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이야기는 영화적이다. 역사적 개연성과 현실적으로 있을 법한 일들이 만나 납득과 재미가 가득 담긴 하나의 이야기로 탄생한다. 그 중심에는 사람이 서 있다. 그 사람은 지금 우리에게 있지 않다. 400년도 더 된 오래전에 죽었기 때문이다. 나는 방금, 지금은 없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읽었다. 알 수 없는 얼굴과 체격으로 뼈와 살을 만들어 붙이고, 숨을 불어넣었다. 그의 발이 되어, 그 시절로 재구성된 현장들을 걸었다. 그의 마음이 되어, 품을 수 있는 용기와 결단과 연정을 시간 안에 흘려 넣었다.
이신방이라는 인물은 실재했고,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명나라 장수로 기록되어 있다. 저자는 기록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사실만으로 그의 행적을 추적해 나간다. 그리고, 흩어져 있는 나뭇가지들을 줍듯, 그의 행적을 모은다. 마침내, 그의 일대기를 재구성해낸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 낸 것 같다.
하나의 사실 아래 조각조각 흩어진 얼마 남지 않은 흔적들로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 그것은 읽는 사람들을 의식해야 하는 일이다. 최대의 개연성을 두고, 그 틀 위에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의 살을 붙여야 한다. 재구성은 납득할 수 있어야 하고, 이야기는 재밌어야 한다. 그것이, 이신방의 주변에서 보이는 사람들이 소설 남원성 속의 사람들과 밀접하게 이어져 있어야 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저자의 전작 소설 ‘남원성’을 읽어야 개연과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 영파와 요동 그리고, 남원으로 이어지는 중국의 동부와 조선의 넓은 무대에서, 이신방과 저자의 내적 시선은 항상 남원을 향한다. 역사적 사실을 통한 정해진 결말을 위해 달린다. 그 안에 이신방의 생애 전체를 사로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진’에 대한 연민, 주변을 대하는 인간적인 성품이 한 인간을 깊고 두텁게 상상하게 한다. 어디까지가 사실일지 모르는 한 인간의 묘사가, 그것 그대로의 인간이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이 소설은 매우 영화적이다. 마치 영화로 만들어지기를 바라고 쓴 것 같다. 그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그러나, 그만큼 읽기 쉽고 이해가 어렵지 않다. 묘사 하나하나가 영화적이어서, 읽으면서 순간마다 스펙터클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진다. 그러면서도, 심리적 묘사 역시 단단하다. 전작 남원산성과 맞물리는 부분도 있어서 퍼즐을 맞추어가며 읽는 재미도 있다. 저자는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왜국에 싸워 준 삼천 병사들에 대한 예의’라고 했다. 나는 이신방이라는 인물의 영화적 환생이라고 생각했다. 결이 조금 다르지만, 이역만리 남원성에서 목숨을 버려야만 했던 명나라 장수의 보이지 않는 인간미를 재구성함으로 예를 갖춘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모든 인물들은 연민과 애정을 가슴에 담고 사는 평범한 인간들임을 이야기한다. 두텁지 않은 작은 소설 안에 이신방이라는 한 인물이 깊고 탄탄한 인간의 모습으로 환생한다. 아주 재미있고 조금 가슴 아프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