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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Jul 08. 2019

[독후감] 아픈 몸을 살다.

  작은 공터에서 피부빛이 창백한 한 사람이, 저보다 더 커다란 무언가와 뒤엉켜 겨루고 있다.  쉽게 끝나지 않을 듯한 겨루기에, 인간은 땀과 긴장으로 뒤범벅이 되어 점점 수척해진다.  긴장과 몸의 중심이 조금이라도 풀어지면, 그는 자신의 허리를 거머쥔 상대에게 넘어뜨려질 것이다.  넘어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그는 어떻게든 버텨서 싸움을 자신의 승리로 마무리해야 한다.  


  그 싸움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이들에 둘러싸여 있다.  한쪽은 흰 가운을 입고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의료인들의 무리다.  다른 한쪽은 그를 아는 수많은 사람들이다.  다들 긴장과 숙연한 표정으로, 누구는 가슴에 손을 얹고 애타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본다.  누구는 눈을 감고 손을 모으고 기도한다.  누구는 마음이 아파 고개를 돌린 채 서 있다.  

  어느 누구도 그의 처절한 싸움에 다가갈 수 없다.  싸움은 철저하게 그의 고독이다.  아프다는 것은 그런 외로운 싸움이다.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고통을 나눌 수도 없다.  내 몸의 고통은 오로지 나만의 것, 의료는 고통을 줄이고 치유를 서두르기 위한 보조일 뿐이다.  주변의 관심과 도움은 싸울 힘을 유지하는 지지와 응원일 뿐이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그러하다.  거의 모든 것들은 철저하게 나 자신이 겪어내고 해결해 내야 하는 것이다.  ‘힘 내!’라고 말을 건네는 것이, 실은 그다지 큰 도움도 위안도 되지 못함이 이를 증명한다.


  질병이라는 거한이 내 눈 앞에 나타나 커다란 손을 내 몸에 대는 순간, 몸의 감각과 보이는 시야 그리고 머리의 생각은 달라진다.  철저하게 외로워지고, 외로움 안에서 세상의 다른 감각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고통은 괴롭지만, 고통으로 인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하는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진다.  자연스럽고 당연했던 모든 것들이 고통으로 인해 의미를 달리한다.  나는 어째서 그러했는가, 지금의 나는 왜?, 그리고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의 두려움..  


  아픈 몸으로 산다는 것을 사실 나는 아직 모른다.  잠깐의 경험으로 내가 어째서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품어 본 적은 있다.  그러나, 나의 목숨을 뒤흔들 정도로 심각한 질병을 이해한다는 것은, 아직은 나의 능력 밖이다.  그런 질병으로 아파하는 환자들을 많이 마주하고 치료했지만, 나는 그들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순간 위선자가 된다.  나의 지식은 그들이 아픈 이유와 덜 아프게 하는 방법에 대해서일 뿐이다.  아픈 몸이 어떻게 세상을 감각하고 바라보며 느끼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리고, 사회의 구조 안에서 아픈 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처지가 되어서, 감당해내야 하는 인간관계와 사회제도의 다양한 얼개를 알지 못한다.  나는 그저 위에서 글로 묘사한 그림 속 구석진 곳에 선 진지한 표정의 한 사람일 뿐이다.  


  아픈 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통찰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것은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의 중요하고 비중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례할 수 있음이고, 우리는 얼마든지 아플 수 있기에 무례함으로 더 상처 받고 내쳐질 수 있다.  그러나, 아픈 몸을 통찰함으로 온전히 알 수는 없다.  아프다는 것은 철저하게 개인의 경험이고, 우리는 그 경험을 타인의 시선으로 존중할 수밖에 없다.  아픈 몸으로 산 이들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접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픔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커다란 행운이다.  아픔을 피하기란 그만큼 어렵다.  우리는 내 앞에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질병의 마수에 침착해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파하는 이들에 전하는 염원이 온전히 닿을 수 있도록 기도하는 연습도 필요하다.  닿을 수 없지만, 결국 겪어야만 하는 것이 아픈 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픈 몸으로 사는 이들을 온전하게 존중하고 있는가를 항상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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