베 총리를 비롯한 정치세력의 비난을 받아 오고 있다. 다시 말해 '전쟁 가능 국가 일본'이 되기 위한 최종관문은 바로 이 헌법 제9조의 개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자민당과 '기시 노부스케' 그리고 '아베 신조'
사실 헌법 제9조의 개정을 부르짖는 일본 우파의 모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후(戰後) 일본 정치는 보수주의 정당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집권 아래 성장했다. 1955년 이래 자민당이 집권에 실패한 기간은 실제 4년여(93년 연립내각, 2009~2012년 민주당 집권기)에 불과하다. 전후 일본은 그 정도로 압도적인 우익 정치의 영향력 아래 이끌려온 것이다. 물론 전후 모든 일본의 집권자들이 헌법 개정을 부르짖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민당이 '이토 히로부미'가 창당한 입헌정우회와 1945년 자유당의 후신(後身)으로 2차 세계대전 이전(前) 제국 일본을 이끌어 온 정치세력들의 이념적 기반을 물려받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큰 맥락에서 자민당 주류, 특히 초기 창당 주역들의 사상에 비추어 볼 때 평화헌법 개정은 사실상 자민당의 숨겨진, 오래된 꿈이라 해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이 자민당의 최초 집권과 보수 합동, 이를 통해 일본 우익이 정착할 수 있는 기반 (55년 체제라 불린다) 구축에 지대한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아베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다. 기시 노부스케가 생각한 일본의 이상(理想)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그리고 그 이상은 외손자 아베 신조에게 어떻게 전해졌을까?
기시 노부스케의 '일본 재건'과 아베 신조의 '개헌 드라이브'
일본의 56, 57대 총리대신(수상) 기시 노부스케와 오늘날 아베 총리의 행보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측면이 있다. 이미 많은 이들이 마치 평행이론의 재미있는 사례를 보는 것처럼 묘하게 겹치는 둘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평화헌법 개정'과 그에 따른 '일본 군비확장'에 대한 정치·사상적 이상은 이 두 사람이 가장 유사하고 또 강력하게 중첩되는 분야의 하나다.
기시 노부스케 In 1952
1951년 9월 열린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은 2차 세계대전 패전국으로 미군정의 통제를 받던 일본의 주권을 회복시켰다. 하지만 동시에 본 조약은 전범 용의자로 사실상 일본 정계에서 추방되어 있던 과거의 망령들에게도 적절한 복귀의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아베 총리의 외조부이자 A급 전범 용의자 '기시 노부스케'(이하 기시) 또한 이 같은 시대의 바람을 타고 혼잡한 전후 일본의 정치 마당에 연착륙했다.
정계 복귀 직후인 1952년 4월, 기시는 곧바로 자신만의 조직이라 할 수 있는 '일본재건연맹'을 결성하고 일본의 진정한 독립, 자주를 주창한다. 과거 제국 일본의 사상과 시각으로 무장한 그에게 지금의 무기력한 일본은 '정상국가'가 아니었다. 미국의 강요에 의해 군사력을 박탈당했고 국민적 긍지도 상실했으며 '대동아 공영'을 상실한 반쪽짜리 국가, 이러한 기시의 피해망상 끝에는 일본의 패배를 상징하는 '헌법'이 걸림돌처럼 작용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기시는 평생을 통해 개헌론의 총수로서 자신의 이념을 일본 정치에 투사하려 했다. 평화헌법에 묶인 일본은 완전한 국가가 아닌, 재건되어야 할 '결여 국가'였다.
아베 신조 In 2019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평화헌법 개정에 대한 아베 총리의 발언은 이미 무수하게 나왔다. 총리대신 취임 직후인 2006년, '현행 헌법(=평화헌법)은 일본이 점령되는 시대에 제정되어 60년여를 경과해 왔으며 이에 현실에 맞지 않는 측면도 때문에 21세기에 걸맞은 일본의 미래 모습 또는 이상을 헌법에 반영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2006.10.3. 중의원 본회의 발언)고 운을 띄운데 이어 이듬해인 2007년에는 '현행 헌법은 점령군에 의해, 그것도 헌법 전문가도 아닌 사람들에 의해 2주 만에 대충 쓰였다고 알려져 있다'(2007.1.6. '주간 세계와 일본' 1718호)*며 강변했다. 급기야는 일본의 평화헌법이 '패전국의 인색한 사과 증서, 꼴사납다'(2016.7.25. 산케이신문)**며 그야말로 극우에 치달은 이들만 내뱉을 법한 표현을 남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現行憲法は占領軍の手によって、憲法の専門家ではない人たちによって2週間そこそこで書き上げられた、と言われており、やはり国の基本法である限り、制定過程にもこだわらざるを得ない」と述べた。
**現行憲法の前文については「敗戦国のいじましい詫び証文」「みっともない」と主張している。
이러한 아베 총리의 주장은 '평화헌법'이 미국의 강요에 의해 체결된 폭거이자 간섭으로 규정하고 진정한 독립을 위해서는 헌법을 개정해야 함을 주장한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의 주장과 무서울 정도로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평화헌법 개정을 둘러싼 아베 총리의 정치적 행위에는 지금껏 '싸우는 정치인'으로 정치적 성공을 일궈온 본인 스스로의 명분을 완성한다는 것에도 적지 않은 지향점이 있을 것이고 아베 총리 자신의 정치적 생명 연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기시, 아베 총리라 할지라도 헌법 개정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헌법을 개정한다는 것은 완성된 국민적 합의를 필요로 하는 중차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과거를 반성하고 평화를 추구하기로 했던 일본 평화헌법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그러면 기시와 아베는 대관절 어떤 방식을 통해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것일까? 우리로선 답답한 일이지만, 기시 노부스케와 아베 총리는 헌법 9조 개정을 위한 단계를 순차적으로, 착실히 시도해왔고 그 과정은 아직 진행 중이다. 이런 측면을 고려하여 이어질 글에서는 기시와 아베, 평화헌법 개정을 위한 이 두 사람의 영악한 정치행위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