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좋아하지만, 사랑할 수는 있을까? 지금 사랑을 누리고 있는 이들을 보면 한없이 부럽다. 사랑을 받고 있는 이에 대한 시선이 아니다. 자신 앞의 대상에 한없는 사랑을 전하는 사람, 전한 사랑을 다시 피드백받으며 영원할 것 같은 선순환의 행복 안에서 천천히 부유하는 사람.. 그런 이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무언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이제 막, 음악을 사랑하는 이의 길고 긴 편애의 기록, 그 마지막 장을 덮었다. 그리고, 나 역시 좋아하는 음악, 아니 음악을 대하는 나의 감정을 되돌아보았다.
음악을 좋아한다. 점점 재즈로 편향하는 나를 느끼지만, 음악은 취향이기에 그런 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 이미 고전인 유명한 곡들을 제외하면 제목도 모르고 듣는 수많은 재즈음악을, 그저 좋아하니 그 정도 수준에서 듣는다. 유명한 아티스트나 앨범, 그리고 제작자 위주로 듣는다. 그러니, 재즈의 황금기라 불리는 50-70년대 발표된 곡들에만 귀가 몰린다. 사용된 악기들, 연주자마다 다른 스타일 등등은 거의 모르고 듣는다. 요즘에는 음원으로 바로 검색해 듣는 시대이건만, 나는 최근의 재즈 경향을 알려하지 않고 찾아 듣는 데에도 게으르다. 이게 딱 나의 음악 취향 수준이다. 내가 음악을 또는 재즈를 사랑한다 말할 수 없는 이유를, 이제야 제대로 깨달았다.
음악을 사랑할 줄 아는 이가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은 남달랐다. 음악을 부드럽게 분석하고 조심스레 설명한다. 아티스트, 앨범 또는 곡을 둘러싼 배경을 이해하고, 그것이 음악에 어떻게 녹여져 있는지 파악한다. 모든 설명은 조심스럽고 겸손하다. 비판조차도 그러하다. 평론가가 아닌 의견가라는 스스로의 직함답게, 조심스러운 걸음과 손짓으로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배려하며 의견을 개진한다. 그리고, 이런 음악들도 있음을 넌지시 건넨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아티스트들, 음악들.. 실은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좋은 음악이 있음을, 커튼을 천천히 열어 창 밖의 너른 풍경을 보여주듯 써 내려간다. 간단한 검색으로 간편한 음원을 다운로드하여 어떤 노래든 들을 수 있는 세상에서도, 음악을 찾아보려는 우리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그런 노력이, 우리에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되며, 상처를 보듬어 주는 노래들과 만나게 해 준다는 사실을 나직하게 힘주어 이야기한다.
음악에의 길고 긴 편애를 써 내려간 저자는 내가 아는 한, 악기를 직접 다루지 않고 노래를 직접 발표하지 않는 이들 중 가장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가 음악을 사랑하는 모습은 일종의 덕후질이 아니다. 끊임없이 듣고 읽으며 찾아본다. 깨닫고 알게 된 사실을 누군가와 나누려 애쓰고, 너른 긍정과 조심스러운 부정 안에서 음악이 사람들을 위로하고 즐겁게 한다는 사실을 쉼 없이 증명해 낸다. 세상의 많은 모습은 음악과 연결이 되어 있고 음악은 세상의 일부일 수밖에 없음을, 그래서 세상이 변할 때 음악도 변화함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아름답고 포근함을 믿는 사람이다. 그가 음악을 사랑하는 모습은, 사랑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나직한 주장이다. 무엇을 사랑하든, 이 사람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맹목과 아집이 판을 치는 세상은 어떻게 망가지는 것인가 깨달아가는 요즘이다. 그의 사랑법은, 맹목이나 아집이 아니다. 편애일지언정, 세상을 아름답게, 곧고 탄탄하게 직조하는 열정과 원칙의 사랑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