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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Sep 01. 2018

[독후감] 남양 섬에서 살다,조선인 마쓰모토의 회고록


   일제 강점기를 살아온 사람들의 삶에는 처절함과 극단이 배어 있었다.  적어도, 우리가 공식적인 책을 읽고 학교에서 공부한 내용  안에서는 그렇다.  역사는 시대의 흐름을 읽어주었지만, 시대를 살아간 보통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보통의 범주에  들지 않는, 피지배 역사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악인이거나 위인이거나 하는 인물들의 삶을 조금씩 들추어 주었을 뿐이다.  

   시대나 상황의 묘사에는 극적인 요소가 필요하다.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하고 선동한다.  한반도의 근대사에서는 반일과  반공이 대표적이다.  그 안에서 의미를 만들어 간 사람들의 모습은 언제나 곧고 바르고 결연했다.    최근 역사를 재조명하는  작업들이 활발해지면서, 우리가 열사나 의인이라 부르던 이들의 솔직한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이봉창  열사인데, 그는 일본 식민지 사회에서 일본인들과 어울리며 좀 더 풍요로운 개인의 삶을 위해 열심히 일하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식민지 국가의 국민이라는 현실이 그 희망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을 때, 그는 돌연 상해로 가서 김 구를 만나 거사를 계획했다.  그의  결연함이란 배신당한 삶 때문이었지, 처음부터 민족과 국가를 위한다는 그런 의식이나 사상은 없었다.  열사의 이미지는 이 순간  김이 쭉 빠지며 쪼그라들지만, 인간 내면의 솔직함은 그를 더욱 인간답고 가깝게 만든다.   

   조선인 마쓰모토의 삶은 우리가 쉽게 만나지 못했던 그 시대의 평범한 식민지 국민의 모습을 바라보게 한다.  동시에, 쉽게  생각하지 못했던 그 시대 사람들의 동선을 알게 해 준다.  너무 평범하고 솔직한 기록이 그와 우리를 가까이 연결해준다.  일제  강점기이지만, 자신의 삶을 시대에 맞추어 열심히 살려했던 모습은 지금의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어 마쓰모토의 삶은 거부감이  들거나 반감이 생기지 않는다.  

  그는  민족주의 교육으로 유명한 오산학교를 나왔지만, 민족의식이 투철한 사람은 아니었다.  일본어를 제대로 배운 일 없는 그가 일본으로  건너가 남양 무역 주식회사에 입사한 것은 단지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려는 소박한 마음 때문이었다.  성실함을 인정받아 사이판  지점 관리인이 되고, 북 마리아나 제도의 파간, 사리간 섬 등등을 다니며 원주민들을 관리한다.  원주민을 관리하는 능력 역시 뛰어나고  상황 파악과 수습능력이 뛰어나 그는 유능하고 성실한 관리인으로서 인정받는다.  그에게는 일본에 대한 충성심 같은 건 없었다.   단지, 회사의 한 직원으로 맡은 바를 성실하게 수행할 뿐이었다.  조선이라는 식민지 국가의 국민이라는 결점? 은 있었지만,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의 작은 섬들 사이에서 일본인들과 일을 하는데 그것은 신경 쓰이지도 않는 그런 것이었다.  그가 회사의 직원으로  열심히 일을 하는데 끼어든 현실적 상황은 단지, 미국의 공습과 일본의 패망이었다.  그 와중에서도 그는 슬퍼하지 않았다.  그가  처한 현실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나에게 이로울 것인가를 고민할 뿐이었다.  오랜 섬 생활에서 혼혈 원주민과 결혼한  그는 결국 사이판에 남았고, 티니안 섬으로 건너가 자신의 삶을 꾸려간다.  

   식민지 국가의 국민임에도 그는 그저 평범했다.  그리고, 시야에 보이지 않는 그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아갔다.   학교에서는 일본어 교육이 정규 교육이 되고 창씨개명을 강요받았을 때, 사람들은 순순히 일본어를 공부하고 이름을 바꾸었다.  그것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어쩔 수 없으면서 굴곡 없는 삶을 살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마쓰모토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친일 부역자라는 낙인을 씌우기엔 그는 너무도 평범해서 친일이라는 말 자체가 어색할 정도이다.  의식 없음을  비난하기엔 그의 삶은 풍랑 위의 배처럼 열악하고 아슬아슬했다.  그는 그저, 과거에나 현재에나 우리 모두가 그러하고 그러했듯, 삶의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평범한 사람이다.  

   식민지 시절의 그의 행보를 가지고 의식을 덧씌우는 일 자체가 무의미한 일일 수 있다.  이 기록의 발굴은 그 시절 조선인들의  삶은 어떠했는가를 구석구석까지 찾아 들추어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기록을 찾자면 마쓰모토같이 사이판이나 티니안 섬에서 삶을 살아온 조선인이 있는가 하면, 싱가포르가 일본에 함락되었을 때 현지 관리인으로 건너가 활동했던 조선인도 있었다.  식민지 시절,  위안부나 징용으로 끌려가 비참한 삶을 살아야만 했던 조선인들의 기록도 많지만, 그저 평범하게 그 시절의 상황에서 다양한 곳으로  건너가 일을 했던 조선인들도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조선인으로 기록된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공표하기 이전에  조선이라는 국호를 가진 나라 출신이었고,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후 국가 안으로 귀속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관적임을 감안해도 기록이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시간이 오래된 기록일수록 우리는 잘 알지 못했던 과거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것은 역사의 기록이 가지는 자체의 시각과, 그것에 유도당한 우리의 시선에서 벗어나 좀 더 사실적인 모습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평범하고 삶에 충실했던 식민지 조선인 마쓰모토의 삶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지 못했던 북 마리아나 제도의  작은 섬들에서 펼쳐졌다.  그리고 그 모습은 시대의식이나 사상을 덧씌우기엔 어색한, 자체가 치열했던 삶이었다.  그래서 그저  담담하게 그리고 흥미롭게 그의 회고를 읽어 내려갔다.  이미 여정의 마무리를 다한 그의 삶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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