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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Sep 08. 2018

[독후감]우치무라 간조, 신 뒤에 숨지 않은 기독교인

  오래전부터,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한 때 교회 학생부의  임원으로도 활동했던 내가 교회에 발을 끊은 것은, 내가 갈망하고 답을 얻고자 했던 것을 끊임없이 기도하며 갈구했음에도 답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어릴 적 십자가 아래에서 꿇은 무릎 위로 눈물을 쏟아내어도, 신은 묵묵부답이었다.  나의 간절함은 하늘에  닿지 않았다.  그것이 나의 부족함 때문인지, 아니면 신이 외면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깊어만 가는 갈증은 결국 교회에서  멀어지게 만들었고, 나는 교회에 발을 끊었다.  기독교인임은 인정했다.  누군가 어째서 교회에 가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어디선가  들었던 ‘무교회주의’라는 단어를 써서 간단하게 둘러댔다.  



   나는 여전히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양가 모든 가족들이 교회에 나갈 때, 나는 일요일 아침 경건한 마음으로 글을 쓰거나 낚시를  한다.  교회에 나가지 않음을 내 양심은 버거워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어쩌다 교회에 출석해야만 하는 자리에서 내  양심이 껄끄러워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되기 때문이다.  껄끄러운 양심은 내가 앉거나 선 교회 공간 안에서 나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다.  교회는 점점, 내가 자리하기 힘든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모든 교회가 나에겐 거부감을 일으키는 공간은  아니다.  기존의 다니던 교회를 기준으로 판단한 것이니, 내 양심과 경험 안에 모든 교회가 포함되지는 않는다.



   나는 무교회주의라는 사상에 무지했다.  단지, 교회에 나가지 않고 양심껏 예수와 신을 믿고 따르는 것임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치무라 간조의 무교회주의의 가장 밑바탕에는 ‘회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철저하게 나를 내려놓고 모든 걸 해제한 채,  신과 예수 앞에서 철저히 부서지고 따르겠노라 맹세하는 일이다.  나는 이 ‘회심’이라는 가장 기본 전제 앞에서, 철저한  신앙인이었는가를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문하고 뒤돌아보면서, 내가 꿇은 무릎 위로 흘린 눈물들과, 개인과 세상의 모든 것에  의문을 품고 답을 갈구할 때, 나는 철저하게 나를 부수어뜨렸는가 고민했다.  분명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나는 무엇인가를  거머쥐고 놓지 않았던가, 아니면 마음을 좀 더 깨부수지 못하고 작은 벽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좀 더 솔직해보건대, 나는 철저하고  완벽하게 회심하지 못했다. 



우치무라 간조는  신앙은 철저하게 개인과 신과의 관계이며, 개인의 양심에 기반한다고 주장한다.  신에게 닿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개인의 회심과  양심으로 스스로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과 신의 직접적인 관계를 훼방하거나 조정하려 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종교적  본질에 어긋난다고 말한다.  설령 그것이 교회일지언정 말이다.  따라서, 우치무라 간조의 무교회주의는 신과 개인의 관계 사이에서  조종하려 드는 교회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집단이나 공간에 대한 거부이다.  그래서, 그를 중심으로 모이는 집회가 그가 말하는  신앙의 본질을 흔들려하면 그는 가차 없이 그 집회를 해산시켰다.  그의 무교회주의는 절대성의 개념이 아니다.  신과 개인의 관계  사이에서 연결에 충실한 교회나 집단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그러기에, 그는 유언에서 무교회주의에의 생각을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할 정도로 유연하게 풀어두었다.  



   그의 신앙은 ‘두 개의 J’에 기반을 둔다.  하나는 Jejus, 하나는 Japan이다.  기독교가 유대민족의 종교를 기반으로  성장해서 그런지, 기독교는 유독 민족을 강조한다.  민족의 각성이 종교부흥의 씨앗이 될 것이라는 식의 주장도 많이 듣는다.   그래서인지, 우찌무라 간조의 사상은 이 민족주의 안에서 부유하며 온갖 오류와 혼선을 빚는다.  일본의 조선 합병은 잘못이지만,  신앙의 전파와 성숙을 위한 기회가 될 것이라 주장한다.  조선의 일본에 의한 탄압은 신앙성숙의 좋은 토양이 될 것이기에, 일본은  썩어가지만 조선은 밝게 성장할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일본이 동서양을 잇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민족인 만큼 신앙의 전파에서도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민족주의에 기반한 소소한 우월감을 느끼기도 한다.  신학 해석의 한  흐름에서는 예수의 탄생과 희생을 억압받는 계급과 소수자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종교적 사회적 투쟁이라고 본다.  그런 흐름과  비교해보면, 우찌무라 간조는 억압받는 소수, 해방과 보편의 평화라는 관점에서 민족주의라는 벽에 갇힌 한계를 보인다.  



   개인의 회심은 신의 재림을 통해 종교적 완성에 도달한다고 말했다.  우치무라 간조의 이 종말론적 신앙은 종말론적 희망을 나아갈  방향으로 제시한다는 데 독특함이 있다.  즉, 현재의 역사를 비판하고 역사에 봉사함으로, 종말론적 희망에 부합한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실도피나 운명론 따위에 의존하여 종교를 자기 위안으로 삼는 이들에 대한 경종이었고, 종말론의 새로운  해석이었다.  



  개인의 양심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합당하고 합리적인 것들을 추려 신앙의 방식으로 활용하게 한다.  역사, 문화, 사회사상, 그리고 개인의 생각까지..   회심을 통하여 나 자신이 신에 직접 닿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교회가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교회도 필요 없어진다는 사상이 우치무라 간조의 무교회주의 사상이다.  나는, 회심의 단계부터 철저하지 못한 채  무교회주의를 입에 담았다.  그리고, 현재의 수많은 교회들은 개인과 신의 직접 관계의 중간에서 온전한 역할을 하지 않은 채,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목격한다.  나는 어설펐고, 세상은 왜곡되었다.  그리고, 우치무라 간조의 사상은  존중하되, 어쩔 수 없는 한계들을 보였다.  시대상황의 탓인지도 모른다.  우치무라 간조를 이제 조금 알았다.  나의 신앙은 그리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근현대 기독교의 한 흐름을 조금 이해하는 수준에서 나의 이해는 마무리될 것이다.  종교의 영역  안과 밖에서, 내가 분명하게 깨달은 것 하나는, 나는 아직 회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회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내 무릎 위로 떨어진  눈물들은 이미 오래전에 말라버렸지만, 여전히 철없는 채로 신에게 닿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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