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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Mar 07. 2019

[독후감] 인간의 조건


   사소한 경험이자 사소한 만남이었다.  대학시절을 보낸 그 도시 중심가의 지하 주차장은 여전했다.  그러나 그 주차장을 만드는  공사장에서 수없이 반복했던 나의 삽질은, 흔적도 없는 데다 나의 기억마저도 가물거릴 정도로 사소해졌다.  사무실 어두운 벽 안쪽에  걸린 안전모를 받아 드는 순간, 수많은 누군가들의 땀냄새가 고정끈에 겹겹이 배어 코를 찔렀다.  한 시간 연장 작업을 감독하던  조폭 같은 인상의 정장 아저씨는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나의 어설픈 삽질에 인상을 찡그렸다.  5천 원이 일당에서 추가로 더해졌다.   모든 것은 젊은 날의 사소하고 가벼운 경험으로 추억되었다.  

   진료실에서 만난 그도 별다른 무게 감 없이 사소하게 지나갔다.  몇 날 며칠을 바다에 떠서 작업하는 배를 타는 그는, 세상 모든 것에  의심과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통증이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지 스스로 단정했다.  그리고, 그렇게 다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어째서 부당한지 스스로 단정했고, 자신을 무시해서 그런 건 아닌지 따져 물었다.  입에서는 술냄새가 풍겼고, 몸에서는  비린내가 났으며, 옷깃에는 차가운 바닷바람이 배어 있었다.  그것들이 그가 배 위에서 하는 일의 고단함을 어렵지 않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고단함의 무게만큼 존중받지 못했고, 내 기억에서도 사소하게 지나갔다.

   세상은 사소한 일들로 유지되고 굴러간다.  20여 년 전 일이긴 하지만, 일당 5만 원에서 소개비 5천 원을 떼이고 한 시간  추가 노동 수당 5천 원으로 그 도시의 지하주차장은 건설되었다.  그것이 학생이었던 나뿐만 아니라, 김 씨 이 씨로 불리던 수많은  나이 많은 아저씨들이 식초 때문에 입이 얼얼한 오이냉국과 싸구려 빵 맛으로 기억하는 현실이었다.  우리가 밥상에서 종종 만나는  생선구이는, 세상을 믿지 않는 그가 바닷물에 몸을 적시고 손이 부르터가며 끌어올린 그물에서 비롯되었다.  중요한 사실은, 여유롭게  차를 몰아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고, 아무렇지 않게 젓가락으로 생선 살을 집어 올려 맛을 품평할 때, 그것을 가능하게 한 사람들은  너무도 사소해서 의식조차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소한 사람들의 처지와 현실은, 그들의 노동으로 굴러가는 세상을  누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처지와 현실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사소해져서 서로를 의식하지 못하거나,  일부러 의식하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어쩌면 사소함에 일부러 인식하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관심을 가지지 않으니 서로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세상을 누리려 하면서도,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려하지 않는다.  세상이 너무 복잡해져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열악함에 상처 받을까 두려운 것일 수도 있다.  좀 더 좋은 것을 바라보려는 욕심 때문일 수도 있고, 서로가  얽힌 사소한 현실을 또다시 의식해야 한다는 부담이나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착취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것이 일상적이고 오래도록 유지되는 이유는 서로의 사소함을 바라보지도 공감하려 하지도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이 괴상망측한 사회가 비틀거리면서도 여전히 굴러갈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음에도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10여 년이 지난 이야기들이지만, 지금의 현실에서도 굳이 많은 것이 달라져 보이지는 않는다.  변한 것이 있다면, 사소함 속에  존재하던 부당함들을 조금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정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관심이 없거나 침묵한다.  부당함은  어쩔 수 없음이나 당연함으로 스스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몸을 움직인다.  세상엔 일상적이지만 알고 나면 충격적인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이 책이 말하는 저자의 경험들은 ‘알고 나면 충격적인 일들’이지만 실은 보편적인 우리의 삶이자, 사소하지만 가벼울 수  없는 현실이라는 점에서 그저 흥밋거리로 전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매 경험의 끄트머리마다 저자가 보여주는 극단의 행위들에  비판이 아닌 무거운 침묵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경험으로 써 내려간 글은 힘이 있다.  내가 집중하고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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