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텃밭일기 08화

텃밭일기 #8, 20190712

by 전영웅

무성하던 텃밭의 잡초는 거의 제거되었다. 하루에 두 이랑 정도, 쪼그려 앉아 열심히 호미를 놀렸다. 작은 초원처럼 푸르게만 보이던 텃밭 바닥에 흙이 보이기 시작했다. 텃밭 안으로 발을 들일 때마다가 푸른색은 점점 줄었고, 황갈색의 흙 색깔이 점점 늘었다. 내 피를 탐하는 풀모기들의 등쌀에, 엉덩이에는 붉은 반점이 점점 늘었다. 허리와 골반의 뻐근함은 덤이었다.


장마 직전의 무성함에 걱정이 많았지만, 마른장마가 이어지는 탓에 나는 해 없고 덜 더운 여름을 즐기며 잡초를 뽑았다. 마른장마는 계속되었고, 나는 날마다 잡초를 뽑을 수 있었다. 장마라면 비가 와야 하건만, 처음에만 잠깐 쏟아지고 마는 비에 허탈하면서도 다행인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날씨의 모순과 마음의 모순이 뒤섞여 종잡을 수 없는 나날에도 해야 할 일은 척척 진행되었다. 쏟아지는 비를 바라는 마음과 잡초를 거의 다 뽑았다는 안도의 마음이 다시 뒤섞이며 새로운 모순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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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로 뒤덮인 땅이 드러나는 일은 나름 속 시원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마냥 속 시원하고 만족스러운 일은 아니다. 장점이 있다면 단점도 있듯, 흙이 드러나면 그만큼 걱정도 커진다. 마른장마에 작업을 이어 다행이다 싶던 마음이 이제는 슬슬 비를 기다리는 조바심으로 바뀌었다. 한여름 흙이 드러나면 그만큼 수분 증발량도 많아서 땅이 금방 마르기 때문이다. 잡초를 뽑다 보면 바로 느낄 수 있다. 무성한 잡초 아래 뿌리가 단단히 거머쥐고 있는 흙은 언제나 수분이 적당하다. 게다가 잡초가 햇볕을 가리니 땅의 수분이 날아가지 않고 잘 보존된다. 작물은 잡초와 경쟁하느라 버겁지만, 땅이 말라 물이 부족할 일은 거의 없다. 그런 땅에서 잡초를 제거하고 작물만 덩그러니 남으면, 넓게 드러난 땅은 점점 말라간다. 햇볕과 한낮의 더운 공기에 마르고, 불어오는 바람에 마른다. 비가 와 주지 않는다면, 나는 다시 마당의 호스를 붙잡고 다가가 모기와 싸워가며 물을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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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잡초와 작물이 공생하게 한다. 잡초가 작물을 뒤덮지 않도록 짧게만 잘라주는 것이다. 잡초 때문에 햇볕을 가릴 일이 없고, 수분은 유지되니 땅이 마를 염려도 없다. 이 방법은 해충관리에 활용되기도 한다. 작물에 달라붙어 진을 빨아먹는 해충들이, 비슷한 맛을 내는 잡초에 달라붙도록 유도한다. 손바닥만 한 텃밭에서 해충을 유도하는 고도의 농사기법을 활용하기엔 너무 거창하다. 그러나, 애써 잡초를 죄다 뽑아내지 않아도 나도 편하고 걱정도 덜한 방법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허리 골반 아파가며 땀범벅이 되도록 호미를 놀리는 이유는, 텃밭은 내 노동을 위한 놀이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주의 잡초들은 무성하게 빨리 자라고, 한 번에 어마어마한 양의 씨앗을 퍼뜨려서, 차라리 뿌리째 뽑아내는 것이 속 시원하기 때문이다.


텃밭은 나에게, 소소한 수확을 주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스스로 몸을 움직여 노동을 하는 공간의 의미가 크다. 시작부터가 그랬다.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힘든 시절에 시작한 텃밭이었다. 삽과 호미를 붙잡고 흙을 손에 묻히는 일은 머리를 식히고 마음에 안정을 주었다. 지금도 나는 텃밭에서 머리를 식히고 마음에 안정을 얻는다. 운동이 아닌 노동이고, 내 본래의 직업과는 다른 형태의 노동을 함으로 나는 편안해진다. 땀을 흘리며 머릿속 생각을 정리하고, 보이는 잡초를 뽑아가며 가슴을 가벼이 비워낸다. 그러니, 잡초를 다스려 공생을 꾀하기란, 나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노동으로 잡초를 뽑아가고, 드러난 흙에 다시 새로운 고민과 노동을 만든다. 스스로 만드는 소소한 노동의 굴레.. 나는 그만큼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무거운 사람이었나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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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은 잡초들을 마당에 부려놓으니 더미가 상당하다. 잘 말려 이랑을 덮는 용도로 사용할 예정이다. 비가 오지 않을 수도 있는 8월의 한여름을 대비해서, 조금이라도 땅이 덜 마르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나는 다시 내 몸을 부려 일할 거리를 만들고 있었다. 남은 잡초들은 바짝 말려 퇴비통에 넣을 것이다. 반려견의 배설물과 섞고 EM을 뿌려 삭히면 내년 텃밭 거름으로 훌륭하게 활용할 수 있다. 무성해진 것은 잡초만이 아니었다. 잡초가 자랄 때, 작물들도 열심히 자라고 있었다. 가지는 드디어 한 번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주렁주렁 매달리기 시작했다. 예년보다 키가 낮은 고추도 나름 열심히 결실을 맺고 있었다. 토마토는 이상하게 꽃보다도 줄기만 무성하게 자라 덤불이 되었다. 그래도 익어가는 방울토마토들이 곳곳에 보이고 있다. 수박과 호박도 여기저기 각자의 덩이들을 키우고 있었다. 애호박들과 줄무늬가 있는 수박과 흑수박이 두세 개씩 열려 무거워지고 있었다. 풀숲 같았던 잡초들을 거두며 발견한 소소한 즐거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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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한편에 뿌렸던 루꼴라가 생각보다 더디게 자라고 벌레도 덜 먹고 있다. 아내가 멀리 가던 날, 머지않아 다 먹어야겠구나 했던 것이 아내가 아들과 함께 돌아 올 즈음에도 먹을 만하게 잘 자라고 있음이 신기하고 감사하다. 꽃을 피웠던 고수는 텃밭 테두리 곳곳에서 황갈색의 씨앗으로 여물었다. 손으로 훑어내듯 거두어 텃밭 안으로 뿌렸다. 고추나 가지를 따거나 잡초를 뽑다가, 먹을 만하게 올라 온 고수를 따로 거두어 먹는 재미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텃밭 한편 두 이랑의 잡초가 남았을 무렵에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니 잡초를 뽑을 수는 없어 마당을 둘러보다가 필로티 주차공간 위에 올해 새로 생긴 제비집이 눈에 들어왔다. 세 번째 제비집이었고, 제비 부부는 이미 알을 낳아 품고 있는 중이었다. 바로 아래는 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나는 출근 전이면 날마다 차 지붕에 떨어진 제비 똥을 닦고 있었다. 생각이 난 김에, 바로 판자를 자르고 석재 본드를 발라 받침대를 만들어 제비집 아래에 설치해 주었다. 비가 온다고 해서 할 일이 없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비가 그치면 나는 해 오던 잡초뽑기를 이어가야 한다.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비가 안 오면 비가 오지 않아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곳이 우리 집이다. 그래서 내 머리는 복잡을 넘어 뒤엉킬 일 없고, 마음이 무거움을 넘어 꽉 막힐 일이 없다. 허리와 골반은 좀 더 빠르게 늙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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