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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Dec 25. 2018

[독후감] 한국이 싫어서


   대학생이 된 지 일 년이 지난 조카가 군입대를 준비한다는 소식과 함께 앞으로 무얼 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스럽다 말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렇게 답해주었다.  ‘네가 하고 싶은 것들, 보고 싶은 것들을 찾아다니며 다양하게 살아 봐.  어차피,  너네 세대는 무얼 하더라도 힘들 거야.’ 답을 하고 나서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내가 너무 비관적인 답을 해 준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조카에게 말해 줄 어떤 긍정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다시 생각해도, 비관적이긴 하지만 가장 사실에  가까운 답을 말해주었다는 생각이다.  고시를 준비하라던지, 지금부터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으라 던 지 하는 뻔한 이야기는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말레이시아의  국제학교에 보낸 상태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아이가 힘들어하지는 않을까 수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바깥세상을  녀석의 삶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은, 언어에 익숙해지는 것이 우선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생각을 했다.  내가 사는 나라의  테두리 안에서만 아이를 존재하게 하는 일은,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 것 같다는 생각이 많았다. 그리고, 아이의 기회를 많이  축소시키는 결과를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잠깐의 해외 경험이라도, 언어라는 도구와 삶의 경험이라는 의미에서 아이의 생각과 기회를  키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다.

  이  사회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고민스러웠다.  존재한다는 건, 스스로의 자아를 제대로 표현하고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와  같은 것일까 점점 의문스러워졌다.  이 사회는, 평범하거나 약간이라도 어설프면 어떻게든 아래로 끌어내리는 습성이 있다.  사회  안전망도 없어서, 그렇게 끌어내려진 존재는 루저의 상태가 되어 착실한 피착취 대상이 된다.  분배를 위한 시스템은 망가진 지  오래다.  피착취자들은 올라갈 길이 거의 보이지 않는 아래에서 서로 아귀다툼으로 각자도생을 고민한다.  한번씩 세상이 건네는 틀을  받아 들고 자신을 틀에 맞추면 위로 올라갈 수 있을까 기대하지만, 이 역시 기대에서 멈추고 만다.  각자도생에 지치거나,  피착취자의 그저 그런 삶이 싫은 이들은 탈출을 감행한다.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를 그 시도는 이 사회에서 이미 오래된 현상이기도  하다.

  탈출 시도가 옳은가 옳지 않은가 가늠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한국도 나름 살기 좋은 나라라는 한없이 가벼운 입놀림은 무례하기까지 하다.  문제는, 이 나라가 국민으로  하여금, 스스로 탈출을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사회 구성원의 불안과 불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오히려 점점 더 키우고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모호하고 장황한 수많은 현상들이, 테두리 밖으로 탈출하려는 의지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그런 현상의 한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문장은 시니컬하면서도 신경질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날이 뾰족하게 서 있는 느낌이다.  그 느낌 자체는, 이 사회 구성원들의  상태를 적확하게 드러낸다.  그 신경증을 해소하는 방법은, 경계 밖으로 탈출하는 것 밖에 없다며 고군분투한다.  가진 것도 없고  배경도 없이 이 사회를 살아가는 일은 스스로에게 죄를 짓는 일임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의지하지 않으면 이 사회 안에서 스스로의  존재감을 꼿꼿하게 세울 수 없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탈출을 할 것인가..  어쩔 수 없이 이 사회 안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입장에서는, 문장 안에 깊게 배인 신경증에 사회를 되돌아보아야만 했다.  어째서 이 사회는 이렇게 되었는가..  어째서  희망은 조건이 갖추어진 이들에게만 주어진 희소품이 되었는가..  그 막연하고 옅은 절망이, 내가 조카에게 건넨 말과 아이의 행보를  결정한 이유였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신경증 속을 부유하며 참고 인내해야만 하는 내 삶의 버거움의 이유임을 깨달았다.  내가  사는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존재의 행복은 회복이 가능할까?  분명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이기에 존재의 행복이란 어쨌든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위해 무엇이 어떻게 변해야 할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대체 언제부터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  것인지, 알 수 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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